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이어서 어머니댁에 가 닭죽을 먹고 왔다. 덕분에 '나가수'도 끝까지 보고(집에서라면 아이와 채널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 돌아오긴 했어도 기력이 좋아진 것 같진 않다. 기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욕의 문제 같긴 하지만. 그런차에 지난 주중에 임시저장해놓은 페이퍼가 생각나 다시 불러왔다. 음식을 다룬 책에 손길이 가는 건 매우 드문 일이지만 <칼로리 플래닛>(월북, 2011)이란 책이 3년전에 나온 <헝그리 플래닛>(월북, 2008)과 짝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관심이 생겼다. 이를 테면, 나란히 보면 좋은 책이다. 그래서 서평기사도 나란히 불러모았다. 우리가 무얼 먹으며 살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국민일보(11. 07. 22) 불평등한 21세기 지구인 식탁, 그래도 한결같이 웃는다…왜냐고?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기차역에 사는 방글라데시의 12세 가출 소년 알라민 하산. 첫 열차로 도착한 승객의 가방을 택시 정류장까지 나르고 동전 몇 개를 확보했다. 운이 좋았다. 오늘 아침은 굶지 않아도 좋았다. 그가 역 바닥에 하루치 식량을 늘어놓았다. 롤빵 한 개, 홍차 두 잔, 흰 쌀밥 위에 채소 카레를 끼얹은 덮밥 두 접시, 그리고 담배 다섯 개비. 거리의 진수성찬은 그가 하루 종일 동료 짐꾼들과 주먹다짐하며 생계를 꾸려갈 1400㎉의 에너지를 제공해줄 터였다.
음식을 먹는 건 에너지를 얻는 행위이다. 빵과 밥은 잘게 부서져 분자 상태로 혈액에 흡수된다. 그 빵과 밥을 위해 인간은 하루를 산다. 인간이 에너지를 몸속에 넣고 배설하는 반복적 활동으로 생존한다는 이 단순한 사실은 삶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는다는 것, 하루에 얼마만큼의 식료품을 소비해야 한다거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삶을 얼마나 단단히 옭죄고 있는가. 그래서 누군가의 식탁을 엿보는 건 놀라운 관찰 행위가 된다.
환경 및 과학 분야 사진 저널리스트 피터 멘젤과 그의 아내이자 TV 뉴스 프로듀서 출신의 저술가 페이스 달뤼시오가 함께 제작한 ‘칼로리 플래닛’은 개인의 하루 식단을 한 장의 사진에 담은 포토 논픽션이자 요리 다큐멘터리이다. 세계 30개국, 미국 12개 주를 돌며 80명의 사람을 만나 그가 먹어치우는 음식들을 요리된 상태 그대로 한 자리에 모아 주인공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어떤 잣대로도 평균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극단적인 사례들을 모아놓고 보니 21세기 어느 날 지구인의 하루 식단표가 완성됐다.
사진과 함께 음식 목록, 주인공 일상도 소개됐다. 당연한 얘기다. 미국 전쟁(베트남에서는 베트남전을 이렇게 부른다) 상이군인의 식생활은 그가 참전군인이고 세발 모터 카트를 운행할 수 있는 특별면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분리될 수 없다. 덕분에 쌀국수와 돼지고기 스튜, 청어튀김, 돼지 간 등 2100㎉의 음식을 풍족하게 먹는다. 묽은 곡식 죽과 찐 밀가루 만두, 쇠고기 육수로 하루 고작 900㎉를 섭취하는 보츠와나의 간병인. 그녀 식단에서 가장 중요한 건 HIV 항 레트로 바이러스 약이다. 알약 네 알이 없다면 그녀 아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
후대 역사학자는 현대 인류의 삶을 말할 때 ‘섭취 열량과 활동량의 극단적 불균형’을 지적할 게 틀림없다. 80명의 하루 식단을 살피다 보면, 투입과 배출 사이의 균형을 맞춘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게 된다. 너무 많이 먹어 걱정인 대표주자를 꼽으라면 단연 미국인이다.
175.3㎝, 135.6㎏의 15세 미국 여고생 맥켄지 울프슨은 체중 감량 캠프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침 식사로는 사과 팬케이크 2장과 칠면조 소시지 2개, 무지방 우유, 오렌지 주스를 먹는다. 점심은 샌드위치 샐러리 당근 샐러드, 저녁으로는 닭고기 샐러드 파스타 과일펀치가 준비돼 있다. 여기에 간식으로 사과 초콜릿푸딩 프레첼까지 총 1700㎉가 허락된다. 평소 식사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양이다.
조만간 비만 수술을 할 예정인 미국의 전직 스쿨버스 운전사 릭 범가드너도 곡물 베이글과 브로콜리, 아이스티로 구성된 1600㎉의 다이어트 하루 식단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예전이라면 한 끼로도 부족한 양. 그는 “과거에는 이걸 다 먹고 추가로 닭 3마리의 가슴살, 감자, 그레이비, 비스킷까지 먹었다”고 고백했다. 과식은 비만을 낳았고 비만은 릭에게서 직장을 앗아갔다. 쇼핑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20대 미국 여성 티파니 화이트헤드의 하루는 버거킹 치킨 프라이와 프렌치프라이, 닥터 페퍼로 시작한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그립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양상추가 가득 든 시저 랩 샌드위치와 과일 스무디를 먹으려면 한 끼에 8달러는 투자해야 한다.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버는 그녀에게는 벅찬 가격이다. 그래서 발길은 또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한다.
모두가 많이 먹어 고통스러운 건 아니다. 케냐 마사이족 목축인 눌키사루니 타라콰이는 가뭄으로 가축을 대부분 잃어 하루에 두 끼밖에 먹지 못한다. 우갈리(옥수수가루 죽) 400g과 바나나 1개, 우유 59㎖와 설탕 2큰술을 넣은 홍차 2잔이 그녀가 하루 종일 먹는 음식이다. 총 800㎉. 그녀 반대편에는 병적인 간식 중독증 환자 질 맥티그가 있다. 영국 런던의 학교 도우미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하루에 4개의 샌드위치와 비스킷, 소시지, 초코바, 초콜릿 케이크, 초콜립 칩까지 무려 1만2300㎉를 집어 삼킨다. 두 사람 모두 그대로는 살아남지 못할 게 분명하다. 800㎉보다 많고 1만2300㎉보다 훨씬 적은 중간지대 어딘가에서 타협은 이뤄져야 했다.
사람은 제 입으로 들어갈 음식 앞에서 오래 가식적일 수 없는 법이다. 카메라 앞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수줍어하고 얼마쯤 자랑스러워했고 금세 긴장을 풀었다. 그렇게 70억 세계인의 삶을 한 권의 책에 통째로 복사해냈으니 저자들이 진정 영리하다 하겠다.(이영미 기자)
경향신문(08. 02. 16) ‘우리가족 일주일치 식량입니다’
최근 ‘음식’이라는 창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들여다보는 책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마’(다른 세상)나 사샤 아이센버그의 ‘스시 이코노미’(해냄) 같은 책이다. 1년 전 이맘때쯤 나온 빌 버포드의 ‘앗 뜨거워’(해냄)도 빼놓을 수 없다. 건강이나 요리에 대한 관심이 점증하고 있는 세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지만, 음식이 오늘날 인간의 본질과 조건을 성찰할 수 있는 좋은 소재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삶을 유지하는 데 음식은 기본이다. ‘먹는다’는 행위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사회적 활동이다. 음식은 또 우리를 다른 동물들과 구분짓는 기준이다. 인간만이 굽고 삶고 볶고 튀긴다. 음식은 우리를 규정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당신이 먹는 음식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것이다.
이번주 나온 ‘헝그리 플래닛’(원제 Hungry Planet)도 그 같은 연장선상에서 읽어볼 만하다. 부제처럼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라 할 만한데 참신하고 독창적인 기획이 돋보인다. 전 세계 24개국 30가족이 1주일 동안 먹는 모든 식품들과 그 가족 구성원들을 사진에 담았다. 여기에 1주일치 식품의 상세 목록과 총지출 비용 등이 제시되고, 이들 음식을 둘러싼 가족들의 일상이 펼쳐진다. 부부이면서 각각 저명한 사진기자, 작가인 두 저자는 아프리카 차드의 난민촌에서부터 남미 에콰도르의 안데스 산맥, 부탄 고원지대의 작은 마을, 그린란드 중동부 연안의 이누이트족 마을까지 전 세계를 누비면서 그곳 가족들의 ‘음식 이야기’를 모두 265장의 사진과 글로 풀어냈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각 장을 여는 30장의 ‘가족사진’. 1주일치 식품을 앞에 둔 가족들을 거의 똑같은 구도로 잡아낸 사진은 다른 문화와 풍습을 가진 이들의 식단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배급 받은 밀과 옥수수 포대, 생수 한 통, 염소고기와 생선 조각, 과일과 야채 몇 개를 늘어놓은 수단 난민 가족의 휑한 식단과 온갖 육류와 스낵, 음료수, 패스트푸드 등으로 산을 이룬 미국 중산층 가족의 식단 사진을 비교해 보라. 또 선진국으로 갈수록 고기와 가공된 포장식품을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눈에 알게 된다. 코카콜라나 맥도날드 햄버거 등 이른바 ‘글로벌 브랜드 식품’을 발견할 수도 있다.
1주일치 식품의 상세 목록과 총지출 비용을 비교해보는 건 어떨까. 예컨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사는 흑인 중산층 5인 가족의 1주일치 식품 총지출 비용은 31만4180원인 데 비해 아프리카 말리의 13인 가족은 2만4230원이다. 책 말미에 제시된 나라별 개황도 흥미롭다. 미국의 비만 인구 비중이 남녀 각각 32%, 38%인 반면 말리는 0.4%, 3.4%다.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도 각각 124.7㎏과 19㎏. 말리의 가족에게 대표 요리를 부탁했더니 토마토와 고추, 쌀, 양파 등 모든 재료를 그냥 넣고 푹 끓인 쌀요리가 나온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알아보니 먹는 것에 대해 ‘좋아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책에는 각 나라의 평범한 한 가족이 살아가는 삶의 풍경이 간결하게 그려졌지만 오늘날 세계의 식탁이 직면한 문제들이 날카롭게 포착돼 있다. 에콰도르 산간마을의 한 가족은 직접 기른 것들로 먹거리를 충당하면서 ‘포브레 페로 사나’(Pobre Pero Sana, 가난하지만 건강하다)의 삶을 영위한다. 반면 멕시코에선 코카콜라가 다른 마실 것들을 몰아내고 ‘가족 지정 음료’로 등극했다. 부탄의 한 가족은 아침과 저녁 식사가 똑같이 붉은 쌀밥, 고추, 시금치, 카레지만 미국의 한 가족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면서 오히려 패스트푸드를 더 많이 먹게 되는 고민에 빠져 있다. 프랑스에선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면서 프랑스의 상징인 전문 식품점들이 사라지고 있고, 폴란드에선 미국 스타일의 패스트푸드가 뿌리내리기 시작하면서 패스트푸드와 그 영향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다이어트 열풍이 동시에 들어오는 기현상이 목도된다.

저자들이 이 책을 쓴 이유는 음식과 관련해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는 지구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것은 영양 부족에서 비만으로의 변화다. 세계 각지의 식탁은 천차만별이지만 하나의 경향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이 더 많은 설탕과 정제 탄수화물과 지방을 섭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몇 억명이 영양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한편에선 몇 억명이 너무 많이 먹어 과체중과 비만에 시달리는 곳이다. 저자들은 ‘과잉’의 현대 사회에 필요한 소박한 지혜를 세계의 장수마을로 유명한 일본 오키나와의 옛말에서 찾는다. ‘하라 하치 부.’ 배가 80% 부를 때까지 먹으라는 것이다.
각양각색의 음식 문화를 담은 30개의 메뉴로 만들어진 ‘음식의 세계지도’라 할 만한 책이다. 세계 각지의 음식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풍습도 알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책 속의 사진들 속에 ‘우리 가족’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혹시 이번 주말 대형 마트에 가서 1주일치 먹거리를 구입할 생각이었다면 한번쯤 되묻게 될 것이다. ‘우리 가족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라고.(김진우 기자)
11. 0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