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어제 낮에 급하게 쓴 것인데, 이번주에 강의차 읽은 고골의 <죽은 혼>에 대해 간단히 적었다. 고골의 편지는 <친구와의 서신교환선>(나남, 2007)에서 인용한 것이다.  

  

한겨레(11. 04. 16) 추악한 삶의 백과사전

“저에게 추악함이란 이상한 게 아닙니다. 저 자신이 상당히 추악한 편이니까요. 제가 아직 덜 추악하던 시절, 저는 모든 추악함에 당혹해했고, 추악함의 종류와 규모에 우울해졌고, 그리하여 저는 러시아를 생각하면 두려움에 떨곤 했습니다.”

19세기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편지에 나오는 말이다. 그의 걸작 <죽은 혼>은 그 추악함 혹은 비속함을 한데 끌어모은 ‘서사시’이다. 비평가 벨린스키가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을 ‘러시아 삶의 백과사전’이라고 부른 것에 견주면, 고골의 <죽은 혼>은 ‘추악한 러시아 삶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을까.

‘죽은 혼’이란 말은 중의적이어서 ‘죽은 농노’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륜마차를 타고 한 지방도시에 도착한 주인공 치치코프는 지주들을 찾아다니며 죽은 농노들을 구입하려고 애쓴다. 10년에 한번 정도 인구조사를 했기에 이미 사망한 농노들도 명부에 올라가 있었고 지주들은 그들에 대해서도 인두세를 물어야 했다. 그렇듯 농노 명부에는 들어 있지만 존재하지는 않는 농노들을 사들여서 그걸 담보로 거액을 대출하려는 게 치치코프의 계산이다.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리석고 속물적이면서도 의심이 많은 지주들을 잘 구슬려야 했는데, 치치코프는 주인공답게 그런 ‘실용적인 측면’으로는 대단한 지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농노 200명을 가진 지주를 대할 때와 300명을 가진 지주를 대할 때, 또 500명을 거느린 지주를 대할 때 각기 다른 뉘앙스의 표현이 가능한 러시아식 대화법에 익숙했다. 



죽은 농노들을 사러 다니면서 치치코프가 만나는 지주들은 다만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될 뿐인, 곧 영혼은 이미 죽은 ‘죽은 혼’들이다. 다정다감하긴 하지만 항상 뭔가 모자란 듯한 마닐로프의 서재에 놓인 책은 2년 내내 같은 쪽이 펼쳐져 있고, 탐욕스러운 소바케비치의 방안 가구들은 모두 주인을 닮아서 “나도 소바케비치야!”라고 외쳐댄다. 거꾸로 보면 소바케비치 자신이 그런 소파나 의자와 구별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치치코프는 어수룩하면서도 이기적인 여지주 코로보치카와 저열할 만큼 구두쇠인 늙은 지주 플류시킨 등을 더 만나며 그들에게서 죽은 농노를 구입한다. 그의 ‘사업’은 잘 진행돼 나가는 듯하다.

하지만 지사가 주최한 파티에서 한 소녀의 아름다움에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귀부인들의 질투를 사게 되고 그가 죽은 농노들을 사러 다닌다는 사실이 폭로된다. 도시 전체가 치치코프의 정체에 대한 온갖 뜬소문과 유언비어로 혼란에 빠지게 되고 지방 검사는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한다. 결국 치치코프는 서둘러 도시를 떠나며 말미에서 작가는 그가 어떤 인물이고 어떻게 살아왔던가를 일러준다.

분명 치치코프는 선량한 주인공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악한도 아니다. 다만 강한 소유욕을 가진 인물이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자본과 물욕의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초상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고골은 인간에게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는 욕망도 있다고 믿었다. 보다 높은 섭리에 이끌리는 욕망이다. 그래서 치치코프의 차가운 내면에도 천상의 지혜 앞에 무릎 꿇게 하는 어떤 것이 있으리라고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새롭게 변신하게 될 치치코프의 모습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부정적인 인물들을 묘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고골이지만 안타깝게도 ‘선량한 주인공’을 그려낼 능력은 갖고 있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러시아여, 넌 대체 어디로 질주하는 거냐?”라고 물었을 따름이다. 우리는 대체 어디로 질주하는 것일까

11. 04. 16.  

P.S. '러시아 삶의 백과사전'이라고 하니까 떠올리게 되는 책은 유리 로트만의 <러시아 문화에 관한 담론>(나남, 2011)이다. '러시아 귀족의 일상생활과 전통(18-19세기초)'이 부제니까 <예브게니 오네긴>의 배경과도 겹친다. 러시아 문화사에 관한 책으론 가장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8세기 이후 3세기 동안의 문화사를 다룬 올랜도 파이지스의 <나타샤 댄스>(이카루스, 2005)와 함께 러시아문화사에 대한 필독도서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더 보탤 만한 책은 케임브리지 컴패니언 시리즈로 나온 <현대 러시아문화>(1999)인데, 올해 안에 번역본이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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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6 0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6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6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6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6 09: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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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1-04-16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지만 매우 인상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소바케비치 자신이 그런 소파나 의자와 구별되지 않는다"...한동안 못 잊을 문구네요. 감사합니다^^

로쟈 2011-04-16 20:12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