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관한 한 지난 두 주는 '조용한' 주였다. 책이야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나오지만 가끔씩 '폭발'하는 주에 비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목받지 못하고 묻히는 책들이 나오는데, 언론리뷰를 기준으로 삼자면 역사학 책 두 권이 그렇게 보인다.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실과 흔적>(천지인, 2011)과 설혜심 교수의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길, 2011). 두 역사학자의 역사론으로 나름 일독의 의미가 있을 듯싶어 자투리 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
대전일보(11. 03. 19) 인간의 역사는 진실인가 거짓인가
미시사(微視史) 개척자로 평가받는 이탈리아의 역사가 카를로 긴즈부르그가 쓴 역사학 방법론에 관한 책이다. 2500년의 세월 속에서 진실한 것, 거짓된 것, 허구적인 것들을 지적하고 추적하며 진실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지 문제를 함께 제기한다.
대표작인 ‘치즈와 구더기’에서 16세기 이탈리아의 한 방앗간 주인을 통해 농민 문화를 들여다봤던 저자는 이 책에서 2천500년의 역사 속에서 진실한 것, 거짓된 것, 허구적인 것들을 추적하면서 진실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묻는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 로마에 대한 생동감 있는 묘사(에나르게이아)와 역사 서술,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 소설가 스탕달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허구와 진실 사이에 있는 거짓된 진실로 보이는 역사적 소재들을 해부한다. 이처럼 상당히 이질적인 주제들을 언급하고 있는 모든 장들의 내용은 이야기의 실마리로서 우리를 현실의 미로로 인도해주는 실과 흔적들 간의 관계라고 설명한다.(김수영 기자)
한겨레(11. 03. 26) 역사학의 새로운 맛은?
1970년대 유신 말기 감옥에 갇힌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교재의 하나가 모리스 돕의 <자본주의 발전 연구>였다. 1946년에 나온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자본주의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실증적으로 검토한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어쩌랴 감옥에서 넉넉한 건 시간뿐이었으니. 역사학자 이영석을 역사학으로 이끈 것도 돕이었다. 친구들이 감옥으로, 노동현장으로 갈 때 서양사를 공부한 그는 유럽의 사회사와 경제사 연구를 통해 시대의 빚을 갚으려 했다. 학벌주의가 판을 치는 학계에서 명문대 출신도, 유학파도 아니고, 사학과조차 없는 지방대 교수인 그가 서양사학회장에 선출되게 만든 힘은 근면과 성실,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 같은 쓰나미를 버틴 학문적 뒷심이었다.
이영석은 역사학자 설혜심 연세대 교수가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로이 포터, 키스 토머스와 함께 ‘내가 사랑하는 역사가들’로 소개한 이다. 온천장, 관상학, 지도 등 독특한 주제로 역사학의 새로운 맛을 선보인 지은이가 이번엔 ‘종합 선물세트’ 같은 역사책을 내놓았다. 여기엔 역사학에 왜 상상력이 필요한가를 주장한 논문부터, 한국 서양사 연구의 계보, 마녀사냥과 신대륙 발견에 대한 연구 등 역사연구 다양한 시각, 트위터와 미시 역사가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는 데 착안한 일상과 관련된 역사 등 다양한 글들이 모였다. 한 주제에 천착한 이제까지의 책과 다른, 숙달된 조교의 시범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애초 지은이가 염두에 둔 제목은 ‘역사 실험’ 또는 ‘역사 연습’이었다.(조홍섭 기자)
11. 03. 27.
P.S. 근대 영국사가 주전공인 이영석 교수의 번역으로는 윌리엄 조지 호스킨스의 <잉글랜드 풍경의 형성>(한길사, 2007)이 있다. 역사학 공부의 여정을 담은 '사회사의 유혹' 두 권도 역사학도에겐 유익한 길잡이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