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조금 앞당겨 적는다. 꽃샘추위가 오늘 낮부터는 풀린다고 하니까 내주엔 봄날씨를 경험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구제역이 잠잠해지면서 아직 지진 피해의 규모도 산정되지 않는 이웃나라에 비하면 '태평한' 편이지만 한국 청소년의 '더불어 사는' 능력이 세계 꼴찌라는 기사가 뜨는 걸 보면 언젠가 자업자득의 파국과 대면할 날도 오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대학도서관의 현실에 대한 리포트는 어떤가.  

국내 대학에서 책이 가장 많은 서울대에서도 최신 전공서적은 모두 대출중이고, 서가에 남은 책은 대부분이 오래된 책입니다. 지방대는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광주의 한 사립대학은 장서가 5만 8천 권으로 적은데도 도서 구입비는 예산의 0.1%에 불과합니다. 학생 한 명당 3천 9백 원인 셈인데요, 이런 책 한 권도 살 수 없는 액수입니다.(...) 국내 대학의 도서 자료 구입비는 한 해 예산의 1% 안팎입니다. 전자책을 포함해 4년제 대학은 학생 1인당 평균 10만 원선, 전문대는 1만 8천 원을 쓰는 셈입니다. 한 해 등록금 1천만 원 시대, 학생들은 국내 대학들이 어디에 돈을 쓰기 위해 적립금을 10조 원이나 쌓아놓고 있는지 의아해할 뿐입니다.(SBS)

'전 국민 책읽기 운동' 일환으로 선정/발표하는 '이달의 읽을 만한 책' 목록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를 할 수 있는 기반시설, 곧 도서관의 확충이다. 대학도서관이건 공립도서관이건 마찬가지다. 물론 알아서 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순진한 일일 터이다...  

1. 문학 

아무려나 '이달의 일을 만한 책' 목록으로 넘어가면, 정과리 교수가 추천한 책은 중국계 미국 작가 하진의 <멋진 추락>(시공사, 2011)이다(여담이지만 하진은 이름으로 검색하기가 가장 어려운 작가의 한 사람이다. 성과 이름을 다 해서 고작 '하진'이기에). 알라딘을 기준으로 하면, 국내에 이미 8권의 책이 소개됐고 이번에 3년만에 나온 건 단편집이다. 그의 작품으론 <기다림>(시공사, 2007) 말고는 그다지 한국 독자들의 호응은 얻고 있지 못한 편인데, 그래도 전담 번역가인 왕은철 교수의 노고로 계속 번역되고 있다. <호랑이 싸움꾼은 찾기 힘들어>(현대문학, 2008)과 <전쟁쓰레기>(시공사, 2008)까지 거슬러 올라가볼 수도 있겠다.  

  

동시대 한국작가들의 소설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편혜영의 세번째 소설집 <저녁의 구애>(문학과지성사, 2011), 천운영의 두번째 장편소설 <생강>(창비, 2011), 그리고 김숨의 세번째 소설집 <간과 쓸개>(문학과지성사, 2011) 등이다. 제목을 좀 맞추자면 편혜영의 소설집은 <통조림 공장>이라고 해도 좋았겠다. 마지막 단편의 제목이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역사분야의 책은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1-5>(웅진지식하우스, 2011)이다. 지난달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미리 꼽아보았기에, 이달엔 나대로 앙드레 보나르의 <그리스인 이야기>(책과함께, 2011)를 골라둔다. 나중에 나온 2-3권은 아직 못 받았지만 1권만 해도 처음 시작이 마음에 든다. "인간은 모두 원시인으로 시작했다. 그리스인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원시인으로 시작했지만 '그리스 문명'을 건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추천한 책은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사계절, 2011)이다. "이 책은 저자가 치열하게 독서한 48권으로부터 얻은 단상을 우리에게 평이한 말로 들려주고 있다. 객관적 독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예를 찾아가며 자신이 얻은 교훈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는 게 소개다. 이미 널리 읽히는 책이기게 군말은 필요하지 않겠다. 개인적으론 두 권의 '입문서'를 보태고 싶다. 윌리엄 프라이어의 <덕과 지식, 그리고 행복>(서광사, 2011)은 부제가 '고대 희랍 윤리학 입문'이며, 댄 오브라이언의 <지식론 입문>(서광사, 2011)은 제목 그대로이다. 봄꽃들이 비로소 기지개를 켤 4월은 '입문'도 필요한 시간이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예기치 않은 제목이다. 정외영의 <골목에 꽃이 피네>(이매진, 2011). "강북구 수유동의 ‘아줌마’들이 지난 16년 동안 한데 힘을 합쳐 삭막하고 황량한 생활공간을 정감 넘치는 이웃과 마을로 복원시키는 데 성공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같은 '이웃살이' '마을살이' 범주의 책으론 유창복의 <우린 마을에서 논다>(또하나의문화, 2010)도 있다. 그런 관심이 '이야기'에서 '분석'으로 나가면 <나와 너의 사회과학>(김영사, 2011)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유학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 대한 저자 우석훈의 희망이 현실화될 수 있을까? 동네 반상회에서 이런 책을 주제로 토론할 수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라구람 라잔의 <폴트라인>(에코리브르, 2011)이다. 제목만으론 감을 잡기 어려운데, 소개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에 관해 많은 책들이 쓰여졌고 이 책도 그 중의 하나다. 그러나 지금까지 출판된 책들이 주로 진보진영의 시각에서 저술된 반면, 이 책은 보수 진영의 시각으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크게 차별화된다. 또한 일본의 대지진을 예측이라도 한 듯 책 제목을 <폴트 라인>이라고 달았다. 폴트 라인(fault line)은 지진을 유발하는 단층선을 의미한다." 저자의 시각이 독특한데, "저자는 세계 경제에 많은 단층선이 있어서 이를 진단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다시 대재앙을 맞을 것임을 예고한다.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가는 세 가지 폴트 라인은 경제와 정치의 단층선, 국가 간 무역불균형의 단층선, 영미식 금융제도와 독일ㆍ일본식 금융제도의 단층선이다." 같은 주제를 다룬 책으로 데이비드 위더머 등이 쓴 <애프터쇼크>(쌤앤파커스, 2011), 로버트 라이시의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김영사, 2011) 등도 나란히 참고해봄직하다.  

6. 과학

장경애 실장이 추천한 책은 화제작 <로지코믹스>(랜덤하우스코리아, 2011)이다. "20세기의 지성으로 포장돼 있던 버트런드 러셀을 한 꺼풀 벗겨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책으로 "영국 귀족 출신의 철학자이자 수학자로 알려진 ‘딱딱한’ 러셀을 만화라는 형식 덕분에 좀 더 쉽게, 좀 더 인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러셀 선집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비아북, 2011)와 다시 나온 <종교와 과학>(동녘, 2011)까지, 갑자기 러셀 붐이다.  

  

좀더 근원적인 독서를 원하는 독자라면 그의 자서전과 함께 박병철 교수의 <버트런드 러셀의 삶과 철학>(서광사, 2006), 러셀 자신의 철학론 <나는 이렇게 철학을 하였다>(서광사, 2008), 그리고 편파적이란 평판 속에서도 가장 유명한 철학사 중 하나인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 2009)까지 다시 챙겨볼 수 있겠다. 음 <서양철학사>를 읽던 게 학부 1학년 때이니 그새 한 세월이 지나갔군...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민병일의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아우라, 2011)이다. 제목 그대로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이야기인가 보다. 오래된 일상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라면 사진작가 윤광준의 '생활명품' 이야기들과 잘 어울릴 듯싶다.  

개인적으론 데이브 히키의 <보이지 않는 용>(마음산책, 2011)을 예술분야의 책으로 읽어볼까 한다. "미국 미술평단의 '이단아'로 불리는 그는 수잔 손택, 아서 단토, 로잘린드 크라우스, 제리 살츠 등과 함께 미술계 안팎으로 강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평가"란 소개에 솔깃해서다. 손택과 단토와 크라우스를 읽은 적이 있는 만큼(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살츠는 생소하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하니 관심이 생기는 것. <에어 기타>와 <앤디 워홀> 등의 책들을 갖고 있다.   

8. 교양 

철학자 탁석산이 고른 책은 조셉 조네이도의 <만들어진 아동>(마고북스, 2011)이다. 모처럼 모르고 지나친 책이 나와 반갑다. "만들어진 전통, 만들어진 근대 등 최근에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이 원래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책들이 나오고 있다. 이 책은 그 대상이 아동이라는 점에서 좀 더 정신에 자극을 준다."는 게 추천 이유다. '만들어진 XX'만큼, 아니 그보다 더 유행한 제목은 'XX의 탄생'인데, '아동'도 예외는 아니다. 필립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새물결, 2003)은 <만들어진 아동>과 나란히 읽어둠직하다(웬지 '5월의 읽을 만한 책' 같긴 하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고른 실용서는 윌리엄 케인의 <거장처럼 써라>(이론과실천, 2011)이다. 한번 소개 페이퍼에 올려놓았던 책인데, 그때의 멘트를 다시 따오면 데이비드 로지의 <소설의 기교>(역락, 2010), 프랜신 프로즈의 <소설, 어떻게 쓸 것인가>(민음사, 2009)도 교본이 될 만한 책이다. 소설의 각 단계별로 모범이 될 만한 예시들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말 그대로 교재형 책은 제임스 스콧 벨의 <소설쓰기의 모든 것>(다른, 2010). '플롯과 구조'를 다룬 1부만 나와 있는데, 몇 부까지 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전형' 같다. 이 시리즈가 다 출간되면 혹 나도 소설을 써볼까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이라고 하니까... 

10. 일본문화사

내 맘대로 고르는 책의 주제는 '일본문화사'로 정한다. 폴 발리의 <일본문화사>(경당, 2011)을 원서까지 구해놓은 참이다. 게다가 '근대 일본의 문화사'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근대 지의 성립>(소명출판, 2011)도 눈길을 끈다.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가 기획한 이 시리즈는 별권을 포함해 총 11권으로 구성돼 있다고 하는데, <근대 지의 성립>은 제3권이고, 이미 나온 <확장하는 모더니티>(소명출판, 2011)가 제6권이었다. 시리즈가 완역되면 좋겠다... 

11. 03. 27.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니콜라이 고골의 <죽은 혼>이다. 새 번역본이 작년 10월에야 출간돼 이번 학기부터 비로소 강의 커리큘럼에 집어넣은, 고골의 대표작이다. 오랜만에 다시 읽게 돼 반갑고, 고골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처음 강의하게 돼 약간은 설레기도 하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산더미이지만, 다시 읽어야 하는 책도 그 못지 않다는 사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끔 한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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