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대중과 소통하는 지식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고 나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건 위키리크스와 어산지이다. 러시아에 잠시 다녀오는 동안 '위키리크스'에 관한 두 권의 책이 화제가 된 듯싶은데, “정보공개는 투명성을 높이며 이 투명성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는 이들의 신념에 동의를 표하며(비슷하게 흉내내자면 나의 모토는 "지식의 공유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이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진즉에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올라가 있다는 위키리크스의 활동과 그 여파가 앞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추측된다. '비밀이 많은 정부'를 갖고 있는 우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경향신문(11. 02. 19) ‘비밀 없는 세상’ 열려는 위키리크스의 비밀

타임지는 독자들이 뽑은 2010년의 인물로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대표 줄리언 어산지를 선정했다. 위키리크스는 지난해 4월 미군 아파치헬기가 이라크 민간인을 폭격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으로 세계를 분노시켰다. 7월에는 아프가니스탄전 관련 문건 7만6000건, 10월에는 이라크전 관련 문건 39만건을 공개해 명분 없는 전쟁의 실체를 폭로했다. 이어 11월에는 미 국무부 외교문건 25만1000건으로 외교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위키리크스가 무너뜨린 건 미국의 도덕성만이 아니다. 권력층 비리에 성난 튀니지 민중들은 23년 만에 민주화 혁명을 일으켰고, 이 열기가 이집트로 옮겨붙어 무바라크의 30년 독재를 끝냈다.

위키리크스가 설립된 건 2006년 12월이지만 명성과 영향력은 지난해 절정에 이르렀다. 다음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한편 어산지는 스웨덴 여성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스웨덴 법원의 구속영장이 집행돼 런던에서 체포된 뒤 일주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위키리크스가 한 일은 범죄인가, 정의인가. 어산지는 어떤 인물인가. 



<위키리크스>란 제목의 책 두 권이 나란히 나왔다. <위키리크스-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박규호 옮김, 1만5000원)는 2007년부터 위키리크스와 협력 관계였던 독일 ‘가디언’지의 두 기자가 이 조직과 어산지를 객관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위키리크스가 한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폭로와 관련된 법적·윤리적 쟁점이 무엇인지, 권력과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각도로 분석했다. 또 다른 책 <위키리크스-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배명자 옮김, 1만3800원)은 위키리크스의 2인자였다 어산지와 결별한 독일 출신 IT전문가의 내부 고발이다.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에서 저자들은 어산지의 개인사와 위키리크스의 탄생을 상세히 소개한다. 1971년 호주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어산지는 히피와 해커의 혼합물이다. 그의 어머니 크리스틴은 히피문화에 경도돼 17세에 가출했으며 혼자 어산지를 키웠다. 그후 사이비 종교집단의 일원인 남자와 살다가 헤어진 뒤 계속 추적을 받았다. 어산지의 유랑 기질은 여기서 비롯한다.

어산지는 10대 초반인 1980년대 중반 코모도어64란 이름의 홈컴퓨터를 통해 모뎀으로 네트워크에 연결하는 실력을 갖췄고, 곧 해커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추정 IQ 140~180, 멘닥스란 이름으로 유명했던 그는 통신사 노텔 네트워크에 들어갔다 컴퓨터 범죄로 기소된다. 그후 멜버른대학 수학과에 들어갔으나 사막에서 잘 달리는 장갑차 기술을 개발하는 데 염증을 느껴 학교를 그만둔다.

위키리크스의 아이디어는 1996년 존 영이란 뉴요커가 운영하던 크립톰이란 사이트에서 얻었다. 당시 영은 자신이 입수한 비밀문서를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10년 뒤인 2006년 어산지는 영에게 자신의 프로젝트를 설명하면서 도메인 등록을 부탁한다. 이어 진보적 정치관을 가진 대니얼 매튜스를 비롯한 5명의 핵심 멤버가 모인다.

위키리크스는 전 세계 개인들이 연결된 네트워크로, 활동은 메일 교환과 채팅을 통해 이루어진다. 내부고발자의 신변안전을 위해 제보자가 웹사이트의 보내기 단추를 클릭하면 발송된 자료는 암호화되어 50개국의 수많은 서버를 거친다. 메인 서버는 스웨덴에 있으나 웹사이트 입구에서 매복하는 정보기관의 적을 교란하기 위해 스스로 가짜를 만들어내는 장치도 돼있다.

위키리크스 이전에도 내부고발자는 존재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주인공인 ‘딥 스로트’(마크 펠트 FBI 국장)가 그렇고, 1970년대 초반 베트남전 극비문서를 복사해 신문사에 돌렸던 대니얼 엘즈버그도 있다. 고문직을 부탁받은 엘즈버그는 이를 수락하지 않았으나 어산지의 아이디어에 갈채를 보냈다. 어산지는 2007년 1월 NGO모임인 세계사회포럼에서 자신의 계획을 알렸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해 말 케냐 전직 대통령의 비리 문건으로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 이어 2008년에는 스위스은행그룹 율리우스 베어의 고객데이터를 폭로했다.

위키리크스의 명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은 미군병사 브래들리 매닝이다. 심약한 컴퓨터광이자 동성애자로 이라크에서 정보분석 업무를 하던 그는 간단한 조작만으로 미 국방부와 국무부의 엄청난 정보를 빼돌렸다. 그는 제보자 절대보호라는 위키리크스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깨뜨림으로써 감방행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 ‘딥 스로트’가 27년 만에 스스로를 공개했듯이 영원히 비밀을 지키는 건 힘든 법이다. 그는 아주 빠르게 이 사실을 채팅에서 익명의 상대에게 고백했다가 미 당국에 체포됐다.

어산지와 위키리크스의 활동은 아주 획기적인 것이다. 거대 국가권력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정치운동이지만, 본질적으로 언론운동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위키리크스는 3년 만에 워싱턴포스트가 30년간 한 것보다 더 많은 특종을 했다”고 말한다. 이는 언론 엘리트의 능력을 뛰어넘는, 인터넷시대의 다중지능이란 개념으로 설명할 만한 일이다. 위키리크스의 목표가 미국인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중국·러시아·중앙아시아의 억압적인 정권들이 목표였다. 이들의 원칙은 “정보공개는 투명성을 높이며 이 투명성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위키리크스의 활동은 복잡한 쟁점을 낳는다. 비판자들은 “비밀 유지는 현대국가의 성립 기반”이며 “국가권력이 무너진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어산지 1인권력”이라고 지적한다. 최대 피해국인 미국은 어산지에게 방첩죄 적용을 검토했으나 그렇게 되면 정부기밀을 보도한 모든 언론사를 기소해야 한다. 가장 큰 아이러니는 정보의 생산과 유통 자체에 있다. 미국을 경악에 몰아넣은 정보의 작성자는 바로 미국 자신이다. 정부의 기밀 정보를 다루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250만명을 넘어섰고 유출 가능성은 넘쳐난다.

저자들은 위키리크스의 부작용보다 기여에 더 큰 무게를 둔다. 국가기밀의 폭로가 정부에 피해를 주고 그 손실을 만회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나 중장기적 시각에서 그것은 정치를 새롭게 조정하고 정화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어산지는 컴퓨터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낳은 괴짜 천재다. 자유분방한 그는 10대 후반에 동거했으나 아내와 아이가 곁을 떠난다. 지난해 스웨덴에서 며칠 사이에 두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고 콘돔 사용을 거부함으로써 성폭행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이 사건이 터지자 핵심 멤버들은 그에게 2선으로 물러날 것을 요구했지만 어산지는 자신이 “이 조직의 심장이고 영혼이며 창립자고 대변인이고 최초의 프로그래머이고 기획자이고 자금조달자”라며 거부한다.

그런 어산지를 이해했고 비판했던 사람은 위키리크스 독일대변인이자 프로그래머였던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다. 그는 어산지의 독단적인 조직운영, 불투명한 자금관리에 항의해 지난해 10월 결별했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에서 자신이 아는 위키리크스와 어산지를 비판적으로 서술했다. 그러나 위키리크스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은 분명하다. 그는 ‘오픈리크스’라는 새 네트워크를 준비하고 있다. 이 밖에 ‘리크스’ 혁명은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중국 인권운동가들은 거번먼트리크스를 구축 중이며 발칸리크스, 인도리크스, 브뤼셀리크스등 지역·내용적으로 특화된 리크스들이 출범했다.(한윤정 기자) 

11. 0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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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1 08: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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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1 09: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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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1 1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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