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이냐 탈식민성이냐
방한중인 남미의 해방철학자 엔리케 두셀의 인터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라틴아메리카 참여민주주의의 현주소와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 그리고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정보기술 발전에 따른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눈길을 끈다.
경향신문(11. 06. 07) "남미 참여민주주의는 세계 정치의 새 경험”
우리 사회의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 미국과 유럽 등 서구 학문이 중심이 돼 왔다. 마찬가지로 지난 10년 동안 중도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변혁의 소용돌이를 겪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 철학에 대해서도 서구 중심의 편견으로 바라본 게 사실이다.
엔리케 두셀 멕시코 국립자치대학 교수(77)는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해방철학’을 주창한 중남미의 대표적 학자다. 그가 고려대 문과대 주최로 열린 금호아시아나 해외석학 초청강좌와 심포지엄(1~3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의 저서인 <1492년 타자의 은폐>(그린비)가 국내에 출간된 시점이기도 하다.
지난 4일 만난 두셀 교수는 “1999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볼리바르 혁명’ 이후 중남미 정치지형이 급격하게 변했다”며 “이런 변화는 새로운 정치학을 통한 철학적 해석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변화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브라질, 볼리비아 등으로 중도좌파의 집권이 확산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민중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도이며, 세계 정치의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이다.
두셀 교수는 “그동안 어떤 국가도 헌법에서 항구적으로 민중의 참여를 보장한 적은 없었다”며 “제도적으로 보장된 6만여개의 주민평의회가 각각의 의제를 심의하고 제안하는 베네수엘라의 모습에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차베스주의자’는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이 모델이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는 것이 아니라 시도 자체가 가치있고 깊이있게 분석할 필요가 있으며 21세기 정치철학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지금까지의 대의민주주의는 민중의 참여가 반영되지 않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모델은 주민평의회가 반대하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민중의 참여를 수렴하는 제도의 창조를 통한 또 다른 차원의 국가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런 현실로부터 끌어낸 그의 해방적 정치철학은 “권력은 지배이며, 정치란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이라고 규정해 온 유럽 근대 정치철학을 부정한다. 기존 정치질서에서 배제되고 피해 입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질서와 체제 자체가 잘못됐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수단으로서 긍정적인 의미의 권력 개념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은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이나 유럽 이론이 담아내지 못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바탕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있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벌어진 한국의 2008년 촛불집회는 “민중의 참여가 일상적으로, 항구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제도가 없었기에 일어난 일”이다.
한편 외부에서 중남미 상황이 포퓰리즘으로 인한 새로운 독재자의 등장쯤으로 치부되는 현실에 대해 두셀 교수는 “미국이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베네수엘라를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목적으로 세계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중남미에 덧씌워진 ‘포퓰리즘적 복지 때문에 망했다’는 것도 편견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군부독재에 반대해 75년 멕시코로 망명한 두셀 교수는 모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불리는 후안 페론 대통령은 자립적인 산업화와 내수진작 정책을 썼지만, 이를 반대한 미국 산업부르주아들이 군부쿠데타를 지원함으로써 오늘날 빈곤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고 말한다. 군부독재 정권이 미국에서 빌린 엄청난 외채가 시민들의 몫이 됐으며, 이후 집권한 민선 정권들도 미국의 시장개방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 빈곤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두셀 교수가 볼 때 99년 이후 중남미 국가들의 정책은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세계 리튬 매장량 1위인 볼리비아에서 원재료를 수출하지 않고 충전지를 만들어 팔겠다고 하면 서방국가들은 포퓰리즘이라고 얘기한다”며 “어떤 의미에서는 푸에블로(민중)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평가받는 룰라 전 대통령 역시 “82%의 지지를 받으며 임기를 마쳤다는 점에서 ‘포퓰리스트’이지만 이를 봐도 라틴아메리카가 포퓰리즘 때문에 망했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두셀 교수는 “이미 볼리바르 혁명이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예견했다”고 지적한다. “중남미 국가들이 자신들의 빈곤을 불러온 신자유주의를 더 이상 신성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지금까지 한국이 미국의 자본주의 체계를 따라서 성공했지만 미국 모델 자체가 위기에 봉착하면서 한국도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멕시코는 미국과의 FTA로 인해 재난 수준의 타격을 맞았다”면서 “미국식 자본주의에 함몰되기보다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철학을 고유한 현실과 전통으로부터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황경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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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11. 06. 08) "민중 참여 제도화는 자본주의 한계 넘는 혁명”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인 세계경제포럼에 대항하고 대안을 찾겠다는 취지로 2001년 첫발을 디딘 세계사회포럼은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처음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포퓰리즘 딱지를 붙이긴 하지만, ‘좌파 도미노’란 이름으로 브라질·베네수엘라·볼리비아 등에 등장한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도 주목받고 있다. 현실 속 실질적인 대안운동에 끊임없이 밑바탕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라틴아메리카 ‘탈식민주의’ 담론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니발 키하노, 월터 미뇰로 등과 함께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학자이자 ‘해방철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엔리케 두셀(사진) 멕시코 메트로폴리타나 자치대 교수가 최근 고려대 문과대학,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 철학연구소, 한국사회연구소 등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지난 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두셀은 “민중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혁명”이라며 “발전된 전자 매체 등이 민중의 성숙과 참여를 확대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틴아메리카 탈식민주의는 서구가 주도해서 만든 근대 세계가 식민지배로부터 시작됐으며, 근대성의 극복은 결국 식민성의 극복과 다름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두셀의 해방철학은 ‘정복하는 자아’로부터 나오는 서구의 근대적 사고를 뒤집어, 가부장주의의 희생양인 여성, 종속국가, 황폐화된 지구를 상속받을 미래 세대 등 억압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출발하는 것이 뼈대다.
두셀은 서구 정치사상의 주요 쟁점인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해방철학을 설명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정복과 지배로 나아간 서구적 보편주의를 비판하지만, 합리성·이성 등의 가치를 기반으로 전지구적 공동체를 끌어안을 수 있는 새로운 보편주의를 찾고자 한다. 특수주의로 흐르는 것은 그 어떤 보편적인 가치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셀은 인간은 계약 이전부터 이미 사회적인 존재인데, 자유주의는 인간을 고독하고 자유로운 원자로 먼저 상정한 뒤에 사회계약을 맺게 하는 오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원자화된 개인으로서 전쟁 상태와도 같은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적 소유’를 뼈대로 한 자본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모든 교환을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물신숭배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셀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강조해 다른 공동체들과 소통할 수 없게 만드는 공동체주의 역시 비판한다. 공동체주의는 공동체 외부에 있는 존재에 대해 차별과 배제를 휘두르게 되며, 결국 개별적인 특수주의에 머무를 뿐 결코 보편주의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에 대한 비판 속에서 두셀이 강조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성이다. 여기서 국가는 근대 부르주아 국민국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억압받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제도를 변화시키는” 구실을 하는 존재다. 소통하지 못하는 공동체주의는 국가의 구실을 약화시키고, 자유주의는 시장주의를 내세워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킨다. 두셀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엘리트 계층이 대표를 관료적으로 떠맡는 제도”라며 “관료 시스템, 정당이 없어지고 민중이 직접 대표가 될 수 있도록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민중이란 누구인가? 두셀은 민중에게 어떠한 고정된 정체성을 부여하진 않는다. 기존 정치 시스템에서 차별받고 배제됐던 희생자들이 윤리적 가치에 따른 요구를 펼 때 그들은 민중이 된다고 봤다.
그렇다고 참여에 대한 요구가 곧바로 직접 민주주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두셀은 “대의제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대의제가 민중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베네수엘라나 멕시코시티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 활동 등을 사례로 들었다. 10여년 전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제기된 민주주의 전략에 따라 헌법을 통해 주민 자치권을 강화했던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미 6만여개의 주민회의(Community Council) 기구가 만들어졌고, 이들이 예산의 결정부터 집행까지 모두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고 한다. 곧 민중이 참여하는 국가가 민중을 위해 제도를 바꿔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두셀은 이런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심장부에서도 각종 비판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민중은 참여를 통해 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특히 두셀은 정보기술의 발전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다. “아랍 국가에서 일어난 혁명에 자극을 받아 스페인에서 대규모 군중집회가 일어날지 그 누가 알았겠느냐”며 “각종 전자 매체의 발달로 ‘전자 민주주의’까지 바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본주의에 잘 적응했지만, 지금처럼 계속 가속페달을 밟았다가는 결국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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