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아내가 여러분을 배신한다면"

경향신문에서 '목수정의 파리통신'을 옮겨놓는다(지난번 신형철 칼럼과 짝을 이룰 만하다). "대통령은 정말 잘 뽑고 볼 일이다"가 제목이어서, '좀 센데!'하며 클릭했는데, MB 얘기가 아니라 사르코지 얘기였다. 하지만 결국 MB 얘기. 위안거리는 그렇게 잘났다는 프랑스인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 베를루스코니를 총리로 둔 이탈리아 국민들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이번 월드컵에서 나란히 죽을 쒔다는 점도 공통적이군. 정치사에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올 줄 어찌 알았겠는가. 세 나라 국민의 다음 번 선택이 벌써 궁금하다...  

경향신문(10. 07. 17) 대통령은 정말 잘 뽑고 볼 일이다 

‘난 소중하니까.’ 10년 전쯤, 지겹도록 들었던 저 광고의 주인공, 로레알사가 프랑스를 스캔들 정국으로 몰아넣는 중이다. 어지간한 남의 인생살이엔 콧방귀도 안 뀌는 이 동네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이 집안 얘기를 속속들이 알게 된 연유는 재벌가에서 벌어진 그 흔한 재산 소송의 귀퉁이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에게로 흘러간 불법 정치자금의 꼬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87세의 릴리안 베탕쿠르는 로레알사 창업주의 딸로, 로레알사 주식의 31%를 점유하고 있는 프랑스 제1의 거부다. 이 여인의 주변을 40여년 전부터 맴도는 사람이 있었으니, 소위 다큐전문 사진작가 바니에란 자다. 꾸준히 베탕쿠르가 주변을 맴돌던 그는, 20년 뒤 베탕쿠르 가족의 절친이 되기에 이른다. 귀도 성치 않고, 심신 상태도 흐릿해진 릴리안의 심리를 조정하여 약 1조5000억원에 이르는 돈을 빼간 혐의로 이 자를 고소하고, 어머니가 자산관리 부적격자이니 자신이 그 대리인 역할을 하겠다고 외동딸이 소송을 걸면서 싸움은 시작되었다. 릴리안은 인생 최고의 낙이 바니에와의 대화였다며, 딸의 방해로 자신의 즐거움을 빼앗겼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딸이 오히려 자신을 모함한다고 항변한다. 그 와중에 릴리안의 경리담당 직원이 비밀리에 녹음테이프에 담아오던 몇 가지 진실을 법정에서 폭로하고, 언론에 진술하면서 사르코지가 시장이던 시절부터 그와, 그의 대선자금 담당이던 뵈르트(현 노동부 장관)에게 지속적으로 불법 정치자금이 건네진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다급해진 사르코지는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과 측근의 결백을 소리 높여 주장하였으나,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많지 않은 분위기다. 그러면서 연금개혁(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하는)은 끝까지 밀어붙인다고 천명한다. 프랑스의 모든 노조들이 총력을 다해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연금개혁이다. 이제 그의 지지율은 프랑스의 그 어떤 대통령도 가보지 못했던 26%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의 발언보다, 일개 경리직원의 말을 사람들이 더 신뢰하기까지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23살의 대학도 아직 안 졸업한, 오토바이 뺑소니 경력의 심히 의심스러운 청년을, 단지 사르코지의 아들이란 이유로 정부 고위직에 임명하려다, 천지를 뒤흔드는 조롱소리에 카드를 잠시 내려놓은 일도 있었다. 농민박람회에서 만난 농민에게 악수를 청한 사르코지의 손을 한 농민이 회피하자, “꺼져버려, 이 멍청아”라고 시원하게 내질러 유튜브의 톱스타가 된 적도 있다. 교황과의 면담 중에 아내 브루니에게 문자를 보내다가 들킨 사건 정도는 애교에 속한다. 



2008년, 사르코지가 임기 1년을 넘겼을 때, 프랑스의 유력 주간지 마리안은 표제로 “제기랄, 4년이나 남았어!”를 뽑아냈다. 친부자 반서민 색깔이 명백한 데다, 경악할 수밖에 없는 언어감각, 게다가 부지런하기까지 한 사르코지를 1년간 겪고 난 프랑스인들의 피로감을 정확하게 드러낸 한마디였다. 집권 3년차에 해당하는 지난 1년을 르몽드는 “끔찍한 한해”라고 묘사했다. 한 동안 시사주간지들은 루이 14세의 초상화를 표지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어딘지 좀 이상해서 가까이 들여다보면, 얼굴은 사르코지였다. “사르코지 왕조” 라는 유행어를 뒷받침하는 섬뜩한 패러디였다. 프랑스 사람들과 정치얘기를 하면, 꼭 우리나라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친밀감을 급격히 느끼는 요즘이다. 대통령은 정말 잘 뽑고 볼 일이다. 우리는 소중하니까.(목수정 | 작가·프랑스 거주) 

10. 0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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