'8월의 읽을 만한 책'을 며칠 앞당겨 골라놓는다. 그런다고 유달리 긴 장마가 빨리 끝날 리 없겠지만 마음은 조금더 볕이 드는 쪽으로 옮겨가고 싶다. 물론 불볕 더위가 닥치게 되면 이 지루한 장마가 혹 그리울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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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학
정과리 교수가 고른 책은 김이설의 <환영>(자음과모음, 2011)이다. "요 근래의 한국 소설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보인다면, 그것은 1990년대 이래 희미해져 가던 사회성을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다."라는 진단하에 그런 경향을 주도한 작가 중 하나로 김이설을 꼽았다. 이미 지난달에 이 자리에서 골라놓았으니 따로 덧붙이지 않아도 되겠다. 나도 최근에 읽었는데, 감상은 다른 자리에 적어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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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작가를 보태자면 다자이 오사무는 어떨까. 대표작 <인간실격>이나 <사양> 외 최근에 (다시) 나온 <쓰가루 외>(문학동네, 2011) 같은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다자이 오사무 같은 경우는 체계적으로 번역본이 나오지 않아서 중복되는 단편들이 많지만 처음 번역되는 작품들도 눈에 띈다. <정의와 미소>(세시, 2011)나 <굿바이>(예문, 2010)에 실린 몇몇 단편이 그렇다. 작년에 다자이의 작품을 여러 편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몇 편 더 보태어 읽고 작가론이라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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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역사서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펴낸 <조선사람의 세계여행>(글항아리, 2011)이다. "이 책에 소개된 12가지 이야기는 풍랑에 의해 표류된 경우, 북경 사행길, 일본 통신사행, 공녀로 팔려간 경우처럼 실제 자유 여행에 해당하지 않는 것도 많으나, 그 이야기 속에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어 자유 여행 못지않은 정보와 즐거움을 준다"는 평이다. 그런 여행길에 필히 동행했을 역관들의 이야기로 이상각의 <조선역관열전>(서해문집, 2011)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또 개화기 지식인들의 세계여행을 다룬 책으로 이승원의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휴머니스트, 2009)도 같이 묶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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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책은 마티아스 루의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함께읽는책, 2011)다. 제목만으론 좀 미심쩍은 책이지만 "도대체 축구와 철학 사이에서 이런 연관관계를 찾아낸 것이 신기하다 할 정도다. 철학적 글쓰기의 폭을 넓히는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이라는 평이다. 게다가 저자는 프랑스의 수재학교 고등사범 출신의 젊은 철학교수라고.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면, '진짜' 소크라테스를 만나보는 것도 좋겠다. 내가 고른 건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파이드로스>이다. 국내에는 현재 두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는 성싶다. <소크라테스의 변명>(글로북스, 2011)에 수록된 <파이드로스>는 짐작에 일어본을 중역한 것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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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로버트 서먼의 <달라이 라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김영사, 2011)이다. 제목만으로도 중국과 티베트 문제를 다룬 책이란 걸 짐작하게 한다. 달라이 라마의 책은 거의 100권에 육박할 정도로 많이 출간돼 있는데, 클로드 르방송의 <달라이 라마 평전>(바움, 2008)과 이시하마 유미코의 티베트 입문서 <티베트, 달라이 라마의 나라>(이산, 2007)를 참고할 만한 책으로 꼽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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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해냄, 2011)다. 하버드대에서 도시경제학을 강의하는 저자의 도시예찬론으로 이미 다룬 적이 있는 군말은 보태지 않는다. 다만 균형을 잡자면 그런 도시의 이면도 살펴보는 게 좋겠다. 정진열/김형재의 <이면의 도시>(자음과모음, 2011)과 이경훈의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푸른숲, 2011) 같은 책. 만약 '도시가 아니라면' 도시예찬론에서도 비껴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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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과학
장경애 실장이 고른 과학책은 조홍섭의 <한반도 자연사 기행>(한겨레출판, 2011)이다. 저자는 한겨레신문의 환경전문 기자로 <생명과 환경의 수수께끼>(고즈윈, 2005), <프랑켄슈타인인가 멋진 신세계인가>(한겨레출판, 1999) 등의 저작을 내놓은 경력이 있다. 새로 나온 책은 "한반도를 누비며 발품을 팔고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인터뷰하고 토론한 결과가 글과 함께 사진, 일러스트와 잘 어우러져 우리 땅을 이해하는데 좋은 출발점이 될 것 같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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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책은 유재현의 <시네마 온더로드: 영화로 보는 아시아의 역사>( 그린비, 2011)다. 이미 '온더로드' 시리즈를 통해 아시아 각국의 현실/현장에 대한 르포를 제시해온 저자가 이번엔 스크린 속 재현과 스크린 너머의 현실을 대질시키고 있다. "<시네마 온더로드>는 영화를 비판할 목적이라기보다는 영화로부터 역사를 바라보는 길을 모색하려는 책이다. 관객이 영화의 장면들을 무작정 받아들이지 말고 예리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보기를 바라는 저자의 심정이 엿보인다"고 추천자는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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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교양
탁석산 철학자가 고른 책은 돈 쿨릭과 앤 메넬리의 <팻 -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소동, 2011)이다. "비만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깊고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라는 걸 알려주는 책이라고. 우리 몸에 대해서 깊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주는 책으로 수지 오바크의 <몸에 갇힌 사람들>(창비, 2011)도 눈길을 끈다. 부제는 '불안과 강박을 치유하는 몸의 심리학'이고 저자는 고(故) 다이애너 왕세자비를 상담했던 정신분석가로 영국에서는 '프로이트 이래 가장 유명한 정신분석가'로 불린다고. 여러 상담사례를 통해 몸 때문에 고통받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다룬 책.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저자는 비만을 주제로 한 책도 썼다. <비만은 페미니즘의 주제다>란 제목. 소개됨직한 타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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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고른 책은 박희선의 <아주 특별한 바다 여행>(자연과생태, 2011)이다. 비록 표지는 시원한 느낌을 전해주지 않지만 8월에 어울리는 타이틀이다. "인천 앞바다에서 부산 오륙도를 거쳐 서귀포 문섬에 이르는 해양보호구역 14곳을 답사하면서 각별한 바다의 기별을 전하고 있다"고. 여행이라고 하니 역시 제주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제주 올레 여행 안내서들은 많이 나와 있기에 다른 쪽으로 고른다면 김병훈의 <제주 자전거여행>(터치아트, 2010)도 있다(8월의 자전거 여행은 좀 무리겠지만). 민속학자 주강현의 <제주기행>(웅진지식하우스, 2011)은 제주도도 아는 만큼 보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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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지구사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지구사로 정했다. 크리스토퍼 로이드의 <지구 위의 모든 역사>(김영사, 2011) 때문에 상기하게 된 주제다. 사실 '지구사'란 말도 아직 합의된 용어는 아닌 듯싶다. '글로벌 히스토리', '거대사', '빅히스토리' 등이 통일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파멜라 카일 크로슬리의 입문서 <글로벌 히스토리란 무엇인가>(휴머니스트, 2010)와 국내 저자들이 엮은 <지구사의 도전>(서해문집, 2010)을 보면 감이 좀 잡히지 않을까. 여하튼 문명사나 제국사로도 성에 차지 않는 분이라면 지구사에 한번 도전해보시길(그 다음은 우주사에 관한 책들이다).
11. 0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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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번 8월에도 강의차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을 예정이지만, 이미 작년 7월에 '이달에 읽을 만한 고전'으로 꼽았었다. 다른 작품을 고르자면, <푸슈킨 선집>(민음사, 2011)이 어떨까 한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을 가능하게 한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가 바로 푸슈킨이다. 이번에 나온 선집에는 그의 희곡과 서사시가 망라돼 있다. 지난 1999년 푸슈킨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나온 푸슈킨 전집/선집들이 대거 절판된 참이라 반가운 작품집이다. 역자인 최선 교수 번역본으로는 <벨킨 이야기. 스페이드 여왕>(민음사)과 <예브게니 오네긴>(서울대출판부)도 읽어볼 수 있다. 거기에 <대위의 딸>까지 보태면 서정시를 제외한 '푸슈킨 전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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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찾아본 옥스포드 문고판 푸슈킨 작품들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