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 쓴 글을 여기에 옮겨둔다. 그러니까 이 글에서 발췌 번역하고 있는 글은 2002년의 글이다...

 

도서관에 자료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점심시간이라 빈둥거리고 있다(너무 일찍 점심을 먹은 탓에). 자투리 시간이 난 김에 엊저녁에 읽은 데리다의 대담을 요약해 보기로 한다. 지에 작년 11월 둘째주에 실린 건데, 그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발견한 것. 대담자는 Kristine Mckenna이고, 분량은 A4지 3쪽 반이다. 어제 퇴근길에 전철에서 읽으면서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작년에 본 영화 <데리다>를 떠올리며) 시간이 나면 완역이라도 하고 싶지만, 요즘은 그럴 형편이 못된다. 해서 흥미로운 부분만 요약한다.  

대담의 첫머리에는 그의 약력이 소개되고 있다. 스페인계 유대인 가계인 데리다는 잘 알다시피 1930년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태어난다. 10살 때 비시치하의 반유대인 정책 때문에 학교에서 쫒겨나는데, 사유는 나중에야 담임으로부터 듣게 된다. 19세에 고등사범에 들어가기 위해 파리로 가고 두 번인가의 낙방끝에 프랑스 수재들의 전당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아내인 마거릿 오쿠튀리에(Marguerite Aucouturier)를 만난다(아주 고전적이지만, 고등사범 친구의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정신분석의가 된다. 영화 <데리다>에는 이들 부부의 사생활이 잠깐 비치는데, (눈치를 보니)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둔 것 같다. 1952-56년까지 고등사범에 다니면서 주로 후설과 하이데거를 읽는 데 전념한다(그가 초기에 인정받은 것은 유망한 현상학자로서였다). 하바드 장학생에 선발되어 5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며 60년에 다시 파리로 돌아오고 소르본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결혼을 한 건 1957년. 어디에선가 읽은 건데, 하바드에서 그는 조이스를 발견하고 탐독한다(그의 제임스 조이스론은 그 읽기의 경험에서 얻어진다).  

 

철학자로서 데뷔하게 되는 건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을 번역하고 거기에 장문을 서문을 붙인 책을 출간하면서부터이다. 이게 1962년이다. 그리고는 1967년에 <목소리와 현상> <글쓰기와 차이> <그라마톨로지>를 한꺼번에 출간하면서 철학적 담론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다. 그는 현재까지 45권 이상의 책을 썼으며, 이 책들은 22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1986년부터 어바인의 캘리포니아 대학의 방문교수로도 일하고 있으며, 이 대학에는 데리다 문서고(아카이브)가 1990년에 설치됐다(영화 <데리다>에 자세히 나오는 장면들이다).
"어떻게 영화를 찍게 됐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데리다는 처음엔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사진에 찍힌 자신의 이미지가 불편했기 때문에. 하지만 학술계의 저명인사가 되면서 점점 더 저널리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의 컨트롤이 힘들어지자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고. 그리고 자신이 찍은/찍힌 영화에 대해서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럼면서 질문을 던진다. "한 철학자가 반드시 전기를 가져야만 합니까?"

"어떻게 철학자는 전기를 안 가질 수 있나요? 어떻게 당신은 한 철학자의 삶으로부터 그의 저작들을 분리시킬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자는 다시 반문하고, 사실 이에 대한 대답은 영화 <데리다>에 얼마간 주어져 있다. 당신은 이해가 안 갈지 모르겠지만, 철학자들은 보통 그렇게 생각해 왔다고. 즉 철학자들은 자신의 삶은 주변적이거나 우연적인 걸로 간주했다. 자주 드는 예이지만, 데리다는 하이데거의 아리스토텔레스 강의를 예로 든 바 있다(그는 태어나서 사유했고, 그리고 죽었다는 식. 모든 철학자의 전기/생애는 그걸로 끝이다. 중요한 건 사유의 내용이니까).

그 다음 질문이 바로, 철학자의 전기로부터 자연스레 도출되는 거지만, 철학자의 사생활, 성생활에 대한 것이다. 질문자는 영화 <데리다>의 내용을 다시 상기시키면서("당신이 존경하는 철학자들과 대담을 하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란 질문에 데리다는 "그들의 성생활"이라고 답한다. 왜나면, "그건 그들이 말하지 않은 거니까.") 영화속 질문자의 짓궂은 질문. "그럼, 당신의 성생활은 어떠한가?" 여기에 대해 데리다는 답변을 거절/유보했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거기엔 어떤 한계/금지가 있는 것인가?

사실 영화속에서도 데리다는 유사한 답변을 하는데, 그건 카메라 앞에서 게다가 (불어가 아닌) 영어로 이루어진 그 대담에서는 자신의 가장 사적인 삶을 공개할 수 없다는 것. 또 그런 즉석문답식으로는 제대로/잘 말할 수 없다는 것. 데리다는 말도 잘하지만, 사실 그의 장기는 글쓰기이다. 그는 글을 통해서 말하고 싶어하고, 또 사실 여러 차례 자신의 삶의 흔적들을 남겨놓고 있기도 하다. 그가 거명하고 있는 책들은 <조종>(1974), <우편엽서>(1980) <고백Circumfession>(1991) 등이다. 이 책들은, 데리다에 의하면, 상당히 자전적이다.

이어지는 질문은 종교와 신앙에 관한 것(데리다는 종교에 관한 글들도 상당수 발표한 바 있고, 이것들은 에 묶여 있기도 하다). "당신은 신을 언제 처음 체험해 봤는가?" 혹은 "당신이 처음 신을 만났던 체험을 떠올릴 수 있는가?" 데리다는 먼저 신에 대한 관습적인 정의(당신이 껴안을embrace 없는 존재)를 유지하면,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릴적 경험한 유대교회당과 거기서 울려퍼지던 음악에 대해서 얘기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습관적인/존경이 결여된 신앙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데, 그때의 나이가 13세이다. 그리고 그때 처음 읽기 시작한 니체에 푹 빠져들게 되고, 니체와 루소는 그의 신이 된다. 그는 자신의 일기가 온통 니체와 루소에 대한 인용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고백한다. 비록 니체가 격렬하게 루소를 비판했지만, 그는 그 둘을 모두 사랑했고, 자기 안에 있는 이 둘을 어떻게 하면 화해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다음 질문은 하이데거와 관련된 것이다. 2차 대전 이후의 인터뷰(그러나 1976년 그의 사후에 비로소 공개된 인터뷰)에서 하이데거는 "니체 이후의 철학은 인류의 장래에 아무런 도움도, 희망도 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신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제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라고 말했는데, 당신도 동의하는가?

"나는 신(a god)이란 말은 쓰지 않겠다. 하지만, 이 진술에서 나의 흥미를 끄는 건 하이데거가 반종교적(anti-religious)이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가 말하고 있는 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이 아니다. 그가 가리키는 신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마 존재하지도 않는 신이다. 그는 누군가가 간절히 고대하는 바에 대해 신이란 이름을 부여한다. 즉 누군든지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구원할 이는 신이란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진술이 구원에의 희망을 부추기는 것이라면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무엇인가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라면, 그리고 우리가 그 도래할 자를 환대해야만 한다는 뜻이라면, 나는 동의한다. 이것이 내가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messianicity without messianism)이라고 기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본성적으로 메시아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뭔가 일어나기를 항상 고대한다. 심지어 우리가 아무런 희망없는 상태에 놓여있을지라도 어떤 기대감을 갖는 것은 시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희망없음이 가능한 것은 우리가 정말로 뭔가 좋은 일의, 우리를 사랑해줄 이의 도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가 그런 뜻의 얘기를 한 거라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2차 대전에 관한 질문. 30년생이니까 데리다는 소년시절에 전쟁을 경험한 세대이다. 그때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데리다는 견딜 만했다고 답한다. 그건 비교의 문제이기도 한데, 알제리의 유대인은 적어도 (유럽)대륙의 유대인들보다 훨씬 나은 상태에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알제리에도 반유태주의는 있었지만, 독일인도, 수용소도, 유대인 집단이주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심리적인 외상은 갖게 되죠. 만약에 당신이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학교에서 쫓겨난다면, 그 일은 당신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계속. 론 로젠바움이 쓴 <히틀러 해명Explaining Hitler>(1998)에서 저자는 '의미'야말로 히틀러의 최대 희생자였다고 말한 바 있다. 홀로코스트에서 우리는 어떠한 정합적 의미로 찾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당신도 동의하는가? 이에 대한 데리다의 대답은 유보적이다. 그는 거기에 답하기엔 아직 준비가 부족하며, 그 문젠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철학이 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데리다의 답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함께 잘 살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이건 정치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그리스 철학에서 제기된 것이기도 한데, 철학과 정치는 서로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삶을 변화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존재들이며, 그래서 다른 동물들보다 우리 자신을 우위에 놓는다. 나는 동물(성)의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철학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방식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동물이 아니며 우리 삶을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이 제기하는 문제는 이렇다. 우리가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우리가 이 문제의 해답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다 번역하다간 오후 시간을 다 잡아먹겠다. 내용이 좀 길어진 관계로 (하)편에서 마저 정리하도록 하겠다. 양해하시길...

덧붙임: 대담자가 말하는 하이데거의 인터뷰는 우리말로 완역/소개돼 있다. 하이데거에 관한 훌륭한 사이트인 http://holzweg.netian.com/index.htm로 가보시기 바란다. 오래전에 들러봤던 사이트이고, 생각해 보니까 번역문도 훑어봤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역시나 Word님이 일깨워준 정보이다. 그리고 이 인터뷰는 1966년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이다. 따라서 본문중에 내가 "2차 대전 직후"라고 한 건 "2차 대전 이후"로 수정했다(영어로는 'shortly after'이다). 데리다의 인터뷰와 관련된 부분만 옮겨온다(번역은 장승규님).

슈피겔
좋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개별 인간이 어떤 식으로든 그러한 강제의 그물 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혹은 철학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또는 철학이 개인이나 여러 개인들을 특정한 행동으로 이끌어 양자가 함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이데거
짧게 그러나 오랜 숙고를 통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철학은 세계의 현재 상태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이 것은 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적인 사고와 노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유일하게 남은 가능성은 사유와 시작을 통해 신의 출현이나 몰락 속에서 신의 부재를 예비하는 것이다. 부재 하는 신 앞에서 우리는 몰락한다.

슈피겔
당신의 사유와 그러한 신의 도래(到來) 사이에 어떤 하나의 연관이 존재하는가? 당신이 보기에 일종의 인과관계가 거기에 놓였는가? 당신은 우리가 신을 다시 불러내 사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이데거
우리가 신을 다시 불러내 사유할 수는 없다. 기껏해야 기다림의 예비를 일깨울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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