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읽은 칼럼이 인상적이어서 관련기사를 찾아봤다. 그간에 모르고 있었는데(너무 천안함에만 빠져 있었나 보다), '위키리크스'라는 내부고발 전문 웹사이트에서 아프간 전쟁과 관련한 미국의 기밀문서를 공개하여 큰 파문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여러 모로 흥미를 끄는 사건이다(정신분석의 용어를 쓰자면 '상징계에 대한 실재의 습격'이라 할 만하다). 인터넷 시대에 개인과 국가권력 간의 쟁투가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지도 보여주는 사례 같다(당연한 관심은 우리에게도 이런 폭로가 가능할까란 것이다). 추가적인 폭로 자료도 엄청난 분량으로 쌓여 있다고 하는 만큼 귀추가 주목된다. 기사는 엊그제 칼럼에서 지난 4월의 칼럼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두 조찬제 경향신문 국제부 차장의 기사다.
경향신문(10. 07. 29) [마감 후…]‘위키리크스’라는 유령
하나의 유령이 미국을 배회하고 있다. ‘위키리크스’라는 유령이다. 이 유령이 들춰낸 치부들은 미국을 뒤흔들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악몽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백악관과 국방부를 비롯한 미 행정부는 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해 혈안이다. 그러나 유령은 공중을 빙빙 돌며 먹이를 찾는 독수리처럼 끊임없이 오바마 행정부의 치부를 노리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이제 미국의 최대 위협 가운데 하나가 됐다.
위키리크스는 처음부터 유령처럼 다가왔다. 지난 4월5일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세상을 전율시켰다. 2007년 7월 이라크 바그다드 상공의 미군 아파치 헬기에서 마치 사냥하듯 민간인들을 향해 기총소사를 퍼붓는 장면은, 희희낙락하며 환호하는 조종사의 몰인간적 행태와 겹치면서 분노를 자아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실체는 이로써 발가벗겨졌다. 하지만 이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3개월 20일 뒤, 메가톤급 핵폭탄이 터졌다. 지난 25일 위키리크스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일지(war logs)’라는 이름으로 공개한 9만2000여건의 기밀문서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민간인 사망, 파키스탄 정보부와 탈레반의 유착, 탈레반 요인 암살을 위한 비밀 특수부대 운용 등 감춰진 아프간전의 실상이 이 기밀문서들을 통해 드러났다. 미 행정부는 “전쟁 중에 벌어진 일” “중요한 문서는 없다”는 식으로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아프간 전쟁 일지 공개 이틀 만인 27일 문서 누출이 “개인이나 작전의 잠재적 위험”이라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위키리크스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120만건의 비밀문건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간폭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내부비리 폭로가 목적이다 보니 위키리크스의 활동은 유령처럼 이뤄지고 있다. 사이버공간에서 활동하기에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서버도 익명성이 법적으로 보장되는 나라에 두고 있다. 활동가들도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위키리크스에는 주인이 없다. 정부의 비리에 관심 있는 내부고발자나 반체제 인사, 언론인, 사회활동가 등 누구든 정보원이 될 수 있다. 정보제공자 신원보다 정보 내용을 중시한다. 대신 신원은 철저히 보호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위키리크스가 공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보다 더 큰 두려움이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위키리크스라는 유령은 미국의 정보자유법(FOIA)의 부산물이다. 위키리크스의 기밀문서 폭로가 낳은 ‘국가기밀 대 언론자유’ 논란의 중심에 ‘정보자유’라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역사는 행정부와 언론 간의 정보자유를 둘러싼 투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국가 안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미 행정부는 정보 비밀주의를 강화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취한 조치가 대표적 사례다. 위키리크스가 정보자유를 강조하는 이유는 창설자 줄리안 어산지가 지난 25일 독일 슈피겔과 한 인터뷰에서 확인된다. 그는 “양심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공권력의 남용을 폭로했다. 우리의 일은 이들을 보호하고 대중에게 알리고 역사 기록이 부인되지 않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인가, 라는 질문에는 “전쟁을 책임진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고 대답했다.
위키리크스는 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하나하나 뭉치면 국가권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정부 비리를 폭로하는 것이 정책을 바꾸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내부고발자든 언론인이든 활동가든 모두가 단결해야 한다.(조찬제 국제부 차장)
경향신문(10. 07. 28) 위키리크스의 폭로 ‘오바마의 리스크’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관련한 위키리크스의 기밀문서 폭로가 가져올 향후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연방법 위반을 언급하며 파문 차단에 나섰지만 향후 아프간전 수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데다 오는 11월 중간선거의 악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위키리크스는 추가 기밀 폭로를 예고한 상황이어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26일 정례 브리핑에서 위키리크스 기밀문서 공개에 대해 “이는 연방법 위반으로, 현재 수사의 대상이 돼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기브스 대변인은 “기밀 공개는 충격적”이라면서 “아프간 주둔 미군을 위험에 빠뜨리고, 군의 기밀유지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문건의 내용들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 아프간 전략이 변경되기 이전에 일어난 일”이라며 이번 문서 공개가 오바마 행정부와 관련이 없음을 강조했다. 미 국방부도 기밀 누출자 색출에 나서는 한편 폭로된 기밀들이 가져올 잠재적 위험에 대한 분석작업에 돌입했다.
백악관의 파문 확산 차단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행정부 내부는 좌절감에 휩싸였다. 뉴욕타임스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의회와 국민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이 확실하다”는 한 관리의 말을 인용해 행정부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폭로가 향후 아프간전에서 파키스탄의 협력을 얻어내는 지렛대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관리는 “이제 모든 것이 공개됐다. 기밀 공개로 우리는 파키스탄에 도와달라고 말하기가 쉬워졌다”고 말했다.
현재 아프간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의회의 태도를 감안하면 오바마 행정부에 미칠 파장은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파키스탄에 쏟아부은 천문학적인 돈과 정보가 탈레반을 돕는 데 사용된 것이 밝혀진 이상 의회의 지지를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27일로 예정된 미 하원의 아프간 전비 지원에 관한 법안 처리 결과가 주목된다면서 오는 연말까지 아프간 전략을 재검토해야 하는 오바마 행정부엔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바마가 의회를 설득하지 못할 경우 주둔군 축소라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프간에 군을 파견한 다른 국가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보 공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경우 그동안의 협력관계에 손상이 갈 수도 있다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로를 계기로 아프간전은 ‘부시의 전쟁’에서 ‘오바마의 전쟁’이 됐다고 지적했다. 미 프린스턴대 역사학과 줄리안 젤리저 교수는 AFP통신에 “이번 공개는 부시의 문제를 오바마의 것으로 만들었다”면서 “오바마는 자신을 그것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조찬제기자)
위클리경향(10. 07. 06) ‘위키리크스’ 미국 정부 눈엣가시
미국 정부의 비리를 담은 기밀문서를 폭로해 온 내부고발 전문 민간 웹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org)가 미국 정부의 눈엣가시가 되고 있다. 지난 4월 초 이라크 주둔 미군 아파치 헬기가 2007년 바그다드 상공에서 무차별 기총사격으로 로이터통신 기자 2명 등 민간인 10여 명이 사망하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킨 위키리크스는 최근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혀 ‘제2의 파문’을 예고했다. 이라크 동영상 공개 후 곤경에 빠진 미국 당국은 이 자료를 위키리크스에 제공한 사병을 체포해 조사 중이며, 심지어 위키리스크 설립자에 대한 체포령을 내리는 등 잠재적 파문 차단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라크·아프간 동영상은 빙산의 일각
영국 일간 가디언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앤 어샌지는 6월 초순 지지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미군이 지난해 5월 아프간 가라니 마을에서 민간인을 공습하는 동영상을 곧 공개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은 아프간 침공 이후 미군에 의한 최악의 민간인 학살로 알려져 있다. 당시 아프간 정부는 미군 공습으로 어린이 92명을 포함해 민간인 140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아프간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한 미군은 자체 조사를 벌였으나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로이터통신 기자 2명을 포함해 10여 명이 사망한 이라크 동영상이 보여 준 파장을 생각하면 140명이 숨진 ‘아프간 동영상’이 공개될 때 가져올 파장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아프간 민간인 학살 동영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 동영상은 5월 26일 미군 당국에 체포된 이라크 주둔 미군 정보분석가 브래들리 매닝(22)이 위크리크스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26만건의 민감한 기밀자료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07년에 입대한 매닝은 업무상 비밀를 취급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그는 근무하는 동안 이라크 동영상을 비롯한 외교 전문 등 엄청난 기밀자료들을 내려받았다. 그는 당국에 체포된 뒤 쿠웨이트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체포된 과정은 어처구니가 없다. 자신의 무용담을 전 컴퓨터 해커인 애드리언 라모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랑한 데서 비롯됐다. 매닝은 라모에게 “당신이 비밀 네트워크에 하루 14시간씩 8개월 이상 마음껏 접근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고, 라모는 이 사실을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알린 것이다.
매닝의 문서가 공개될 경우 파괴력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매닝이 라모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확인된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을 비롯한 전 세계 외교관 수천명이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비밀로 분류된 외교문서 전체가 일반에 공개된 사실을 알면 심장마비에 걸릴 것”이라고 썼다고 인터넷 매체 와이어드(wired.com)가 전했다. 이 때문에 미국 당국의 최대 관심사는 매닝이 위크리크스에 넘긴 자료의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미국 당국은 매닝 체포 직후 그의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를 압수하고 워싱턴에서 전문가들을 동원해 분석작업을 벌이고 있다. 어샌지는 매닝 체포 이후 그를 변호할 변호사 3명을 고용했지만 미국 당국은 면회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체포설 때문에 피신 중인 설립자
아이슬란드 의회 의원이자 반전운동가로 이라크 동영상 작업을 한 브리기타 욘스도티르는 6월 18일 미국 ABC방송 <월드뉴스>에 나와 “어샌지가 미국 정부로부터 체포 위협을 느껴 피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우리는 매일 그와 접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욘스도티르는 아이슬란드 의회가 전날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국가안보와 관련한 내부고발자에게 ‘국제 피란처’를 제공하는 법안을 발의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사흘 뒤인 6월 21일 가디언은 유럽의회가 주최한 정보의 자유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차 벨기에 수도 브뤼셀을 찾은 어샌지를 만나 인터뷰했다. 미군이 매닝을 체포한 뒤 모습을 감췄다가 약 한 달 만에 나타난 것이다. 그가 피신한 이유는 내부고발자나 변호사들이 매닝 체포 후 그에게 닥칠 위험을 감안해 극도로 조심할 것을 당부했기 때문이다. 어샌지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지와 보호가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항상 방심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어샌지가 자신의 활동 때문에 신변의 위험을 느낀 것은 올해 초부터였다. WSJ에 따르면 그는 올해 초 자신들을 미군과 미국의 정보전 노력에 대한 잠재적으로 묘사한 미국육군정보전센터의 2008년 비밀보고서를 위키리크스 사이트를 통해 폭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육군정보전센터는 “비밀로 분류된 국방부 문서가 인가 없이 유출되면서 외국 정보기관이나 해외 테러조직 등에게 미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공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위키리크스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 와중에 이라크 동영상을 폭로하면서 그는 피신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됐다. 실제로 미국 웹 매체인 데일리비스트는 매닝의 체포 사실이 알려진 뒤 사흘이 지난 6월 10일 “미국 국방부 조사관들이 어샌지가 공개될 경우 미국의 국익을 크게 해칠 국무부의 비밀문서들을 공개할까 봐 두려워해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위키리크스의 기밀문서 폭로는 한편으로 국가안보와 국민의 알 권리에 관한 논란을 가열시키고 있다. 국가안보를 우려하는 측은 과거 내부고발자가 기자에게 정보를 주던 것과 달리 인터넷 등의 발달 덕분에 누구든 사이버 공간에 익명으로 직접 올릴 수 있어 국가 기밀이 쉽게 유출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든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해 6월 12일 오바마 행정부가 정부 기밀을 언론에 유출하는 공무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출범 17개월째인 오바마 행정부가 정부 기밀을 유출한 관리를 처벌한 건수가 전임 부시 행정부보다 많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다는 측은 처벌 강화가 전쟁범죄로 재판을 받지 않으려는 방편에 불과하다면서 내부고발자야말로 진정한 국민적 영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앤 어샌지는 호주 출신의 컴퓨터 해커였다. 그는 정부나 기업, 각종 기관의 부패를 내부고발자들이 일반인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06년 위키리크스를 만들었다. 그는 6월 1일 위키리크스 사이트에 실은 인터뷰에서 “사회의 모든 정보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특정 정부와 정당, 정치지도자 가운데 누구를 지지할지와 관련이 있다”면서 “시민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사이트의 존재 이유”라고 밝혔다. 위크리크스의 운영 철칙은 내부고발자의 신원 확인보다 자료의 신뢰성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다. 실제 운영자는 5명이지만 수백명의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소송이 제기될 경우 변호사의 도움도 받는다. 서버는 익명성이 법으로 보장된 스웨덴에 두고 있다.
경향신문(10. 04. 15) [마감 후…]전쟁,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2007년 7월12일 낮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외곽의 거리. 열 명 남짓한 남자들이 골목 한 쪽에서 어슬렁거린다. 머리 위엔 미군 아파치 헬기 두 대가 이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다. 조종사들의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군중 5~6명이 AK47 소총과 로켓추진수류탄(RPG) 등을 갖고 있다며 발포명령을 내릴 것을 상부에 요구한다. 이윽고 상부 지시를 받은 헬기는 이들에게 총탄을 퍼붓는다. 일부는 쓰러지고 일부는 몸을 피한다. 피하는 이들에겐 다시 총탄이 쏟아진다. 공중을 선회하던 헬기는 부상자 한 명을 발견하고 다시 발포 준비를 한다. 순간 승합차 한 대가 그를 싣기 위해 다가간다. 차 안에 어린이 두 명이 있었음에도 헬기는 이들에게 사격을 퍼붓는다. 아이 두 명은 겨우 목숨을 건진다. 이날 헬기 공격으로 10여명이 사망했다. 그 가운데는 로이터통신 소속 이라크인 2명이 포함돼 있었다.
미 정부와 기업의 불법행위를 고발하는 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org)가 지난 5일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이라는 제목으로 공개한 비디오 내용이다. 이 비디오는 약 3년 전 이라크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망 사건을 다룬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미군 발표에 의존해 미군이 기습공격을 받고 공격해 무장세력 9명과 민간인 2명(로이터 고용인 2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 비디오를 보면 미군 발표가 거짓임이 드러난다. 몇 사람은 무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긴장은 전혀 없다. 미군과의 교전은 더더욱 없다. 왜 미군이 그동안 비디오를 공개하라는 로이터의 요청을 거부했는지 알 만하다. 위키리크스는 이 비디오를 미군내 내부고발자들로부터 입수했다. ‘부수적 살인’이라는 제목은 민간인 사망자를 ‘부수적 피해’로 표현하는 미군의 주장에 빗댄 말이다.
가공할 만한 것은 조종사들의 교신 내용에서 볼 수 있는 태도다. 이들은 자신들의 공격으로 죽은 사람들을 보고 고소해하고 환호한다. 승합차 속 아이들이 다친 데 대해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어른들을 나무란다. “전쟁터에 애들을 데리고 오는 게 잘못이지.” 조종사들에겐 인간에 대한 존엄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전쟁은 이들에게 인간을 사냥하는 게임일 뿐이다. 이 비디오는 과거 어두운 기억을 떠올린다. 2004년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수감자 인권유린 사건이다. 포로들을 발가벗겨 바닥에 쓰러뜨리거나 알몸인 포로 머리에 두건을 씌운 채 문이나 침대에 손을 묶는 등 갖은 추행을 저지르면서도 즐거워하는 미군들. 미군은 이런 악몽 때문에 비디오를 감췄던 것일까.
이 비디오는 공개 9일 만에 유튜브 클릭 수만 약 600만회에 이를 만큼 파장이 크다. 하지만 미국은 사과는커녕 곧 잊혀질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11일 미 ABC방송 <디스 위크>에 출연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비디오 공개로 미국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전쟁 중에 벌어진 일”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군의 행위는 전쟁범죄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는 마당이다. ‘전쟁 중 환자는 아군이든 적군이든 돌봐야 한다’는 제네바협정을 어겼다는 것이다. 미군과 미 정치인들은 안다. 전쟁터에서 미군의 추행과 민간인 희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반전여론만 높아진다는 것을. 그럼에도 감춘다. “정치언어는 거짓말을 참말로, 살인도 훌륭한 일로 만들고, 허공의 바람조차 고체처럼 단단하게 보이게 고안된 것이다”라는, 위키리크스가 첫머리에 인용한 조지 오웰의 말이 그 답이다.(조찬제 국제부 차장)
10. 0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