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발견' '가장 빛나는 데뷔작' 등의 평판을 듣고 보게 된 영화는 윤성현 감독의 데뷔작 <파수꾼>이다. 초저예산으로 이런 완성도의 영화가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대사, 연기, 촬영, 모든 것이 뛰어난, 손에 꼽을 만한 데뷔작(이런 영화는 왜 학생단체관람을 하지 않는 걸까?). 두번째 영화가 잔뜩 기대된다. 간단한 리뷰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  

   

씨네21(11. 03. 02) 10대 소녀 못지않게 예민한 10대 소년의 관계 <파수꾼>

아들이 자살했다. 자살의 이유를 모르는 아버지(조성하)가 아들의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아들의 이름은 기태(이제훈). 학교에서 짱으로 불리던 기태에게는 희준(박정민)과 동윤(서준영)이란 친구가 있었다. 희준은 기태가 죽기 몇주 전 전학을 갔고, 동윤은 기태가 죽은 뒤 학교를 그만두었다. 희준과 동윤이 학교를 떠난 이유가 기태와 관련있다고 아버지는 생각한다. 하지만 희준과 동윤의 기억이 드러내는 것은 기태가 아닌, 그때 자신에게서 터져나온 뜻밖의 잔인함이다.

이러지 말자. 뭘?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이제 그만하자고. 뭘 그만해? 소년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핵심적인 정보가 없다. 설명하기도 민망한 사소한 오해가 갈등을 일으킨다. 먼저 화해를 청하는 쪽은 말에 진심을 담는 방법을 모르고, 이를 받아들여야 할 쪽은 상대의 진심을 알려는 태도보다 자존심과 분노를 먼저 앞세운다. 마치 연인들의 싸움과 흡사한 대화의 피로감이 영화가 전하는 비극의 시작이다. 다시 말해 <파수꾼>은 누군가가 먼저 태도를 달리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에 관한 이야기다.  



<파수꾼>은 10대 소년들을 묘사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들의 관계는 10대 소녀 못지않게 예민하다. 자신을 빼놓고 다른 친구들이 나누는 시선에 분노하고, 본의 아닌 말로 상처를 주고는 후회하며 “나한테는 너만 있으면 된다”는, 그 시절이 아니라면 엄두가 안 날 고백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니 <파수꾼>과 비교할 수 있는 영화는 <말죽거리 잔혹사>가 아닌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일 것이다. 친구의 죽음을 통해 이들이 환기하는 것은 그 시절의 소년들에게 있었지만, 잊었거나 지워버렸던 사랑의 단면이다.(강병진)   

한겨레(11. 02. 28) 소년들의 폭력 속 그 무엇

어두운 공터에 슬금슬금 기어든 쥐들처럼 소년들이 모여 있다. 누군가는 때리고, 누군가는 맞고,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구경한다. 인정투쟁이 끊이지 않는 작은 왕국. 이 익숙한 풍경이 없는 소년들의 성장담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것은 정작 무엇을 인정받기 위한 폭력일까. 수많은 영화들이 말해준 것처럼, 그저 그건 수컷세계의 약육강식의 법칙이 반복되는 것이거나 이유 없는 사춘기의 분노거나, 그도 아니라면 불우한 가정사에 대한 반항일 따름일까. 윤성현의 <파수꾼>을 보며 문득, 폭력에 다쳐가는 소년들에게 지금껏 단 한번도 진지하게 그 이유를 물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파수꾼>은 관습화된 답을 밀쳐내며, 영화 전체를 그러한 질문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한때 기태(이제훈), 동윤(서준영), 희준(박정민)은 단짝 친구였다. 기태는 일명 학교 ‘짱’이지만, 동윤과 희준의 관계에서만큼은 그 어떤 권력관계도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가족사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 기태도 동윤과 희준의 집은 거리낌 없이 드나든다. 그러나 사건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아주 작은 일을 계기로 기태와 희준의 관계가 멀어진다. 단지 멀어지는 게 아니라, 그들 사이에 짐승의 위계가 들어선다. 삼각형의 한 변이 무너지자, 남은 두 변은 버티지 못한다. 희준은 전학을 가고, 동윤은 기태에게 등을 돌리고, 어느 날 기태는 죽어버린다. 소년의 죽음. 그것은 영화의 엔딩이 아니라, 실은 영화의 시작이다. 아들의 느닷없는 죽음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무력한 아버지가 아들의 친구들을 하나씩 찾아가 만난다. 



영화는 기태의 아버지가 친구들을 만나는 순간마다 소년들의 과거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상하다. 거듭되는 플래시백으로 영화의 구조가 쌓아 올려질수록, 우리는 확신이 아니라, 불확신에 휩싸이게 된다. 그 플래시백들이 살아남은 누군가의 기억인지, 그 기억이 상대의 마음까지도 온전히 기억해낼 수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영화는 점점 기태의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로부터 멀어지고, 이 복잡한 구조의 어디에도 반전이나, 비밀은 숨겨져 있지 않다. 우리가 보는 건 그저, 어디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알기 어려운, 애처로운 어긋남들이다. 그러니 <파수꾼>의 형식은 그 자체로 소년들의 관계의 결처럼 보인다. 아무런 답도 주지 않은 채 영화가 그렇게 끝날 무렵, 살아남은 소년이 현재의 문을 열고 과거로 들어가서 죽은 친구와 마주하는 장면에서, 비로소 우리는 이 영화의 본심과 마주하게 된다. 그 시절 소년들이 서로에게 애타게 인정받고 싶어 하던 그 마음, 집착과 폭력과 애걸로 돌변하던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소년들의 잔혹함, 그것은 감정이 없어서도, 넘치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도 아니라, 알아봐주는 이가 없어 외롭게 내팽개쳐진 마음이 짐승이 되어 울먹이는 소리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소년들의 폭력을 무심한 오해 속에 가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남다은_영화평론가)  

11. 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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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 2011-03-1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고 싶기도 하고, 보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영화평이 인상적입니다.

로쟈 2011-03-13 22:43   좋아요 0 | URL
영화 자체가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