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대 시인의 시집 두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삶이라는 직업>(문학과지성사, 2011)과 <모든 가능성의 거리>(문예중앙, 2011). 개인적으론 데뷔 시집 <단편들>(세계사, 1997)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나온 시집들은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뿔, 2007) 이후의 시들을 두 권으로 나눠서 묶은 것이다. 인터뷰기사가 있길래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11. 06. 06) 천사와 인간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 풍경

……저의 시적 경향이라, 글쎄요, ‘불멸의 좌파 같은 시를 썼다’고, 나중에라도 그런 말을 들었으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니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노래했던 그 친구 이름이 닉 케이브였네요

-‘무가당 담배 클럽’ 참 재미있는 이름인데 실제로 존재하는 클럽인지요, 아니면 시적 상상 속의 이름인지요? 

‘리 마빈의 아들들 인터내셔널’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가당 담배 클럽’도 실제로 있습니다, 단순한 동인이 아니라 시인, 가수, 영화감독 등 다방면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전 방위적 모임입니다, 특이한 점은 체 게바라, 세르주 갱스부르처럼 이미 죽은 사람도 클럽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가 되면 회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은 말 못합니다. (시 ‘닉 케이브, 천사가 노래한다’ 부분, 시집 <삶이라는 직업> 수록)  

인터뷰를 마친 다음, 그의 시집에서 이미 잘 정리된 인터뷰를 발견했다. ‘불멸의 좌파 같은 시’를 쓰고 싶은 사람, 닉 케이브가 천사였듯이 ‘시를 쓰는 자들 또한 전직 천사’였다고 주장하는 시인 박정대씨(46·사진)다. 그는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설정을 빌려와 두 신작 시집 <모든 가능성의 거리>(문예중앙)와 <삶이라는 직업>(문학과지성사)을 완성했다. 영화에서 천사는 곡마단의 소녀를 사랑해 인간이 되기를 선택한다. 그가 천사의 시각에서 바라본 세상은 흑백, 인간이 된 이후의 세상은 천연색이다. 마찬가지로 전자의 시집은 천사의 시각, 후자의 시집은 인간의 시각으로 씌어졌다. 모든 가능성에는 왜 거리가 있는지, 삶이 어떻게 직업이 되는지 비로소 이해가 된다.

“두 군데 출판사에서 거의 동시에 시집 출간 제의를 받았습니다. 이미 한 권 분량의 원고가 있었는데 이것을 두 주제로 나누고, 새 원고를 추가했습니다.”

천사의 시각? 모든 게 가능하게 보이기 때문에 경쾌하고 몽상적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시각은? 생생하지만 고통스럽다. 그런데 천사는 이미 인간이 되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신의 구원을 바랄 수 없다. 그래서 그에게, 전직 천사였던 진실한 인간들에게 고독은 숙명이다. 

시인이 볼 때 고독한 인간에게 구원은 같은 인간으로부터 주어진다. 이를테면 ‘천사가 지나간다’(<삶이라는 직업> 수록)란 시에 열거된 이름들, 가스통 바슐라르, 마르셀 뒤샹, 미셸 우엘르베크, 밥 딜런, 백석,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앤디 워홀, 에밀 쿠스트리차, 장 뤼크 고다르, 짐 자무시, 체 게바라, 칼 마르크스, 파스칼 키냐르, 프랑수아 트뤼포 등이다. 추상의 하느님 대신 천사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래서 세상은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살 만한 곳이라는 긍정에 이른다.

박씨의 시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이며 이국적이고 불온한 동시에 선하다. 심야 카페, 담배 연기, 맥주, 영화 속 한 장면, 블루스 음악, 유럽의 작은 도시로 독자를 데려간다. 도시와 대중문화의 매력으로 제도와 의무에 찌든 현대인을 무장해제시켜 낭만과 초월의 영역으로 이끈다. 그의 시는 한마디로 센·티·멘·털. “센티멘털과 보편, 센티멘털과 형이상학, 센티멘털과 연대와 운동과 전복을 연결시키는 것이 박정대의 본질”이라고 그의 동료인 성기완 시인은 해설에서 썼다. 

이런 시를 쓰는 그는 누구일까. 올해 20년차인 고등학교 국어교사, 퇴근 이후에는 철저히 시인이다. 일찍 잠들었다가 밤 11시쯤 다시 일어나서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을 즐기고 시를 쓴다. 첫 시집 <단편들>(1997)을 시작으로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아무르 키타>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등 이미 다섯 권의 시집을 냈다. ‘무가당 담배 클럽’ 동인이며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 멤버로 활동 중이다. 이런 비밀결사는 그에게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그가 앞으로 쓰고 싶은 시는 어떤 것일까. 시집 <삶이라는 직업>의 마지막에 실린 ‘체 게바라가 그려진 지포 라이터 관리술’처럼 아주 짧고 쉬운 시다.(한윤정기자) 

11. 06. 12. 

 

P.S. 언젠가 한번 인용한 적이 있는데, 오래전에 내가 좋아했던 시는 <단편들>에 실렸던 '물질적 황홀' 연작이었다. 이런 시.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비가 내린 다음 수요일이 죽어갔다 나는 그리운
햇볕 한 조각 만나지 못하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죽어갔다
세상의 물빛 머금은 모든 것들은 경건한 자세로
꽃을 피울 태세였지만 꽃의 어깨를 건드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비가 내려 습기찬 들판이거나 어두운
영화관에서 팔짱을 낀 채 들꽃이 죽고 들꽃의 視線이 죽고
자막처럼 빠르게, 자동차들은 거리를, 물방울들을
튕기며 사라져갔다
일주일간의 죽음 끝에 햇살은 輓章처럼 나부낀다 (박정대, '물질적 황홀 6'에서)

음, 이제 또 월요일이군. 다시 죽어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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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3 1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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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3 1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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