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이던가 원로사학자 노명식 교수의 <프랑스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 1789-1871>(까치)를 뒤늦게 알라딘 중고상품으로 구했다. 1980년에 나온 책의 1993년 재판본이었다. 물론 절판된 책이었기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좀더 기다렸다면 버젓한 책으로 구할 수 있을 뻔했다. 이번에 재출간됐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에서 파리코민까지, 1789-1871>(책과함께, 2011). 저자의 또다른 대표작 <자유주의의 역사>(책과함께, 2011)와 함께. 이 또한 민음사판으로 갖고 있는 책인데, 박스보관도서라 새로 구해볼 마음도 있다. 혹시나 싶어 소개기사를 찾다가 노명식 교수의 자비 전집 출간 사실도 알게 돼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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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11. 06. 29) 12권 전집 자비로 찍어 나눠준 老학자
“한국사를 전공하는 친구인데 내 수업을 듣는 거야. 무척 기특해서 90점 이상 줬던 기억이 나네.”(노명식 전 한림대 교수)
“저까지 기억하시고 전집을 보내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 수업은 다른 과의 학생들도 꼭 들어야 하는 명강의였지요. 특히 프랑스혁명사는 당시 운동권 학생들에겐 필수과목이었어요.”(이재범 경기대 사학과 교수)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운동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조촐하지만 특별한 모임이 열렸다. 한국 서양사학계 1세대 학자로 꼽히는 노명식 교수(88)는 지난 50여 년간 쓴 글을 모아 12권 분량의 양장본 ‘노명식 전집’을 출간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10여 명의 현직 교수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전집에는 저서와 논문, 강의록은 물론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 글까지 수록됐다.
“비록 잡문이어도 내가 쓴 글을 온전히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1950년대 지역 신문에 기고했던 글부터 최근에 쓴 글까지 모조리 찾아서 정리했어. 그 작업이 만만치 않더라고. 7년 넘게 준비했는데 그동안 내가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지.”
노 교수는 전집을 내는 데 들어간 비용 1억2000여만 원을 모두 자신이 부담했다. 스크랩한 자료를 문서 파일로 옮기는 데만 3000만 원 넘게 들어갔다. 1950∼1980년대 기고한 글은 워낙 한자가 많아 고학력자가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통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의 경우 제자나 지인들이 돈을 모아 전집을 내 헌정한다. 전집을 출간한 ‘책과 함께’ 출판사 류종필 대표는 “선생님께서 후학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다며 제자들도 모르게 전집 작업을 진행하셨다. 비매품으로 지인과 제자, 학교 도서관, 사학 연구자들에게 기증했다”고 밝혔다. 류 대표도 노 교수의 제자다.
이날 모인 제자들은 대부분 1970, 80년대 노 교수가 성균관대 재직했을 때 그의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다. 20년 전부터 매년 설날과 스승의 날에 노 교수를 찾아뵈었다고 했다. 올해 스승의 날 모임은 노 교수의 전집 출간에 맞춰 일정을 늦추어 이날 가졌다. 뜻밖에 노 교수의 전집을 택배로 받고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한 제자도 있었다.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선생님은 할 말은 하는 실천적 지식인이었다”며 “1972년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미국이 재채기하면 한국은 감기에 걸린다’는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이 잡혀가시지 않을까 걱정했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노 교수는 1976년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경희대 교수직에서 해직됐다. 2002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이를 인정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김덕호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키워드를 제시해 학생들이 배울 내용에 대해 먼저 생각하게 한 후 강의하셨는데 당시로선 선진적인 방식이었다. 나도 수업 전 온라인 게시판에 키워드를 제시해 학생이 그 내용을 채워오게 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제자들은 스승의 전집에 대해 ‘동시대의 사료’로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서슬 퍼런 군사정권하에서 당시 상황을 글로 남긴다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현대사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다”며 “그렇기에 이 전집은 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지은 기자)
11. 07.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