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주 오랜만에 구입한 시집은 최영철 시인의 <찔러본다>(문학과지성사, 2010)이다. 아주 오래전에 나온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열음사, 1987)와 <일광욕하는 가구>(문학과지성사, 2000) 등이 내가 기억하는 시집인데, <찔러본다>를 거기에 보탠다. 순전히 표제작의 힘이 크다. 많은 경우에 한 편의 시는 한 권의 시집을 버틴다(읽다 보니 '비자금 만 원' 같은 시도 마음에 든다). 시집에 처음 눈길이 가게 해준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세계일보(10. 09. 11) 숨이 붙어있는 모든것을 바라보며 애틋한 연민을…
최영철(54·사진) 시인의 새 시집 ‘찔러본다’(문학과지성사)는 숨이 붙어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하다. 사람은 물론 가녀리게 흔들거리는 풀잎에서부터 힘없이 낙하하는 낙엽과 땅 속에서 꿈틀거리는 애벌레에 이르기까지 고루 배려하는 시선이 따뜻하고 애달프다.
“반찬거리 파는 할머니/ 조르지도 않았는데/ 주위 눈치 보며 얼른/ 새싹 몇 잎 더 넣어준다/ 할머니와 나만 아는 비밀/ 다른 사람 절대 알아선 안 되는/ 무슨 돌이킬 수 없는/ 불륜이라도 저지른 듯/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비밀’)
할머니와 벌이는 시인의 ‘불륜’이 귀엽다. 할머니의 따스한 비밀이 애틋하고 시인의 뛰는 가슴이 정겹다. 시인의 가슴이 콩닥콩닥 뛴 이유는 비밀을 들킬까봐서만은 아닐 것이다. 할머니의 마음이 고마워서, 아름다워서, 흔치 않게 경험하는 그 느꺼운 감정을 시로 옮기게 될 순간이 성급하게 기다려져서 더 콩닥콩닥 뛰었을 것이다.
“대형마트에 얻어터진 난전의 눈두덩이 시퍼렇다/ 온 데 파스를 바르고 나온 친절 연습/ 사시사철 땡볕 세례에 그을린 할머니들/ 애교 떨며 보조개 만들며 요염한 브이자를 그린다/ 눈물겹다 자본주의 꽁무니라도 따라붙으려는/ 저 늦은 보충 학습”(‘재래시장 살리기’ 부분)
할머니들과의 ‘불륜’이 뜨거울수록 그네들의 늦은 ‘자본주의 보충학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안타깝다 못해 서럽다. 그 서러운 연민은 떨어지는 낙엽에도 투사된다.
“젖이 안 나온다고 보채던 해가/ 잘근잘근 젖꼭지를 씹었다/ 젖을 물고 흔들던 바람이/ 떨어질락 말락 젖꼭지를 땄다/ 발갛게 피멍 들어/ 바닥에 떨어진 젖꼭지/ 벌레들이 달려들어 빨고 있다/ 핏기 다 빠져 해골이 되어서도/ 수천 수만의 자식을/ 더 안아 키우겠다는 거다”(‘만추, 잎’)
해와 바람이 나뭇잎을 씹고 흔들어 결국 땅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그 이파리를 이번에는 벌레들이 달려들어 진액을 빨아먹는 바람에 핏기 다 빠진 해골이 되었는데, 그 모습이 시인에게는 죽어서도 수천 수만의 생명들을 끌어안으려는 모성으로 다가오는 거다.
만추의 붉은 잎에서도 화려한 색감의 아름다움보다 그늘진 생의 뒤안을 먼저 보듬는 시인의 마음은 수직으로 서있어야 할 나무가 누워 있는 모습에 이르면 더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되 누워서 옆으로 자라는 ‘수영성 와목(臥木)’을 보고 시인은 “자기를 슬며시 쓰다듬고 가는 여인에게로 기울다가/ 행장 챙겨 무작정 따라나서기도 하다가/ 저렇게 호된 회초리를 맞고 쓰러졌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그때/ 나무를 쓰다듬고 간 그 여인은/ 먼 여정에 눈앞이 아득해져/ 잠시 손 짚어/ 찰나를 쉬었다 갔을 뿐”이라고 쓸쓸하게 돌아선다.
“햇살 꽂힌다/ 잠든 척 엎드린 강아지 머리에/ 퍼붓는 햇살/ 깼나 안 깼나/ 쿡쿡 찔러본다// 비 온다/ 저기 산비탈/ 잔돌 무성한 다랑이논/ 죽었나 살았나/ 쿡쿡 찔러본다// 바람 분다/ 이제 다 영글었다고/ 앞다퉈 꼭지에 매달린 것들/ 익었나 안 익었나/ 쿡쿡 찔러본다”(‘찔러본다’)
이번 시집의 표제로 뽑힌 이 시편은 연민과 슬픔 같은 것은 모두 안으로 삭여버리고, 햇살과 비와 바람을 기꺼운 마음으로 껴안는다. 깼나 안 깼나, 죽었나 살았나, 익었나 안 익었나, 끊임없이 안부를 걱정해주는 해와 비와 바람 같은 것들이야말로 이곳에 존재하는 불멸의 주인이기에,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모든 생명들도 꿋꿋하게 한 번 살아낼 만한 것이다. 최영철 시인은 자서에 “내 게으름의 핑계가 되어준 병, 내 가난의 핑계가 되어준 시, 그들과 함께 조금만 더 애절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조용호 선임기자)
10. 0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