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같은 페테르부르크가 나에게 역겹지 않다고, 거리에서 욕설과 밀고 사이에서 사는 것이 나에게 즐거우리라고 그대는 정말 생각하는가?”라고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던 푸슈킨은 한편으로 “너, 표트르의 창조물을 나는 사랑하네, 너의 엄격하고 균형잡힌 모습을 나는 사랑하네.”라고 페테르부르크를 예찬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가 이중인격자인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이중성이란 것은 표트르의 도시이자 성 베드로의 도시, 페테르부르크의 본성(!)이자 페테르부르크 신화의 모순적인 중핵일 따름이다.

 

  



 

2003년이면 이 제정러시아 시절의 수도 페테르부르크가 탄생 300주년을 맞는다. 페테르부르크는 1703년, 그때까지 유럽사의 주류에서 이탈돼 있던 러시아를 서구화․근대화의 길로 이끈, 러시아란 말의 앞다리를 채찍으로 힘차게 들어올린 표트르 대제에 의해 핀란드만과 네바강 어귀의 늪지에 건설되었다. 즉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의 머리가 잉태한, 당대의 가장 거대한 계획도시이며, 늪지에 건설되는 바람에 15만명 이상의 인명을 희생시킨, 무덤 위에 세워진 도시이기도 하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대공사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우리의 황제께선 도시 전체를 건설하신 다음 그것을 땅위에 내려놓으셨소.”라는 전설이 이에 대한 답변이다. 요컨대 페테르부르크는 기적의 도시이자 적그리스도의 도시, 악마의 도시이다. 여기서 페테르부르크는 자연스럽고 가장 러시아적인 도시, 아니 ‘커다란 시골’ 모스크바와 대비되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비러시아적인 도시로서의 신화적 의미를 획득한다.

 

 

 

 

페테르부르크의 이러한 신화적 의미장을 재현/변주시키는 일련의 문학작품들을 러시아문학사에서는 아예 ‘페테르부르크 텍스트’로 분류한다. 페테르부르크 텍스들에서 이 인공도시는 환상적이고 유령적인 공간이라는 성격을 부여받으며 ‘환영성’과 ‘극장성’을 그 본성으로 거느린다.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믿을 수 없는 환영들이며 동시에 가식적인 연극들이다. 그 페테르부르크 텍스트의 머리에 푸슈킨의 <청동기마상>(1833)이 자리한다.

네바강가에 세워진 도시답게 돌의 도시 페테르부르크는 주기적으로 대홍수라는 자연의 재난을 겪게 되는데, 이 작품의 배경은 1824년의 대홍수이다. 가난한 하급관리로서 약혼녀 파라샤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던 예브게니는 대홍수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미치광이가 되어 페테르부르크를 헤매다가 표트르 대제의 동상인 청동기마상과 마주치게 되고, 그에게 증오의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곧바로 이 청동기마상에게 쫓기는 환상에 사로잡히며 끝내는 죽음에 이르고 만다. 이 작품에는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예찬과 한 ‘사소한’ 인간의 비극적인 죽음이 공존하는데, 그것이 바로 페테르부르크의 이중적인 진실이다. 페테르부르크는 서구화된 문명의 상징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끔찍한 묵시록적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고골의 이야기들 역시 ‘페테르부르크 텍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넵스키 거리>(1835)이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작품의 주인공은 페테르부르크의 대표적인 중심가인 넵스키 대로이다(우리의 종로쯤 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두 인물, 피스카료프와 피로고프는 넵스키 거리를 걷다가 각기 한 여인씩의 뒤를 쫓는다. 화가인 피스카료프가 쫓아간 미지의 여인은 유곽으로 사라지는데, 그녀가 매춘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피스카료프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편과 환상에 의지하다가 면도날로 자신의 목을 긋는다. 반면에 속물적인 장교인 피로고프는 뒤쫓아간 유부녀와 밀회를 하다가 그 남편에게 들켜 흠씬 두들겨맞는다. 무엇이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내는가? 그것은 페테르부르크의 악마성을 대표하는 넵스키 거리의 환영적인 불빛들이다. 그대, 페테르부르크에 가려는가, 부디 넵스키 거리의 불빛을 믿지 말지어다!

페테르부르크 텍스트의 정점은 가장 러시아적이면서 동시에 유럽적인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이다. 그의 작품들은 페테르부르크 텍스트의 표준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페테르부르크 사전’으로까지 불린다. 그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대학생과 하층민들의 병든 일상과 과장되고 병리적인 심리를 치밀하게 해부해냄으로써 이 도시가 삶의 공간이 아니라 죽음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로 19세기의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모든 도시 가운데 사망률이 가장 높은 도시였다. 더불어 여성 인구에 비해 남성 인구가 지나치게 많은 점이 특징적인데, 여성은 전체 인구의 30%에 불과해서 이 도시에는 매춘업과 비합법적인 성문화가 성행했다. 때문에 전체 아이들의 1/4이 비합법적인 아이들이었고(1870년대), 성병, 정신병, 폐병, 알콜중독, 자살자 수에 있어서 단연 러시아 1위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1866)의 배경 또한 바로 그러한 도시 페테르부르크란 사실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공리주의라는 서구 사상에 ‘감염되어’ 벌레만도 못한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한다. 하지만 그의 살인에 적극적인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은 찌는 듯한 더위와 숨막힐 듯한 악취로 넘실대는 한여름의 페테르부르크이다. 그를 뒤쫓는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라스콜리리코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신선한 공기’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결국 라스콜리니코프의 새로운 삶은 시베리아라는 새로운 공간에서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러한 일련의 작품들이 빚어내고 있는 페테르부르크 신화는 20세기초 작가들에게까지 계승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안드레이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1905)이다. 하지만 그러한 페테르부르크가 요즘은 자본주의에 물든 화려한 모스크바와 비교하여 러시아적이고 ‘시골스런’(!) 도시의 인상을 풍기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 이 글을 쓰는 데 참조한 글은 로트만 등이 쓴 <시간과 공간의 기호학>(열린책들)과 이덕형의 <빛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책세상)이다. 몇몇 인용문구들은 그 책들에서 얻어온 것이다. 그밖에 마샬 버만의 <현대성의 경험>(현대미학사)에서 이 주제와 관련한 유익한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분량상 이 글에는 참조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는 <페테르부르크의 형이상학>이라는 단행본 엔솔로지도 나와 있다.

20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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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스토예프스키의 페테르부르크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2-20 17:34 
    이덕형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 판타스마고리아 상트페테르부르크>(산책자, 2009)에 대한 리뷰기사가 있기에 스크랩해둔다. 두 주 전 기사인데,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칠 뻔했다. 내친 김에 오래전에 쓴 글도 찾아서 먼댓글로 링크해놓는다.   한겨레21(09. 12. 04) 환각의 도시를 떠돈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혼  ‘성 베드로의 도시.’ 1703년 표트르대제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정신적 삶의 위업’
 
 
2006-08-01 21: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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