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종강은 이미 지지난주에 했지만 오늘에서야 성적처리를 마무리지었기에 실질적인 방학은 이번 주부터다. 하지만 또 곧장 외부 계절강의와 문화센터 강의가 당장 한 달 간 잡혀 있어서 방학 기분을 내는 건 호사스런 일이다. 저녁에 원고 하나를 보내고 나서야 일과가 저무는 듯싶지만 밤에는 또 중요한 '업무'에 돌입해야 한다. 막간에 들여다본 교수신문에서 대담집 <휴머니스트를 위하여>(사계절, 2010)에 대한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제목보다는 부제 '경계를 넘어선 세계 지성 27인과의 대화'가 책의 내용을 더 잘 말해준다. '27인과의 대화'이니만큼 분량도 본문만 557쪽이다. 한 꼭지씩 읽으면 한 달 읽을거리다(내가 제일 먼저 읽은 건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 편이다. '아름다움, 아름다움만이 우리를 구해줄 겁니다'란 타이틀에 끌려서). 여름을 건강하게 나려면 먹는 것도 잘 먹고 책도 잘 챙겨읽어야 한다. 이럴 때 "책도 잘 먹어야 한다"고 해야겠군...   

  

교수신문(10. 06. 28) 경계를 넘어 시대와 세계 고민한 27명의 ‘다르고 같은’ 목소리  

대담집의 매력은 무엇일까. 활자로 축 늘어져 있는 텍스트의 무미건조함을 찾아볼 수 없는, 긴장감 있고, 뒤틀릴 수도 있으며, 때로는 반복되기조차 하지만, 생생한 현장감 있는 고민의 목소리에서 그 매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 과학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콘스탄틴 바를뢰벤이 8년에 걸쳐 ‘석학’ 27명을 만나 세계화·인권·생명공학을 공통주제로 대화를 나눈 책 『휴머니스트를 위하여』는 확실히 이런 지적 긴장감과 생생한 고민을 현장 중계하듯 보여주는 책이다. 원제는 ‘Le Livre des Savoirs: Conversation avec les Grands Esprits de Notre Temps’(Grasset & Fasquelle, 2007)로, 전문 번역가 강주헌 박사가 번역했다.

이 대담집의 탄생은 ‘문화를 초월한 시각적 총서’라는 프로젝트와 관계있다. 그것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석학들을 찾아 세계 곳곳을 다니며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방송과 책으로 만드는 방대한 프로젝트였다. 저자는 ‘대담은 창조적 과정이 포함되기 때문에 어려운 작업’이라고 토로한다. 그의 말을 그대로 빌면 “입말의 직관적 지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담에는 학문적 경직성이 없다. 따라서 대담이 제대로 진행되면 위대한 예술가나 사상가가 내면에 감춘 비밀까지 드러낼 수 있다.” ‘내면의 비밀’이 드러날 때, 이를 달리 말하면 ‘사상의 깊이’의 드러남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를 위해 저자는 ‘20세기에 깊은 족적을 남긴 석학들’을 선정했다. 물론 ‘21세기에 미칠 영향’도 간과하지 않았다. “미술과 문학, 종교와 문화, 인류학과 자연과학, 음악 등의 분야에서 학문적 한계를 뛰어넘어 지식의 한계까지 이른 석학”을 대상으로 했다.

저자는 이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에드문트 후설의 표현을 빌리면 그 시대의 ‘지적 상황’에서 제기된 근본적인 문제에 도전한 인물 (……) 20세기의 터전을 닦은 인물로, 현재와 미래의 도전에 대한 견해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지성들이다. 27명의 대담자들은 문학(고디머, 푸엔테스, 소잉카, 오즈 등)과 음악(메뉴인), 건축(니마니어, 존슨), 과학(굴드, 프리고진 등), 철학(세르, 크리스테바), 정치(부로토스 갈리, 헌팅턴), 역사(슐레징거, 두웨이밍), 인류학(레비스트로스), 종교(파니카르, 푸파르), 매체·미디어 이론(드브레, 비릴리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분야의 경계를 넘어 시대와 세계에 대해 고민하고 발언한 지식인이자 사상가들이다. 이들은 대담에서 갈등과 충돌로 점철된 지난 세기와 자신의 생애를 반추하고, 세계화와 문명 간 단절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시대를 성찰한다. 



물론 이 27명의 ‘석학’ 명단은 서구중심적이며, 대체로 인문주의자들이라는 점에서 관점에 따라서는 고개를 갸웃할 수 있다. 특히 철학에서 세르와 크리스테바, 정치에서 헌팅턴 등이 언급된 데는 눈이 둥그레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담 진행 과정, 저자의 기획 의도 등을 고려한다면 이 ‘석학’ 명단 구성보다 이들 ‘석학’의 입을 통해 무엇을 끄집어내려 했는가를 중시할 필요가 있다.

27명의 대담자들은 서구와 비서구, 문명의 공존과 충돌, 과학기술의 가능성과 한계 등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전 세계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타자와 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타자와 세계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대화할 것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옮긴이가 지적한 것처럼, 관점에 따라 같은 대상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만큼 개념에 대한 정의를 공유하는 것은 대화의 전제조건이다. 옮긴이 강주헌 박사는 이 정의를 두고 ‘사물이나 현상에 접근하는 관점’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다.(최익현 기자) 

10. 0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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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6-28 21:27   좋아요 0 | URL
저기 27인에는 안 들어갔지만,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어> 초입에 나오는 '혼자 보는 이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 있는가'라는 대사가 세르의 '아름다움'과 대구를 이루는 것도 같네요...

로쟈 2010-06-28 22:00   좋아요 0 | URL
원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미가 세계를 구원하리라'를 떠올려주는 말이죠. 도스토예프스키나 타르코프스키나, 입니다.^^

sophie 2010-06-29 10:53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심리적 공간의 파괴'라는 지적이 눈에 들어오네요. 앙드레 고르의 에콜로지카를 읽으면서 느낀건데 때로는 인터뷰 기사나 대담의 형식이 책 내용보다 더 많은 걸 알려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나오는 책마다 페이지 수가 어마어마해서 앞으로 300 페이지 이하로 제한하고 싶은 충동이 드네요. 아후~

로쟈 2010-06-29 17:10   좋아요 0 | URL
절반의 책이 제거되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