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 때문에 그래픽 노블의 걸작이라는 '어둠의 도시들' 시리즈를 읽어보게 됐다. 책은 지난 5월에 출간됐는데, SF독자라면 이번 여름 필독 리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겠다. 늦게나마 서평기사를 챙겨놓는다.

한겨레(10. 05. 29) 지구 저편 ‘어둠의 도시’에선 무슨 일이?

소녀 마리는 갑자기 기울어져버렸다. 사선으로 서 있고 걷는다. 그 탓에 어디서건 ‘왕따’다. 서커스단만 마리를 반긴다. 자신을 고쳐줄 유일한 과학자를 찾아가니 그는 마리가 다른 행성의 중력 영향을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천체의 축 정반대편에 있어 관측이 불가능하다는 미지의 세계다. 마리는 그곳을 향하는 우주선에 올라탄다. 마리가 사는 세계는 지구와 닮았지만 지구는 아니다. 그 반대편 ‘어둠의 도시들’로 이루어진 대륙이다.

지구의 화가 오귀스텡은 평론가들의 혹평에 질렸다. 그는 도시를 떠나 오브라크 고원지대를 떠돌다 저택을 발견하고 그 벽에 홀린 듯이 둥그런 구(球)들을 그린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어느 구 하나에 균열을 만든다. 이후 그는 그 집 어두운 복도를 빨려 들어가듯 걷다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 어디인지 어느 때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마리와 오귀스텡은 만난다. 



이 기묘한 이야기가 1983년부터 이제까지 이어져온 에스에프 만화의 걸작 ‘어둠의 도시들’ 시리즈의 문을 연다. 브누아 페테르스가 글을 쓰고 프랑수아 스퀴텐이 그림을 그린 이 시리즈는 총 16권, 거기에 디브이디, 각종 관련 전시, 세미나 등으로 가지를 쳤다. 두 사람은 27년 동안 지구의 반대편 거울 세계, 검은 도시들의 대륙을 완성해가는 중이다.

문으로 들어왔으면 조심해야 한다. 다시 나가기 어렵다. 마리 이야기를 어떻게 읽고 싶나? 달라서 배척당하는 소수자의 삶,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다. 그렇게 가상의 세계를 통해 현실을 비트는 이야기일까? 우리가 아는 세계는 반쪽뿐이고 진실은 그 너머에 있다는 암시일까? 이 거울, 우리 모습을 비춘다 싶어 뚫어져라 쳐다보게 되는데 어느새 기괴한 상상의 세계를 투영해 시선을 묶어둬버린다. 잡았다 싶으면 그새 모습을 바꿔버리는 동물, 그래서 끝까지 좇게 만드는 새다.

이 거울의 매혹적인 수작은 <보이지 않는 국경선>에도 이어진다. 신참 지도제작사 롤랑의 이야기이다. 소드로브노볼다치 정부는 지도제작국을 활용해 ‘위대한 영토의 국경’을 확정하려 한다. 지도제작사들은 종교의 지도, 물류의 지도 등 모두 달라 국경은 확정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해도 소용이 없다. 정부는 팽창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제작국에서 사람의 섬세한 결은 사라지고 기계가 지도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이런 혼란 통에 롤랑은 스코드라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 여자 등에서 옛 국경과 일치하는 지도를 발견한다. 공격적 민족주의의 대한 경고일까? 인간에게서 오직 지도만 봤던 지도제작자의 비극일까?

<우르비캉드의 광기> 속 우르비캉드는 계획도시이다. 이 도시의 파국은 로빅의 책상에서 비롯됐다. 희한한 육면체를 책상 위에 놓아뒀는데 그게 식물처럼 점점 거대하게 자라 갈라진 남과북, 사람들을 잇는다. 이 이야기는 육면체에 대한 한 보고서로 마무리된다. “비인간화된 도시에 대한 자연의 승리”, “무정부주의적인 전복의 움직임”…. 육면체에 대한 여러 해석을 설명한 뒤 보고서 작성자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간단하지만 무한한 결론으로 열려 있는 이 구조물은 신들이 어둠의 도시에 사는 인간들에게 보낸 신비한 물체다. 신들은 이를 통해 인간이 제아무리 오만해도 결국 세상 만물의 본질은 그 신비로움에 있으며,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은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어둠의 도시들’ 시리즈 자체가 이 육면체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무한한 결론으로 열려 있는 이야기, 세상의 비밀, 상상의 경계를 다 담을 때까지 끊임없이 확장해가는 이야기 말이다. 황홀한 그림체와, 건축 지식, 철학적 상징으로 뭉친 이 육면체 퍼즐은 너무 익숙해 못 보던 우리 자신의 세상을 낯설게 보여주거나, 또는 그 너머의 세계를 그리며 신비한 마력으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세미콜론은 시리즈 가운데 모두 열두권을 출간할 예정이다.(김소민기자)

10. 0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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