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의 근거와 자유주의의 가장자리
지방선거를 앞둔 때문인지 정치 관련서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홍보용 책자도 있지만 정치이론서나 비평서도 드물지 않다. 인터넷 논객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안병길 박사의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동녘, 2010)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대통령도 모르는 자유민주주의 바로 알기'가 책의 부제인데, 대략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법'으로도 읽힌다. 포퓰리즘에 관한 참고사항이 있어서 메모해두려고 하는데, 일단은 소개기사를 하나 스크랩해놓는다.

파이낸셜뉴스(10. 03. 11) 자유·권리 지키려면 ‘귀차니즘’을 버려라
자유는 만물의 창조주인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소중한 선물이자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이고 고귀한 가치다. 그러하기에 이러한 자유가 박탈됐을 때 인간은 목숨을 걸고 항거해왔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는 이러한 희생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고귀한 자유민주주의를 오늘날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온전한 모습으로 지켜나가고 있는 걸까.
미시간 주립대 및 서울대학교 국제지역원 교수를 지낸 안병길 박사는 최근 저술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을 통해 엉터리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경종을 울리며 자유민주주의를 올바로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온전히 지켜나갈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파는 좌파를 빨갱이, 좌빨, 친북이라고 매도하고 좌파는 우파를 수구, 꼴통으로 몰아세우며 자신이 속한 정파만이 정의롭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탈을 쓴 권위주의에 불과하다.
교육에 있어서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원리나 개념보다는 공동체주의에 기본을 둬 애국심과 준법정신을 강조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마치 사회불안 요인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는데 이것은 권위주의와 연결될 수 있다고 저자는 우려한다. ‘착하게 살아라’는 식으로 절대적 도덕 가치를 기준으로 교육하는데 그것보다는 자유민주주의의 원리를 제대로 가르쳐서 왜 그렇게 살아야 자신에게 더 이로운지 깨우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유주의의 인간 바탕은 그냥 백지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백지 안에 무엇을 채워 넣든 그것은 각 개인의 자유로 일단 존중해야 한다. 따라서 인터넷 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신공격, 심한 욕설 등의 행위가 나쁘다는 것은 사회적 공감대가 있는 것이지 사람이 궁극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상대방에 대해 선악의 잣대를 갖다 대 상대방을 악으로 보는 것은 권위주의적인 발상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타인에 대해 아무 근거도 없이 틀렸다 나쁘다는 식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것은 방종이지 결코 자유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유와 방종의 차이는 무엇일까. 로빈슨 크루소처럼 외딴 섬에서 혼자 살고 있다면 ‘자유=방종’이라는 결론을 내려도 무방하다. 그러나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방종은 상대방의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내가 한 행동이나 말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상대방 역시 나에게 똑같이 대응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구성원 각자는 게임이론에서 볼 수 있듯이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이것이 스스로의 행동을 절제하는 자율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상대방의 방종에 대해 저항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이것을 자신의 자유로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권위주의자들에 의해 자신의 권리가 침해를 받고 있을 때 저항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체로 권위주의자는 자신들이 어떤 권위가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자유주의자들보다 강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힘을 모아야 한다.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귀차니즘’을 버리고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방종에 대해 용기를 내 맞서야 한다. 그냥 귀찮아서 봐준다는 식으로 방종을 내버려 두면 ‘엉터리 자유’가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을 억압하게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최종옥 북코스모스대표)
10. 03. 19.


P.S. 책은 자유주의에 대한 원론적인, 상식적인 옹호론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사회가 그런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이기에 저자가 '귀차니즘'을 물리치고 저술에까지 나선 것이겠다. 덧붙여, 포퓰리즘에 관한 참고사항이라고 한 건 저자가 추천한 윌리엄 라이커의 <자유주의 대 집체주의>(1982), <정치적 조작술>(1986) 두 권이다. 라이커는 저자의 박사학위논문 지도교수(가 아니라 은사라 한다). 'populism'을 '집체주의'라고 옮긴 건 특이한 선택으로 보이는데, 선례가 있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 '집체주의'는 '집단주의'와 동의어로 보통 'collectivism'의 번역어로 쓰기 때문이다. 그 <자유주의 대 집체주의>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책 제목에서 암시하는 바는, 집체주의를 경계하면서 자유주의를 잘 운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라이커 교수가 설명한 자유민주주의의 요체는 무엇일까? '돌고 도는 세상'이라는 표현에서 유추할 수 있다. 필자는 '자유민주주의에는 절대적인 정답이 없다'로 표현하고 싶다. 상대적으로 더 옳은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지, 만병통치약 같은 정치제도는 이 세상에 없고, 그런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엉터리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런 엉터리가 좋아하는 이념이 집체주의라는 것이다.(193-4쪽)

그런 맥락에서 저자는 포퓰리즘뿐만 아니라, 루소의 사상에 기원을 두고 있는 모든 유형의 공동체주의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을 던진다. 그래서 박세일 교수 등의 <공동체 자유주의>(나남, 2008) 주장에 대해서도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공동체라는 상위 개념을 두는 것 자체가 진정한 자유주의에 어긋난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 입장이자 신념이다. 일종의 자유지상주의인데, 영국의 또 다른 정치철학자 퀜틴 스키너의 자유론과는 대비되는 것이어서 비교해 봄직하다(물론 더 큰 차이는 '진리의 정치'를 주장하는 '레닌주의'와의 차이다).

이번주 신간 가운데는 지식인들의 비판에 맞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지식인과 자본주의>(부글북스, 2010), 국가와 시민이 빈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를 다룬 <빈곤에서 권력으로>(이매진, 2010) 등이 관심을 끄는 책들이다. 주말 북리뷰들이 뜨면 책의 정체가 조금 분명해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