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구내서점에 잠깐 들렀다가 발견하고 잠시 놀란 책은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이응과리을, 2010)이다. 20세기 독일문학의 '전설'로 회자되던 책이고, 아래 기사에서도 언급되지만 국내에서는 무엇보다도 밀란 쿤데라의 격찬을 통해 존재가 알려진 작품이다(쿤데라를 통해서 알게 된 작가가 로베르트 무질과 <몽유병자들>의 헤르만 브로흐이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어서 선뜻 엄두를 못 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출간을 준비중인 곳도 있었다) 이번에 무질 전공자인 고원 교수의 번역으로 일단은 1/3이 소개됐다(나머지는 2/3는 연차적으로 출간된다고 한다). 고원 교수는 출판사 이응과리을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한국일보(10. 03. 27) "20세기 미완의 걸작… 80년 만에 처음 소개합니다"
"20세기를 통틀어 비할 데 없이 탁월한 실존의 백과사전이다. 소설의 형식을 풍부하게 하고 소설만이 발견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의 영역을 엄청나게 확장했다."
체코 출신의 세계적 작가 밀란 쿤데라가 로베르트 무질(1880~1942)의 장편소설 <특성 없는 남자>(이응과리을 발행)에 바친 찬사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독일 작가인 무질이 1920년께부터 집필에 착수, 1930년 제1권, 2년 후 제2권을 출간했으나 끝내 미완의 유작으로 남은 이 소설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1922),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1927)와 비견되는, 20세기 전반 유럽 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난해한 내용, 방대한 분량 탓에 국내에선 오랫동안 제목으로만 회자됐던 이 소설이 한국어로 처음 번역됐다. 번역자는 독일에서 무질 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고원(59) 서울대 독문과 교수. 고 교수는 무질 생전에 출간된 제1, 2권을 내년까지 모두 세 권으로 번역하기로 하고 이번에 첫 번째 책을 냈다. 분량은 총 1,700여 쪽에 이른다.
고 교수는 "<특성 없는 남자>가 처음 세상에 나온 지 80년 만에 한국어판이 나온 셈"이라며 "출간된 분량보다 오히려 많은 미출간 유고는 번역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소설은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1년 동안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식인 청년 울리히가 밟은 행적을 따라간다. 황제 즉위 7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하며 빈의 사교계에서 활동하던 그는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귀향했다가 여동생 아가테에게 근친애를 느낀다.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 이 소설은 울리히가 기존의 도덕에서 벗어나 진정 '올바른 삶'을 모색하는 과정이 뼈대를 이룬다. 고 교수는 "독자 스스로 울리히가 되어 그가 새로운 예술적, 언어적 체험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동참한다면 어떤 작품보다도 재미있게 읽힐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도 번역된 소설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1906)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무질은 1930년대 나치 독일의 박해로 스위스로 망명, 가난과 싸우며 창작에 매진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고 교수는 "미완성의 폐허로 남아 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전망을 열어준 <특성 없는 남자>의 운명은 작가의 불우한 생애를 닮았다"고 말했다.(이훈성기자)
10. 03. 27.
P.S. 20세기 독일문학 작품 가운데 또 소개되면 좋겠다 싶은 것은 알프레드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1929)이다(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함께 1920년대의 3대 작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예전에 삼성판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돼 있었는데, 이후론 자취를 찾기 어렵다(그간에 연구서들만 몇 권 나왔다). 세계문학이 경쟁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즈음인지라 기대를 가져본다. 참고로, 이 작품은 1980년에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에 의해 텔리비전 시리즈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15시간이 넘는 분량이다). 최근에 디지털판이 다시 나왔다(http://www.youtube.com/watch?v=qTjFWAvJTvI&feature=rel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