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방한했다고 한다. 한겨레와 중앙선데이에 동시에 인터뷰기사가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한번 읽어보기 위해서다. 개인적으론 이 '스타 페미니스트'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문체, 혹은 양파에 대하여'(2004)란 글에 적은 바 있다(<로쟈의 인문학 서재>에 들어가 있다). 차라리 '스타' 없는 페미니즘이 더 낫지 않을까란 게 내 생각이었다. 그 '스타'도 지금은 '할머니'가 됐다... 

 

한겨레(11. 05. 30) “여성이여, 위계 아닌 연계의 세상 위해 노력하라”

세계적인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77)이 23일 한국에 왔다. 2002년 이후 거의 10년 만에 <에스비에스>(SBS) ‘서울디지털포럼’ 참석차 들른 것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페미니스트 운동가이자 진보적 언론인으로 살아온 스타이넘을 지난 24일 오전 서울 광장동의 한 호텔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1970년대 미국의 낙태 금지 반대 피켓시위를 벌이던 사진 속의 ‘금발 페미니스트’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옅은 색 잠자리테 선글라스에 가죽 라이더재킷, 검은 부츠컷 바지를 입은 그는 팔순을 눈앞에 둔 ‘할머니’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생기가 넘쳤다.

인터뷰는 통역 이정규씨와 페미니스트 신학자 현경 교수(미국 유니언신학대)를 사이에 두고 한시간 남짓 진행됐다. 만나본 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페미니즘의 표어를 여성운동의 전면에서 실천하면서도 자신의 유명세를 향유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위계(rank)가 아닌 연계(link)가 중요하다”고 인터뷰 동안 그는 여러번 말했다. 인터뷰 전체 내용은 이날 대화와 이화여대에서의 페미니스트 모임, 서울디지털포럼의 기조연설 내용 등을 추가해 구성했다. 



-먼저 본인이 이끌고 있는 여성미디어센터(Women’s Media Center)에 대해 설명해달라.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잘 나타나지 않고 있는 여성들의 참모습을 드러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도 각종 인터뷰 쇼에 등장하는 여성은 6%밖에 안 된다. 여전히 여성들은 구름 속에 가려 있는 존재다. 우리는 언론인들과 여성 지식인들을 교육하고 지원한다. 성차별과 인종차별적 사건 또는 선거 등을 여성의 시각에서 모니터링한다. 재단에서 기금을 모아 운영하는데, 영화배우 제인 폰다가 이사 중 한명이다. 그의 연극 한편과 영화 한편의 판권이 우리에게 기부된다.”

-중산층 여성들의 지원이 운동에 도움이 되나?
“한국에 ‘강남 좌파’라는 말이 있듯이 미국에는 ‘리무진 리버럴’이란 조어가 있다. 우파들이 진보진영을 얕잡아보고 낮추기 위해 만든 용어다. 진보진영을 위선적이라고 비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패배시키려는 술책이다. 정의를 위해 모두가 가난해야 하는 건 아니다. 소비지향적이면 안 되겠지만 의미있게 돈을 쓰는 것과 모두가 잘사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그의 아내 엘리노어는 부자이면서도 상당히 진보적이었다. 1920~30년대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침체에서 빠져나오도록 돕지 않았는가. 우리는 중산층 여자들과도 연대해야 한다. 당신도 나도 중산층 여자이다. 우리는 분리가 아니라 공통점을 봐야 한다.”

-여자들끼리의 경쟁, 적대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가부장제가 우리를 분리시키고 경쟁하게 만들고 있다. 각자 가부장제 안에서 인정받도록 부추겨진 것이다. 우리는 인종차별이 소수자들이 지배계층의 인정을 얻기 위해 서로 다투는 메커니즘이란 걸 봐왔다. 내 경우, 백인만 모여 있거나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없거나 보육시설이 없는 곳에선 강의하지 않는다. 다양성과 사소함을 인정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선택할 권리를 주고 지지해주는 것이 최선이다.”

스타이넘은 1972년 페미니즘 잡지 <미즈>를 창간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성이 미혼 시절 ‘미스’로 불리다가 결혼과 함께 ‘남자의 아내’인 ‘미시즈’로 불리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사용하는 ‘미즈’라는 단어를 되살려냈다. 그는 “미즈라는 단어는 1400년대부터 1700년대까지 영어권에서 사용되다가 사라진 어휘였다”고 말했다. 가부장제가 공고해지면서 여성을 남성 가계의 일원으로 표현하게 된 역사적 사실을 들춰낸 다분히 정치적인 발견이었다.

-한국 사회의 출산율 하락에 대해 알고 있나? 여성들이 ‘출산파업’을 한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직장의 패턴이 남성을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하는 여성에겐 맞지 않는다. 기혼여성이 일자리에 맞추는 게 아니라, 일자리가 여성에게 맞춰줘야 문제가 풀린다. 인식도 더 변해야 한다. 남자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잘 양육할 수 있지 않나. 스웨덴이 좋은 예다. 여자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좋은 의도로 출산파업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 낳거나,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데 낳으라는 국가적 요구도 있다.
“출산은 선택이어야 한다. 가부장제는 여성의 몸을 재생산의 도구로 생각해 계급과 인종, 그리고 민족에 대한 구분을 지속해 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여성은 재생산의 필요성 때문에 몸을 착취당하는 불리함을 경험해야만 했다. 위계, 인종, 계급, 민족적 문제로 겪는 불리함을 여성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순수 혈통의 자손을 보아야 한다는 몸에 대한 통제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여자들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혼제도 안으로 들어가는 측면도 있다.
“결혼으로 갖는 직장(가정)이 나쁜 직장보다 좋다는 인식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결혼이 더 나쁜 직장이 될 수도 있으니 잘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웃음) 우리는 경제적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아이를 키우고 유지하고 집안일을 하는 돌봄노동이 가진 생산적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흔히 전업주부더러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얘기하지 않나.”

-한국 사회에서도 ‘여자가 집에서 논다’고 표현한다.
“언어적으로 여성을 노예취급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해온 일들은 옛날 노예들이 하던 일이다. 일을 해도 티가 안 나고, 생산성도 없고, 경제적인 가치도 없고,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경제적 회계방식이 바뀌어 돌봄노동에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

-아이들 주위를 맴도는 ‘헬리콥터 맘’, 아이들을 무섭게 양육하는 ‘호랑이 엄마’처럼 문제적 엄마들도 있지 않나?
“야망 있고 똑똑한 여자들이 집에 갇혀 있을 때 지배적인 양상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여자들이 장소를 잘못 차지한 것이다. 자기 삶을 살지 못해서 아이더러 대신 살라고 하니까. 호랑이 아빠나 호랑이 엄마나 아이들의 본성은 장미, 피튜니아, 라일락인데 튤립, 백합으로 만들어버린다. 미국도 그렇지만 한국은 더 심한 것 같다. 다 대학 가라고 하지 않나. 나는 대학에서 배운 걸 극복하는 데만 25년이 더 걸렸는데. 우리 모두 나름 고유성이 있는 존재로 공동체 일원으로서 인정받고, 균형이 있어야 한다.”

스타이넘은 “내 최근의 관심은 사랑을 받고 안전하게 양육된다면 자존감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일상에서 위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내게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그것 자체가 위계질서를 만드는 것 같아 싫다고 했는데, 상대방이 듣는 건 거부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은 조건을 달아서 네가 사인해준다면 나도 사인을 해주겠다고 한다. 우리는 연계(link)돼 있지, 위계(rank)돼 있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시스템 구조를 붕괴시키는 건데, 일상과 언어는 대단히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1970년대만 해도 ‘근동’이나 ‘극동’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는데 역사가 달랐다면 유럽이 ‘서북아시아’로 불렸을 수도 있다. 서구가 말하는 역사는 서구 백인 남성의 역사였지, 인간의 역사가 아니었다. 잘못된 것을 치료하는 식의, 보충학습이 필요한 것이다. 사진 한장을 찍어도 다양한 계층, 나이, 인종을 포괄해 담는 실천이 중요하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사회운동을 하느라 글을 너무 쓰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1987년 <미즈>는 잡지의 색깔을 바꾸지 않는 대신 경영난을 버티지 못해 남의 손에 넘어갔다. 50대에 이르러 그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고, 치료사의 도움으로 내면으로 들어갔고 평생 강연과 사회운동 때문에 어지러웠던 집을 비로소 정돈했다고 한다. 1992년에 쓴 <내부로부터의 혁명>은 그러한 인생의 전환과 맞닿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언론인으로서 당신의 글을 발견하기가 생각보다 힘든 것 같다.
“슬픈 일이다. 지난 30년 동안 길에서 일어났던 일을 쓰려고 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길 위에 있다 보니까 쓸 시간이 없는 것이 문제다. 내가 쓰려고 하는 내용은 아주 사소한 일들에 대한 것이다.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쇼핑몰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다면, 두려워서 개입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개입하는 건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고 아이가 알도록 일깨워주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실제로 흑인 노래 중에 <아이를 때리지 마라>는 노래가 있는데, 누가 길에서 아이를 때리는 걸 보면 이 노래를 부른다.”

그가 방한한 다음, 한국에선 미군이 몰래 파묻은 고엽제 문제가 터졌다. 때마침 북한에서 이주한 여성들이 본인들의 경험을 얘기하는 여성주의 행사에 참석한 뒤, 함께 방한한 정현경 교수가 “6자회담 테이블에 여성이 낀 적이 없었다”는 말을 하자 이렇게 덧붙였다.

“유엔 결의안을 보면 평화회담에는 여성이 참석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특히 남북한 대치 상황에서 남북 여성들의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군사주의가 만연한 상황이면서 동시에 성적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세계 여성들은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여성이 더 도덕적이거나 덜 폭력적이어서가 아니라, 남성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결이 필요하다. 상호의존성이 필요한데, 그것이 해답이다. 여성과 자연으로부터 신의 개념을 분리시켜 지배하려 했던 것이 가부장의 역사다. 생명체에 신성이 존재하는 것을 여성들은 더 잘 이해하고 있다. 종교의 정치화는 반대해야 하지만 각자 개인이 힘을 내고 인류 공동의 일원으로서 위계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부분을 어떻게 조직화해낼 수 있나?
“미국 학생운동의 성공 사례를 예로 들고 싶다. 보스턴의 한 대학에서 어느 교수가 정치적인 문제로 해직을 당했다. 학교는 학생들과 강사들의 시위를 무시했지만, 통신서비스 제공 노동자와 식당 노동자들이 함께 시위를 했더니 효과가 있었다. 통신 노동자나 식당 노동자만 시위를 했더라도 그들은 해고당했을 것이다. 힘을 합쳐야만 한다. 우리가 함께할 때 더 바꿀 수 있고, 다 바꿀 수 있다. 각각 그룹이 원하는 바를 모두 달성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시비에스 방송국에서 여성 비서들과 중역이 힘을 모아 비서들이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했더니 절반 이상이 합격했다. 기업으로서도 얼마나 많은 인재가 양성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이처럼 피라미드식 위계보다 원형의 연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무슨 얘길 해주고 싶나?
“너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라. 남자가 스스로에게 주는 가장 좋은 금언이 ‘나에게 해준 만큼 상대방에게 대하라’는 것이라면, 여자는 거꾸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네가 남들에게 해주는 것만큼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를 예로 들자. 스스로 자격 있는 아이라고 느끼지 못하면 그것을 만회하려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열심히 하게 된다. 그 순간의 ‘나’를 내가 열성적으로 대하는 ‘다른 사람’의 위치에 놓아보라. 그럼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나는 명상을 하는데, 내 안에 완전히 다른 내면의 실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타고난 길이 다르니, 모두가 명상을 할 필요는 없지만, 핵심은 우리 각자가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인지를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이며 사회적 존재이므로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주는 친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럼 자신감도 채워질 것이다. 여성운동은 결국 신념과 힘을 얻게 되는 과정이다.” (인터뷰 / 이유진 기자)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플레이보이클럽 위장취업 경험 폭로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1934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버라이어티쇼에 나가 춤을 추고, 미인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거의 독학으로 스미스대학에 입학했지만 자신이 받은 교육은 ‘죽은 백인 남자들’의 성취 외엔 없다는 최종 결론을 내리게 된다. 졸업 뒤엔 인도로 가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평화운동을 접했다.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면서 1968년 잡지 <뉴욕>의 창간에 참여했고, <에스콰이어> <뉴욕 매거진>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글을 실었다. 플레이보이 클럽의 버니걸로 위장취업해 거기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남성사회의 여성차별과 성희롱 실태를 폭로해 일약 명성을 얻었다. 1972년에는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Ms.)를 공동 창간해 15년 동안 편집장을 지냈다. 백인 중산층 페미니즘을 내세운 베티 프리던과 달리 유색인종 여성들과 연대했고, “여성 인권을 증진시켜줄 사람에게 투표하라”며 미국의 지난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흑인인 오바마보다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2010년 11월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5인’ 중 한명으로 선정됐다. 지난 27일 열린 에스비에스 서울디지털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중앙선데이(11. 05. 30) "남자 검사들, 가정 포기하고 일한다? 그렇게 못났나”

전 세계 여성운동계의 ‘왕언니’ 글로리아 스타이넘(77)은 예쁘고 유쾌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농담을 즐기며 매력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웃음엔 뼈가 있다. 스타이넘이 누군가. 1960년대부터 인종 및 남녀 차별 철폐 운동에 앞장서온 페미니즘계의 스타이자 산증인이다. 뉴욕 타임스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스럽다(Gloria Steinemesque)’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그가 1971년 공동 창간한 잡지 ‘미즈(Ms.)’는 여성을 결혼 유무에 따라 ‘미스(Miss)’와 ‘미세스(Mrs.)’로 나눴던 차별을 부숴버렸다. 오늘날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엔 니카라과에서 인도까지 각지의 남녀 팬들이 남긴 ‘당신은 내 인생의 멘토’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가득하다. SBS 주최 서울 디지털 포럼 참석차 방한한 그를 단독 인터뷰했다.

-한국의 검찰총장이 “남자 검사는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집안일을 포기하고 일하는데, 여자 검사는 애가 아프다고 하면 일을 포기하고 애를 보러 간다”고 발언했다. 
“한국의 남자 검사들이 못났다고 광고하는 발언 아닌가. 검사는 정의 구현의 선봉에 서는 존재다. 인생의 기본 터전인 가정을 등한시해야만 일을 잘할 수 있는 존재들이 과연 그 일을 잘해낼 수 있을까? 아니다. 가정을 포기하는 건 기본적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거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균형이다. 그리고 그 균형은 남녀가 함께 맞춰야 한다. 한국에선 검찰총장이 선출직인가 지명직인가?”

-대통령 지명직이다. 
“그럼 지금이라도 시민들이 탄원서를 넣어 의사 표시를 해야 하지 않겠나. 불평만 해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어떤 일에 대해 분노를 느낄 때, 그 분노를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바람직한 변화가 가능하다. ‘화’를 나 홀로 속으로 삭히면 혼자 우울증만 걸릴 뿐이다. 자신의 분노를 다른 이와 나누고 연대해야 사회 변혁은 가능하다.”

-‘일하는 엄마들’이 큰 화두가 됐다.
“한국에선 여성이 남성보다 육아 부담은 두 배, 가사 부담은 세 배에 달한다고 하더라. 여성이 직장과 가정이라는 두 개의 일터에서 모든 부담을 지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한국 여성들이 ‘출산 파업(baby strike)’을 하고 있는 건 당연하다. 내가 만난 한국여성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하고 열정이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괜히 그럴 이유가 없다. 여자는 하인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남녀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육아·가사)을 남자들은 못 한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그렇게 프로그램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어떤 여성은 아이를 낳은 후 육아 부담을 견딜 수 없어 한 달간 가출을 했다. 돌아와보니 남편이 아기를 아주 잘 돌보고 있더란다(웃음). 모성애가 더 강하다는 믿음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이미 나왔다.”

-남자들은 집안일을 ‘도와준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그 점부터 잘못됐다. ‘도와준다’는 건 원래 자신의 책임이 아닌데 선의로 남의 일을 해준다는 의미다.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육아와 가사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미래도 밝다.”

-한국에선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란 인식이 있었는데 많이 달라졌다.
“(웃으며) 결국 중요한 건 ‘땅’이지 않나. 먹을 것을 경작하는 곳도,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곳도 이 ‘땅’이다.”

-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도 있는데.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만들어낸 웃기지도 않는 말이다. 여성은 천성적으로 남들과 공감하길 원하고 협력을 추구하는 존재다.”

-하지만 본인에게도 ‘적’이었던 다른 여성들이 있었을 것 아닌가.
“물론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난 어려서부터 엄마를 돌보면서 어찌 보면 ‘엄마에게 엄마 노릇을 하며’ 자라왔다. 이혼한 엄마가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우울증까지 겪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여성을 돌보는 존재’라고 자신을 규정하며 자랐고, 이것이 다른 페미니스트들과도 충돌하는 경우가 있었다.”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너무 착했던 게 후회된다’고 했던데.
“지금도 그렇다. 70년대, 80년대엔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일은 잔뜩 해놓고 (미국) 민주당에 최종 결정을 맡기는 식이었다. ‘아빠에게 의지한 성실한 딸’이었던 셈이다. 좀 더 직접적인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서 대중과 호흡했으면 좋았을 거다. 하지만 차별 철폐 운동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돌처럼 단단한 차별을 없애려면 힘을 모아 조금씩 그 돌을 쪼아내는 수밖엔 없다. 때론 회의감도 들겠지만, 나를 믿어라. 변화는 온다.”

- ‘얼굴도 예쁜 페미니스트’라고 인식이 되어 있다. 플레이보이 클럽의 ‘바니걸’로 위장취업해 쓴 폭로 기사로 유명했었다. 지금도 멋진 스타일이 눈에 띈다.
“여성이 아직도 자신의 마음이나 머리가 아닌 외모로 평가받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어떤 신문사 편집국에선 나를 보고 ‘멍청한 금발머리는 필요없다’고 퇴짜를 놓은 적도 있다. 여성에게 외모는 무기이면서 한계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움이 좋다. 나 스스로를 치장하는 것도 좋아한다. 패션과 스타일은 다르다. 패션이 브랜드 중심의 세계라면 스타일을 지킨다는 건 나를 표현하는 일이니까.”

-지금도 올해가 77세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비밀이 뭔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답변이 너무 평범한가(웃음). 페미니스트들이 (남자들 관점에서지만) 못생기고 자신을 가꿀 생각은 안 하고 진지한 괴물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페미니스트로서 난 신나고 즐겁고 행복하게 일해왔다. 훌륭한 애인도 여럿 있었고, 그들은 지금 나의 친구들이기도 하다.”

-왜 페미니스트를 두려워할까.
“남성들이 찔리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복수를 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인종차별도 백인들이 ‘흑인들을 내버려두면 결국 우리를 몰아내고 억압할 것’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존재했다.”

-결혼 제도에 비판적이다가 2000년 데이비드 베일(‘다크 나이트’ 영화배우 크리스천 베일의 아버지)과 결혼해 충격을 줬다.
“난 데이비드를 ‘남편’이 아니라 ‘내가 결혼한 친구’라고 불렀다. 당시 데이비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미국 영주권이 필요했고 뇌임파종을 앓고 있었다. 결혼으로 영주권은 물론 건강보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해준 결정이었다. 그는 2003년 사망했지만 우린 서로를 존중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꾸렸다. 물론 결혼 전에 불행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난 결혼 전에도 행복했다. 지금도 그렇고.”

-유방암 투병을 하기도 했는데.
“선고를 받는 순간 들었던 생각은 ‘지금까지의 인생, 참 좋았다’였다.”

-소원이 있다면.
“언젠가 대학 캠퍼스에서 이런 대화가 들려오는 것. 나이 지긋한 교수가 ‘옛날엔 피부의 멜라닌 색소량이라든가 타고난 성별에 의한 차별이 있었단다’라고 하면 남녀 학생 모두가 ‘에이, 그런 말도 안 되는 구석기 시대가 어디 있어요?’라며 웃는 거다. 그리고 더 이상 페미니즘이 존재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길 꿈꾼다.” (전수진기자) 

11.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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