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어제의 저자는 중국사학자 티모시 브룩이었다. 그의 방한 강연과 관련한 기사들을 읽고는 뒤늦게 구내서점에서 <능지처참>(너무북스, 2010)과 <쾌락의혼돈>(이산, 2005)을 구입해서다(<베르메르의 모자>와 <근대 중국의 친일합작>은 서가에 없었다). 조너선 스펜스의 뒤를 잇는 학자란 평판인데, 기대를 가져도 좋을 듯싶다.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세계적인 중국사학자 브룩 교수는 최근 완간한 <하버드 중국사>에 대해 “중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했고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경향신문(10. 09. 15) “중국사 공부, 창문으로 집안 들여다보는 일” 

서구 학계에서 조너선 스펜스를 잇는 중국사학자로 명망을 얻고 있는 티모시 브룩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59)가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미 하버드대에서 명대(明代) 경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쾌락의 혼돈> <베르메르의 모자> <능지처참> 등의 저서가 국내에 번역돼 한국 독자들과도 친숙하다.  

최근작 <능지처참>(박소연 옮김·너머북스)은 1905년 베이징의 한 광장에서 능지형에 처해진 살인범의 사진이 서구에 던진 충격을 시작으로 중국 고유의 형벌이 ‘잔혹하고 미개한 중국’의 이미지를 유포시키는 과정을 추적한 역작이다. 또 <쾌락의 혼돈>(이정 옮김·이산)은 사농공상의 신분제도와 소농경제를 기반으로 한 명에서 상업이 발달하면서 중국이 동서무역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역사를 그렸다. <베르메르의 모자>(박인균 옮김·추수밭)는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을 도상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17세기 중국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브룩 교수의 역사책은 특정한 주제에 집중하고 세부가 풍성해 생생한 느낌을 주는 게 특징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역사학도가 되기 전 토론토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전통적인 사료 대신 지방지·공안·일기·연감 등 당대인들의 실제 삶을 알 수 있는 소소한 자료를 살펴본다. 전체를 통제하려 들거나 어떤 판단을 하기 전에 그 시대를 제대로 복원한다는 것이 역사학자로서 그의 입장이다.

“대학 시절 일본 불교에 대한 책을 읽고 동양에 흥미를 느꼈다. 당시 토론토대에는 일본문화 관련 수업이 없어서 대신 중국어를 공부하다가 중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모든 문화는 전제와 판단의 근거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다.”

그는 서구학자로서 중국사를 공부하는 걸 “바깥에서 창문으로 집안을 들여다보는 일”에 비유했다. "중국인들은 자기 문화를 바라볼 때 과거와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서구학자들은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선입견이 없다. 물론 한계가 있다. 우리가 바깥에서 창문을 통해 집안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내가 창문을 통해 한쪽 면밖에 볼 수 없다고 고충을 토로하자 내 중국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안에서 보면 아예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고.” 

그는 역사연구에서 소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하는 서구적 시선을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서구적 시선은 서구인뿐 아니라 동양인 자신에게도 내면화돼 있다. <능지처참>은 이런 노력이 엿보이는 저서다. 서구인은 능지형의 잔혹함을 비난하지만, 형벌의 이미지는 제국주의 시기인 20세기 전후 서구에서 의도적으로 생산, 소비된다. 이미지와 현실의 괴리는 1905년 중국의 능지형 사진이 조르주 바타이유의 <에로스의 눈물>에서 에로틱한 이미지로 쓰이는 데서 드러난다. 



브룩 교수는 역사를 일방적으로 단죄하는 것을 경계하는데 그런 입장은 <근대중국의 친일합작>(박영철 옮김·한울)에 피력돼 있다. 이 책에서 그는 “항일전쟁 기간 동안 대부분의 중국인은 실제 일본에 저항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편전쟁의 역사를 보면 중국 내 판매상이 없었다면 아편이 대륙 전체로 퍼질 수 없다는 결론을 얻는다. 이는 우리의 친일파 단죄에서도 시사점을 갖는다.

“책을 쓸 때 독자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한다”는 그는 요즘 1610년대에 살았던 명나라 젊은이의 일기를 토대로 당시 양쯔강 삼각주의 생활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상하이 서쪽 지하싱 지역에 살았던 이 젊은이는 신사층의 지식인이자 예술가, 예술품 수집가였다. 한편 명대의 상품 가격 변화를 통해 당대의 문화적 가치를 저울질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명대의 상업 발전이 자본주의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즉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발전한 상업경제가 자본주의 발전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우선 당시 아시아에서는 에너지 가격이 너무 높아서 공업화에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유럽의 경우 절대왕정과 상인들의 공조체제가 긴밀했으나 중국의 경우 그렇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브룩 교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케임브리지 중국사>에 맞서는 <하버드 중국사>(6권)의 총편집을 맡아 지난 6월 완간했다. 너머북스가 국내 번역 출간을 준비 중인 이 책에 대해 그는 “중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했고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관심을 두었다”고 소개했다. 브룩 교수는 오는 17일 성균관대에서 <능지처참>을 소재로, 서울대에서 <베르메르의 모자>를 소재로 대중강연을 갖는다.(한윤정 기자) 

10. 0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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