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은 대개 가장 편안한 시간이지만 원고가 밀린 날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꼽으며 잠시 기분을 내본다. 어느덧 6월이고 여름이다. 오며가며 타고다니는 버스도 에어컨을 켜지 않지만 후덥지근하기에 체감으론 이미 여름이지만. 이 여름엔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1. 문학 

정과리 교수가 고른 건 필립 딕의 <화성의 타임슬립>(폴라북스, 2011)이다.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Library of America)’에 포함돼 화제가 되기도 했던 ‘필립 K. 딕 걸작선’(12권)이 나오고 있고 <화성의 타임슬립>은 그 첫 권이다. <죽음의 미로>, <닥터 블러드머니>가 같이 나왔다. 표지만으로도 탐을 내게 하는 시리즈이다.     

 

덧붙이자면 나보코프의 소설 <절망>(문학동네, 2011)이 세계문학전집의 하나로 출간됐다. '문학사상 가장 아름다운 미스터리'란 소개문구를 달고 있는데, 내가 붙인 추천사는 이 나보코프판 <분신>이 "나보코프가 도스토옙스키에게 던진 강력한 도전장"이란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열린책들)은 <이중인격>(누멘, 2010)으로도 번역돼 있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책은 정현백/김정안의 <처음 읽는 여성의 역사>(동녘, 2011)이다. 책의 의의에 대해선 이렇게 짚는다. "여성사 분야의 많은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사 입문서가 나오지 못한 실정이었고, 그동안 몇 권의 번역서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제목처럼 한국인에 의해 처음 시도된 여성사 책이어서 무척 반갑다.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서양 여성사의 흐름을 개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공저자의 한 사람인 정현백 교수의 <여성사 다시쓰기>(당대, 2007)이 여성사의 문제성과 실제를 보여주는 책이라면 조선 여성의 살을 다룬 정해은의 <조선의 여성, 역사가 다시 말하다>(너머북스, 2011)는 "조선 시대를 살았던 25인의 여성과 무명의 여성들에 대한 해석을 담았다".    

개인적으론 '20권으로 읽는 20세기 한국사' 시리즈 가운데 <이승만과 제1공화국>(역사비평사, 2007), <박정희와 개발독재>(역사비평사, 2007),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역사비평사, 2011)도 스트레이트로 읽어봄직하단 생각이 든다. 80년대까지도 '역사'로 바라보게 된 시점에 도달해 있는 셈인데, 90년대 이후의 역사도 '20권'에 포함돼 있는지 궁금하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책은 오가와 히토시의 <철학의 교실>(파이카, 2011)이다. "저자는 고전철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반인에게 쉽게 철학적 사고의 전개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철학적 고전에 대한 확실한 이해에 기초하면서 쉽게 풀어나가는 필력이 힘있게 펼쳐지는 작품"이라는 평이다. 철학교실에서의 문답식 철학이라면 피터 케이브를 강사로 초빙해도 좋을 듯한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어크로스, 2011)가 최근에 나온 책이다(물론 원제는 좀 다르다).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마젤란, 2009)라는 물음에서 철학을 이끌어내고 있으므로 '어려운 철학'이란 핑계는 대기 어렵겠다.    

'리더스 가이드'를 표방하는 철학 입문서 시리즈도 번역되고 있는데, 크리스토퍼 원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입문>(서광사, 2011)과 존 프레스턴의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해제>(서광사, 2011)가 같은 시리즈의 원저를 번역한 책들이다(어째서 어떤 건 '입문'이고 어떤 건 '해제'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유사한 성격의 책으론 제임스 윌리엄스의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라움, 2010)도 꼽을 수 있다. <차이와 반복>(민음사, 2004)에 대한 '해설과 비판'을 시도한 책이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김혜원의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오마이북, 2011)이다. 나로선 좀 생소한 책인데 소개는 이렇다. "탈식민주의를 연구하는 어느 학자가 <하위주체[소외된 자]는 말할 수 있는가?>라는 글을 써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바 있다.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인 김혜원씨가 열두 명의 독거노인들로부터 들은 절절한 인생이야기를 모아 놓은 이 책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우리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위주체'는 '서발턴'의 번역어로 쓰이는 말이다. 탈식민주의 역사학 쪽에서 소개한 책들이 눈에 띄는데, 김택현 교수가 쓴 <서발턴과 역사학 비판>(박종철출판사, 2003), 라나지트 구하의 책을 옮긴 <서발턴과 봉기>(박종철출판사, 2008)이 '서발턴'을 제목에 걸었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감요식의 <소셜 리더십>(미다스북스, 2011). 제목상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의 리더십을 다룬 책으로 보인다. "소셜 네트워크에 대해 많은 책이 출간되었으나 저자는 이 분야의 다양한 저작과 강의 활동을 바탕으로 독자들이 부담 없이 읽으면서 소셜 네트워크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같은 컨셉의 책으론 김대중의 <소셜리더가 되라>(다음생각, 2011)도 있다. 소셜 미디어와 기업활동에 관해서는 에릭 퀼먼의 <소셜노믹스>(에이콘출판, 2009)도 참고해볼 수 있겠다. 2년전 책이면 이미 낡은 것인가?   

6. 과학 

장영애 동아사이언스 실장이 고른 책은 조나단 해링턴의 <기후 다이어트>(호이테북스, 2011). 제목과 표지 모두 생소한데, 이런 의미를 갖고 있다 한다. 

지구온난화 문제는 이제 새삼 거론할 필요 없이 우리의 삶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세계 각국은 기후 문제를 국가 아젠다로 정하고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일 수 있는 정책과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인간의 활동이나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직접 또는 간접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뜻하는 ‘탄소발자국’이라는 용어가 알려지면서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일이 대규모 공장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해야 하는 일임이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를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내 탄소발자국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해 봤지만 ‘어떻게?’에서 막혔다면 이 책은 정말로 도움이 된다. 

지구온난화 혹은 기후변화 문제가 중요한 이슈인 건 틀림없지만, 심각성/시급성으로 보자면 원전 문제가 더한 듯도 하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의 <원자력 딜레마>(사이언스북스, 2011)가 다루고 있는 문제다. 이미 '딜레마'란 말에서 저자의 입장은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는 있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책은 강판권의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효형출판, 2011)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선 나무를 부모처럼, 아내처럼, 친구처럼 대할 줄 알게 되는데, 이렇듯 나무를 보는 감수성의 눈이 깊고 넓어지면 그림을 보는 시각도 더불어 확장되는 것 같다."는 소감을 적었다. 저자 강판권 교수는 중국의 농업경제사가 전공이라지만 지금은 '나무학'의 권위자라고 해야 하지 않나 싶다. 혹 '나무대학'이란 곳이 있다면 학장님 감이다.   

8. 교양 

철학자 탁석산이 고른 교양서는 지상현의 <한국인의 마음>(사회평론, 2011)이다. 부제는 '우래된 미술에서 찾는 우리의 심리적 기질'. 저자는 그 심리적 기질이 '조울증형'이며 '매닉친화형'이라고 말한다. 소개에 따르면 "매닉친화형이란 조울증의 병전(病前) 기질을 일컫는다고 하는데 이 개념을 이용하면 흥, 신명, 해학 등 한국인의 외향성과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인의 내향성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주장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한국인의 마음을 다룬 또다른 책으론 정운현의 <정이란 무엇인가>(책보세, 2011)도 있다. "'다정도 병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네 정의 의미를 되짚어본 정에 관한 종합 담론서"라고 소개되는 책이다. 개인적으론 탁석산의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창비, 2008)를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는데(특히 한국인의 허무주의를 설명하는 대목), 한국인의 마음을 다룬 책들도 우리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게 해줄지 궁금하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고른 실용서는 한기호의 <베스트셀러 30년>(교보문고, 2011)이다. 1981년부터 교보문고가 집계한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한국출판 30년의 기상도를 압축한 책. 전두환시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한 가지 유력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10. 자유론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자유'로 정했다. 밀이나 벌린의 <자유론>이 아니라 일본 학자들의 <자유론>이다. 사이토 준이치의 <자유란 무엇인가>(한울, 2011)가 시발점인데, 기본문헌 안내에서 눈여겨본 책들이 예전에 번역됐거나 이제 막 번역된 참이어서 같이 묶어보았다. 이노우에 타츠오의 <타자에의 자유>(아침, 2008)와 사카이 다카시의 <통치성과 자유>(그린비, 2011)가 그렇게 묶인 책인데, <통치성과 자유>의 원제는 <자유론: 현재성의 계보학>이다.  

11. 05. 28.  

P.S. 개인적으로 '6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숲, 2007)로 골랐다. 군말이 필요없는 작품이다. 강대진의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그린비, 2010)가 유용한 안내서이다. <처음 읽는 일리아스>(웅진지식하우스, 2006)도 가이드삼아 구해놓았는데, 항해사에 딸린 작살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하튼 6월은 전장에서 보내게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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