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칼 슈미트'를 검색하다가 발견하고 입수한 책은 독일의 저널리스트 헤닝 리터의 <씽커스>(21세기북스, 2010)이다. 두 달쯤 전에 나온 책에 뒤늦게 손이 간 셈인데, 독어책에 '씽커스'란 제목을 붙인 것이 눈에 들지 않았던 듯싶다. '20세기를 창조한 12명의 지식 정복자들'이란 부제가 책의 실상에는 더 가깝다. 12명의 면면도 눈길을 끌었지만(그 중 2명은 '초면'이다), 저자가 독일의 유력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인문학 부서 책임자였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글의 대부분이 그 지면에 실렸던 것이다.  

파이낸셜뉴스(10. 09. 15) 20세기 사상가 12인..그들은 ‘정복자’였다

요즈음 인문학이 위기다. 많은 사람이 인문학이 죽었다고까지 말한다. 철학, 문학, 예술, 역사 등을 포괄하는 인문학은 경제학, 심리학 등과 같은 소위 실용학문에 밀려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오랜 세월 인문학에 매달려 궁핍한 삶을 이어오다가 끝내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느 대학 시간강사의 죽음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인문학이 얼마나 척박한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인문학은 현실과 갈등하면서 고뇌하는 인간의 삶을 성찰하는 본연의 임무를 잊고 대중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미명하에 값싼 화장으로 스스로를 치장하고 대중들의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려는 탈선까지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인문학의 죽음을 더욱 앞당길 뿐이다.

독일의 대표적 일간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인문학 담당자인 헤닝 리터가 저술한 ‘씽커스 THINKERS’는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유럽을 대표하는 지성 12인의 삶과 그들의 작품을 통해 인문학의 매력과 그것이 우리의 삶과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소개하고 있다. 

무의식의 대륙을 정복한 지그문트 프로이트, ‘변신’의 실존을 살았던 프란츠 카프카, 언어 성찰을 통해 철학을 혁신하려했던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오늘날 인문학의 보고로 인정받고 있는 도서관을 세우고 새로운 문화사를 정립한 아비 바부르크, 문예비평부터 문명비평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지성의 아우라를 뿜어낸 발터 벤야민, 히틀러가 일으킨 재앙의 역사를 냉정한 어조로 묘사한 나치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 민주적 스노비즘의 종착역을 통해 속물’의 역사를 예견한 알렉상드르 코제브, ‘프랑스와 결혼한’ 앙드레 말로, 영국과 소련의 이중간첩이자 영국의 가장 권위 있는 미술사학자였던 앤서니 블런트, 30년에 걸쳐 ‘군중과 권력’을 집필하고 원시시대를 기준으로 현재를 평가하고자 했던 엘리아스 카네티,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는 담론의 대가이자 영국 지식인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던 이사야 벌린. ‘슬픈 열대’를 통해 사라져 가는 문화들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성의 정상에 오르기까지 사고의 탐색을 추구하고 사유의 도발을 감행한 이들 12인을 통해 저자는 근대철학에서 미술사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식의 제국을 조망하고 있다. 

20세기는 산업혁명으로부터 비롯된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의 변혁이 바야흐로 정점에 도달한 시기였다. 이들은 사색의 공간이 사라지고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냉혹한 시기에도 성찰하는 자세를 잃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종합적 지식인’의 전통을 이어갔다. 자신을 한니발과 동일시하며 스스로를 학자라기보다는 정복자라고 느꼈던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대륙을 발견하고 꿈을 철학적으로 고찰하여 현대 심리학의 기초를 다졌다. 미술사학자였던 앙드레 말로는 정치가로 변신하여 문화부 장관을 지내기도 하고, 또 시대에 대한 고찰을 통해 사상가로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이들을 ‘정복자들’이라 칭하고 있다.

이 책은 이들 지식인들의 생애와 업적을 읽기 쉽게 요약해 소개하는 형식이 아니라 이들의 작품이나 지인들과 왕래한 서신 등을 통해 이들의 내면을 꿰뚫고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다소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인문학의 죽음은 곧 시대의 정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인문학에 대한 우리 모두의 관심이 인문학을 살리고 시대를 살릴 수 있음을 상기하자.(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10.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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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4 16: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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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4 17: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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