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나온 역사분야의 책으론 미시사의 개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실과 흔적>(천지인, 2011)을 바로 구입했지만 데이비드 웨인스의 <이븐 바투타의 오디세이>(산처럼, 2011)도 관심도서로 꼽을 만하다. 이미 출간된 <이븐 바투타 여행기>(창비, 2001)의 분량이 부담스런 독자에게는 유용한 다이제스트판 가이드북일 듯싶어서다.

  

세계일보(11. 03. 19) 이슬람 세계의 진면목을 들여다보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촉발돼 중동 각국에 불어닥친 민주화 열기는 전제 권력들을 하나둘 차례로 무너뜨리면서 사상 초유의 변화 바람을 몰고 있다. 특히 우리에게 중동은 머나먼 사막의 땅이 아니라 원유를 공급하는 생명줄과 다름없는 중요한 곳이지만 이슬람 세계에 대한 지식은 너무 부족하다. 이븐 바투타(1304∼1368)의 여행기는 지금의 중동 정치질서가 자리 잡기 시작한 중세 무렵의 모습을 비교적 상세히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영국 랭커스터대 이슬람학과 명예교수인 데이비드 웨인스 교수는 14세기 무렵의 중동과 아시아를 묘사한 아랍어 기록인 이븐바투타 여행기를 음식, 의복, 접대 문화, 성(性) 등 주제별로 다시 편집해 영어로 번역했다. 

1997년 미국 잡지 ‘라이프’가 에디슨, 콜럼버스, 루터, 갈릴레이, 다빈치 등 지난 1000년간의 위인 100명을 선정하면서, 여행가로는 이븐 바투타(44위)와 마르코 폴로(49위)를 포함시킨 사실에서도 이븐 바투타의 업적을 짐작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보다는 이븐 바투타를 우위에 두고 있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는 지금도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비교적 당대의 사실을 전해주는 역사 자료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가 여행한 지역은 대부분 이슬람교의 세력이 굳건히 자리 잡았던 곳으로 현대인들에게 이슬람 세계의 진면목을 들여다볼 기회를 주고 있다.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됐으며 1장에서는 이븐 바투타와 마르코 폴로 등 중세 여행가들이 어떻게 여행기를 쓰게 됐는지 소개한다. 2장에선 본격적으로 이븐 바투타의 여정을 따라간다. 밤새 “발톱에서 피가 나올 지경”으로 걷고 배 침몰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기도 한 이븐 바투타의 여행담이 담겨 있다. 3, 4장에서는 각국의 음식문화, 종교와 관련된 일화 등을 소개하고 5장에선 이븐 바투타가 여행 중에 만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의 생활 양식 등을 서술했다. 특히 10명이나 됐던 자신의 아내들과 각 지역 여성들을 비교한 부분에서는 호기심을 끌고 있다.

“몰디브 제도에서는 지참금이 적고 여성들이 사교를 즐기기 때문에 결혼을 하기가 쉽다. 선박이 도착하면 선원들이 여성들과 결혼하는데 바다로 나가야 할 때면 이혼한다. (중략) 나는 세상에서 이곳 여성처럼 사귀기가 쉬운 여성들은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의 인심도 넉넉했다. 만라위라는 이집트의 한 작은 마을에는 제당소가 무려 11곳이나 있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인정 넘치는 제당소 주인의 배려로 갓 구운 빵을 제당소 설탕 가마에 담가 먹을 수 있었다.”

그는 1325년 7월 2일 고향을 떠나 메카와 메디나의 성지순례를 한 뒤 인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국 등 대륙을 넘나들며 1354년 다시 모로코에 도착하기까지 30년간 12만여㎞를 여행했다. 동시대 마르코 폴로의 여정보다 무려 3배가 넘는 거리였다. 저자인 웨인스 교수는 “통상 자신이 갔던 지역의 풍광과 모습을 묘사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600여년 전의 여행가인 이븐 바투타는 이미 인문학적인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어느 여행가보다도 독창적”이라고 평가했다.(정승욱 선임기자) 

11. 0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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