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촌 주변에 최근 새로 비디오 가게 한곳이 문을 열었고, 다른 한곳은 문을 닫았다. 새로 생긴 곳은 '영화마을' 분점이고, 문을 닫은 곳은 위층의 책대여점이 인수해서 비디오대여까지 겸하고 있다. 두 곳의 공통점은 정작 비디오보다는 만화책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영화'마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만화'마을이었다!). 만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실망스러웠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새로 생긴 '영화마을'에서 미하일 하네케의 <피아니스트>를 발견한 일(웬만한 동네 비디오점에서는 잘 갖다놓지 않는 영화인데, 그래도 '영화마을'의 이름값을 한 것^^).



그래서 원래 빌리러 간 <밀애>와 <피아니스트>를 한꺼번에 들고 집에 돌아와 모처럼 영화감상 시간을 가졌다. 며칠전의 일이다. 두 영화는 모두 개봉관에서 볼 뻔했으나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 놓친 영화들이다. 그리고 제법 성격도 비슷하다. <밀애>는 <오아시스>가 빠진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김윤진의 영화이고, <피아니스트>는 역시나 작년 칸느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이다. 김윤진이 처음 나온 <쉬리>가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에(나는 대목에 TV에 나오는 걸 대충 봤다)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지만, <밀애>에서의 연기는 우리나라 여배우들 평균적인 연기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물론 이자벨 위페르는 자타가 공인하는, 그리고 프랑스가 자랑하는 연기파 배우이다(그녀의 연기세계에 대해선 <씨네21> 383호 참조).

같은 이름의 이자벨 아자니도 현기증이 나는 배우이긴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위페르를 더 좋아한다. 그것은 55년생인 그녀의 출세작 <레이스 뜨는 여자>(1977)를 본 10년쯤 전부터의 일이다. 그 영화를 보고 얼마 안 있어 원작 소설인 파스칼 레네의 <레이스 뜨는 여자>가 출간되기도 해서 더 잘 기억한다(그땐 '**하는 여자'란 제목이 유행이었다). 필모그라피를 보니까 클로드 샤브롤과 많은 영화를 찍었는데, 나는 대표작 중의 하나인 <마담 보봐리>를 2,000원 주고 사서 소장하고 있으니까, 그녀의 대표작 3편은 본 셈이다(프랑수아 오종의 <8명의 여인들>에도 나온다고 하니까 봐야겠다). 그녀가 잠시 할리우드에 진출해서 찍은 <베드룸 윈도우>까지 하면 4편을 본 셈인가? 어쩌면 더 봤을지도 모른다. 20대 초반의 위페르가(그녀의 도툼하고 발그레한 볼 때문에 나는 항상 사과라는 뜻의 불어 단어 뽐므pomme와 그녀를 연관짓곤 했다) 이젠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 50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한 것은 그녀의 무표정한 표정연기이다. 아마도 그녀는 가장 탁월한 무표정의 연기자 중 한 사람이다.

다시 <밀애>. 이 영화가 관심을 끈 건 <낮은 목소리>의 감독 변영주가 처음으로 만든 상업영화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기에 기대를 걸었지만, 기대에는 못 미치는 듯하다. '격정 멜로'를 표방했지만, 그다지 격정적이지 않았고(오히려 좀 심심한 영화이다), 줄거리나 인물설정들이 상투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어느날 남편이 바람을 피운 걸 알게 돼 그동안 행복했던(이 얼마나 상투적인가!) 아내는 충격을 받고, 함께 바닷가 시골로 낙향하지만, (이유있는!) 두통에 시달리다가 그곳 병원(보건소인가?) 의사를 만나고, 그의 제안에 불륜이라는 게임에 탐닉해 가지만 결국 들통나서 버림받는데, 설상가상 교통사고로 애인은 죽어버리고 혼자 살아남게 된다는 얘기. 영화의 끝머리는 여주인공의 나래이션으로 처리돼 있다. "활력은 불행으로부터 시작된다" 운운. 그런데, 이 결말 장면의 여자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이지만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 '활력'이란 게 반어적으로 이해된다. 원작인 전경린의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감상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된다. 결정적인 것, 영화에 '활력'이 없다는 것. 그리고 '유머'가 없다는 것(개그는 있다. 가장 힘들게 대학에 간 축구선수가 이천수라는 개그.).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움직인 장면은 첫장면에서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여자가 힘이 쭉 빠져서 남편의 뺨도 제대로 때리지 못하는 장면이었다(이런 걸 리얼리티라고 한다!).  



<피아니스트>에 대해선 사실 많은 말을 해야 한다(짐 호버만보다 더 많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나는 원작 소설인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문학동네)도 바로 구입을 했다. 참고로 엘리자베스 라이트의 <무의식의 시학>(인간사랑)에는 옐리네크의 원작 분석에 한 장을 할애하고 있기도 하다. 호버만이 잘 지적한 바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한때 음악신동이었던 한 여인과 괴물처럼 통제적인 그녀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녀, 피아니스트이자 대학교수인 에리카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 정신병원에서 사망한다. 그것이 말해주는 바는 에리카에게 정신병적 소인이 있다는 것이고, 영화는 그녀의 소인이 증상들로 발전해 가는 '무표정한' 모습을 쭉 따라간다. 이 영화의 홈피에는 라캉식 정신분석학으로 영화를 분석한 글도 떠 있다. 나중에 좀더 자세히 분석할 만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나는 사바나의 표범처럼 먹잇감을 안전한 나무 위에다 걸쳐놓는다). 내게 이런 식의 분석에의 욕망을 부추긴 최근의 영화로는 <머홀랜드 드라이브>와 <오아시스> 등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영화들은 많지 않다!..  

 

03. 0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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