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자 경향신문의 '책과 삶' 꼭지를 옮겨놓는다. 신간들 가운데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와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를 묶어서 다루고 있다.  

경향신문(10. 09. 18) 책을 왜 쓰느냐 묻거든 그곳에 길을 만들려 

한국인의 문해율은 2008년 기준 98.3%다. 문해율이란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의 비율을 뜻한다. 98.3%라면 한국의 성인 가운데 문자를 읽고 쓰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문자를 읽고 쓸 능력이 있다는 것과 실생활에서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등산을 할 수 있지만, 모두가 산에 오르지는 않는다. 그러고보면 읽기·쓰기와 등산은 닮은 데가 있다. 혼자 가든 떼를 지어 가든 산에 오르기 위해선 결국 자신의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 읽기와 쓰기 역시 개인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산이 있어야 산에 오를 수 있듯 읽기는 앞서 쓴 사람이 있기에 가능하고 쓰기는 앞으로 읽을 사람을 염두에 둔 행동이다. 여기, 쓰기와 읽기의 최고 고수들이 쓴 책이 마주보며 놓여있다. 한 사람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영국의 작가, 한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책은커녕 자신이 욕심내는 책조차 다 읽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리라는 사실을 아직도 섭섭해 하는 한국의 지독한 책벌레다. 살았던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두 사람이 각각 쓴 책은 투수와 포수처럼 나란해 보인다. 



‘국민공통교육’을 받은 사람치고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이력은 명문 이튼스쿨 졸업, 식민지 버마에서 경찰 생활, 파리와 런던에서 최하층민 생활, 스페인 내전 참전 등 ‘20세기 초중반 시대의 격변을 온몸으로 살았다’ 정도로 요약하기로 하자. 그는 소설 <동물농장>, <1984>로 유명한데 이건 그가 쓴 방대한 글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는 생전에 소설 6권, 르포 3권, 에세이집 2권 등 11권의 책을 냈거니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수백편의 길고 짧은 칼럼과 서평, 에세이를 썼다. 이 책은 에세이 29편을 골라 번역한 것이다. 
 
표제작인 ‘나는 왜 쓰는가’는 나치의 파시즘과 스탈린식 공산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등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에 반대했던 오웰의 작가적 입장이 명확히 담겨 있다. 그는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오웰이 작가의 작업을 정치 선동가의 역할과 동일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가 말하는 ‘정치적 글쓰기’란 어떤 거짓이나 폭로하고 싶은 것을 ‘미학적 경험’에 입각해 쓰는 것이다. 그는 “<동물농장>이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고 고백한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정치와 영어’라는 제목의 매우 신랄한 에세이를 볼 필요가 있다. 오웰은 당시 지식인들의 글들을 실례로 들어가며 죽어가는 비유, 지극히 불분명한 표현, 젠체하는 용어, 무의미한 단어들을 집어냈다. 마치 시범을 보이듯 이 책에서 예리한 통찰과 특유의 비유, 신랄한 독설의 진수를 보여준 오웰이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의미가 단어를 택하도록 해야지, 그 반대가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전하고자 하는 뜻을 최대한 분명하게” 한 다음 “뜻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표현”을 택해야 “진부하거나 뒤섞인 이미지, 이미 만들어진 어구, 불필요한 반복, 그리고 허튼소리와 막연함을 대체로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글쓰기 6원칙을 제시하는데 이것만 가지고 글쓰기 교재를 써도 될 정도로 포괄적인 동시에 실용적이다. 



이 책은 오웰의 르포집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번역하기도 한 번역가 이한중이 4권으로 엮인 오웰의 원문 에세이 저작집에서 명문(名文)으로 평가받는 것들, 오웰의 인생에서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술회된 것들을 뽑아 시간순으로 배치했다. 오웰은 자신의 전기를 쓰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는데 편역자의 말마따나 이 책은 오웰의 자서전으로 읽을 수도 있다.

오웰은 생애 자체가 워낙 다채로웠다. 그리고 철저히 체험에서 우러나온 에세이들을 썼다. 런던 부랑자들의 삶을 묘사한 ‘스파이크’, 버마 경찰 복무 경험을 그린 ‘코끼리를 쏘다’, 스페인 내전 참전 회고담인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 생계를 위해 서평을 쓰면서 느낀 역겨움을 여과없이 드러낸 ‘어느 서평자의 고백’ 등 어느 것 하나 지루한 게 없다. ‘빨주노초파남보’가 무지개를 이루듯 29편의 글이 제각각 고유한 색깔을 뽐내며 글쓰기라는 그 무엇으로 향하는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냈다.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한 ‘로쟈’가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 이어 두번째로 낸 서평집이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가 에세이 범주에 속하는 글들을 모은 것이라면, 이번 책은 본격적인 서평집에 해당한다. 지난 10년간 각종 매체에 썼던 서평, 그의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에 올렸던 글들을 30개의 꼭지로 정돈했다. 
 
로쟈의 서평을 보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주인공 톰 크루즈가 눈 앞에 떠오른 가상의 스크린에 매우 빠르게 명멸하는 화면들을 검색하면서 양손으로 그것들을 이리 저리 짜맞추는 유명한 장면 말이다. 로쟈가 블로그에 공개한 ‘공익적인’ 글들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평론가 신형철은 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로쟈는 문학·철학·역사학·사회학을 넘나들면서 배치하기·짝짓기·지도 그리기·교정하기 등등의 테크닉을 발휘하여 저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다양한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요즘 강조되는 ‘맥락적 책읽기’를 일찍부터 보여줬다. 그의 블로그는 책과 작가에 관한 ‘위키피디아’를 방불케 한다. 시인이자 소설가 장정일이 메인 게스트로 나온 어느 ‘북포럼’에 패널로 나가 발표한 글에서 로쟈는 장정일의 작품이 읽히던 시대, 장정일의 작품세계를 따라가면서 이성복·황지우·유하 등의 시인, 마광수, 밀란 쿤데라, 노무현, 이문열, 황석영, 강유원 등을 줄줄이 떠올린다. 작년에 나온 김규항의 <예수전> 위에 한완상의 <예수 없는 교회>를 겹쳐 읽으면서 ‘혁명’이라는 키워드를 뽑아낸 뒤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으로 나아가는 식이다. 

이런 일은 그가 ‘지독하다’는 표현으로는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읽어대기에 가능했다. 간간이 등장하는 번역자의 태만에 의한 오역이나 ‘꼴’을 갖추지 못한 책에 대한 꾸짖음은 준엄하다. 그러나 “우리는 똑똑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똑똑해진다”고 말하는 로쟈의 책에 대한 태도는 대체로 겸손하고 따뜻하다. 그는 말한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책을 쓰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내게 그 책을 읽을 역량이 갖춰져야 한다. 또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허락돼야 한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이번엔 독자들이 로쟈에게 고마워해야 할 차례다.(김재중기자) 

10. 09. 17. 

P.S. 흠, '지독한 책벌레'라는 것이 '로쟈'에 대한 흔한 인상인 듯하다. "닥치는 대로 엄청난 양의 책을 읽어대는" 같은 이미지라면 사실 나와 그다지 닮지 않았다. 나보다 더 많이, 더 집요하게, 더 지독하게 읽는 독자가 왜 없겠는가. 다만 그 '책벌레'가 '공익' 근무요원처럼 매일같이 책에 관한 소개들을 정리하고, 자신이 쓴 리뷰와 잡담을 많은 이와 공유하기 위해 애쓰는 자를 가리키는 거라면 크게 어긋나진 않을 것 같다. 책의 서문에 적었듯이, 지난 3년간의 집중 '복무'를 뒤로 하고 이젠 '예비역'의 자세로 생활하려고 한다. 한데 '후임'은 대체 언제나 배정되는 것일까?.. 

P.S.2. 내친 김에 눈에 띄는 언론리뷰를 더 옮겨놓는다.   

한겨레(10. 09. 18) 인터넷 서평꾼 ‘로쟈’의 비평모음집

그는 책벌레다. 그것도 지독한. 아마도 우리 시대 가장 큰 위를 가진 책벌레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서평이라는 새로운 영역 개척의 선두에 섰던 그의 이름은 이현우, 아니 서평꾼 로쟈다. 인터넷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깊이 있고도 성실한 서평들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나 홀대받던 인문학의 가치를 새롭게 일깨우면서, 실용서의 범람에 지쳐 있던 이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그 로쟈가 두번째 책을 냈다. <책을 읽을 자유>는 지난 10년간 로쟈의 책 리뷰를 골라 묶은 책이다. 주제별로 수백권의 책들이 들어서 있는 모양은 도서관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 도서관은 로쟈만의 분류법으로 가꿔져 있으며, 또 언제나 그렇듯 꼼꼼하고 진지한 서평들이 함께한다. 때로는 일부 책들의 오류에 대해 꽤 신랄하게 짚어내고 있어, 독자로서는 거대한 책의 바다를 항해할 때 요긴한 항해도를 얻은 기분이 든다.

책 첫머리에서 지은이는 자신에게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바로 책을 읽을 수 없을 때라 고백한다. 매일 갈아먹어야 할 양식에 물렸던 시간들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끔찍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다시 책으로 돌아간다. 언제나 그랬듯 자신이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자유는 바로 ‘책을 읽을 자유’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책장을 넘기다 보면, 로쟈가 이 자유를 정말 만끽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600쪽에 이르는 이 책은 올가을 이 땅의 책벌레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은혜로운 양식이다.(윤은숙 기자)   

한국일보(10. 09. 18) 인터넷 서평꾼 '로쟈'의 세상 꼬집기

'로쟈'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인터넷 서평꾼 이현우씨의 두번째 서평집. 블로그를 비롯해 신문, 잡지 등 매체에 지난 10년 간 기고했던 서평들을 한 곳에 모았다. 시인 고 기형도의 <기형도 전집>,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한나 아렌트의 <칸트 정치철학 강의>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탐독한 147권의 책에 대한 사유의 흔적을 30개의 키워드아래 모았다.

그의 글 곳곳에는 강한 현실비판 의식이 투영돼 있다. 서평을 그냥 글쓰기가 아니라 '비평행위'로 여기는 저자의 자의식을 엿볼 수 있다. '과두정은 부자의 이익을 위한 통치형태이며 민주정은 빈자의 이익을 위한 통치형태'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구절에 밑줄을 그으며 '강부자 고소영 내각'을 꼬집고, 일본 우익의 사상적 본질을 해명한 마쓰모토 겐이치의 <일본 우익사상의 기원과 종언>을 읽으며 반공주의밖에 내세울 것이 없는 한국 우익의 사상적 빈곤을 비판한다.(이왕구 기자)

중앙일보(10. 09. 18) 노련한 가이드와 함께 오르는 인문학 봉우리 

저자는 ‘로쟈’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인터넷 서평가다. ‘로쟈의 저공비행’이란 그의 블로그엔 매일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드나든다. 그가 지난 10년간 쓴 147편의 서평을 모아 책을 냈다.저자는 서평을 총 30개의 주제로 분류했다. 예를 들어 ‘폭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아래 『폭력의 철학』『폭력의 시대』『러시아 혁명』『성스러운 테러』등에 대한 서평을 엮는 식이다.

주제는 매우 광범위하다. 문학, 미술, 고전, 역사, 철학, 학술, 글쓰기, 번역 등을 망라하고 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서평을 비평한 것도 있다. 인문학자(한림대 연구교수)라는 배경 때문인지 인문학적 관심에서 고른 책들이 많다. 재테크 책이나 자기계발서를 편식하는 일반 독자들은 아마 제목도 못 들어본 책들이 태반일 것이다. 하지만 산에 갈 때 반드시 정상에 올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올레길을 걸으며 산을 완상하는 것도 좋다. 올레길을 가다 ‘저 봉우리를 한번 올라가 봐야지’라고 맘을 먹는 것처럼, 이 책을 읽고 ‘이건 한번 읽어봐야지’라는 느낌을 받으면 족하다.

그의 서평은 단순한 책소개를 벗어나 비평에 가깝다. 따뜻한 찬사를 늘어놓다가도 매몰찬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독자들에겐 독서를 자극하는 강력한 흥분제가 될 것이다.

“나는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에어컨이 고장 나 창문을 열어놓고 달리는 저녁 버스의 형광등 불빛 아래서 읽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책장을 넘기며 그의 글들을 읽을 때, 나는 이 세상에서 그만 사라져도 좋을 듯 했다.”

올 가을,‘로쟈’라는 유능한 가이드를 따라 ‘책을 읽을 자유’를 누리는 것도 좋을 듯 하다.(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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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9-18 16:39   좋아요 0 | URL
영어교사들이 로쟈님이 심혈을 기울인 오역 바로잡기를 정독했으면 좋겠습니다.

로쟈 2010-09-20 08:43   좋아요 0 | URL
ㅎㅎ 필요한 독자들에게나 참고가 되면 되는데요.^^;

사과나무 2010-09-19 13:58   좋아요 0 | URL
'한데 '후임'은 대체 언제나 배정되는 것일까?'

신검을 통과라도 해야 군대에 가죠.. 흑흑...


로쟈 2010-09-20 08:43   좋아요 0 | URL
요즘 신검이 그렇게 어렵나요? 여긴 '자원'이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