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나온 몇 권의 책에 간단한 스크랩 스케치. 지난주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인문서는 없지만, 자본주의적 탐욕과 그로 인한 빈곤의 문제를 다룬 책들의 인상이 강렬하다. 제일 먼저 장 지글러의 <빼앗긴 대지의 꿈>(갈라파고스, 2010).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2007), <탐욕의 시대>(갈라파고스, 2008)과 함께 '장 지글러 3부작'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한겨레의 기사를 참고하면(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09789.html), "원제(‘서양에 대한 증오’)가 말해주듯 이 책에서 지글러는 서방의 과오가 자체 교정 불능의 지경에 이르렀으며 마침내 광범위한 저항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니까 책이 수신자는 '빼앗긴 대지'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증오 대상인 서구인들이다(이 책으로 저자는 '인권저작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2007년 한 해 동안 빈곤으로 인한 지구촌 사망자는 5700만. 이는 6년에 걸친 제2차 세계대전 전체 기간 인명피해와 맞먹는 것이었다. 지글러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을 지속 가능케 한 것이 신자유주의요 그것을 진두지휘한 세계은행이다. 그 배후에 워싱턴이 있다. 작가 켄 사로위와 등 9명이 교수형을 당한 것은 나이지리아의 소수 매판세력과 서방의 유착, 그것이 부른 부패와 파괴를 묵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레 시엔 코트디부아르 외무장관이 2001년 9월 공식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만일 여러분들이 노예제도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주십시오. 내리쬐는 뙤약볕 밑에서 또는 빗줄기 속에서 수백만의 농부들이 여러 달 동안 힘들게 노동한 대가로 얻는 상품의 가격이, 에어컨이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농부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볼 필요 없이 컴퓨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노예제 폐지 이후) 방법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 흑인들은 이제 앤틸리스 제도나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배에 강제로 실리는 일은 없어졌으니까요. 그들은 자기 땅에 머물러 살 수 있죠. 하지만 그들이 자기 땅에서 흘린 피와 땀에 대해서 런던이나 파리, 뉴욕에서 값을 매깁니다. 노예상인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노예상인들은 주식투기꾼으로 모습만 바꾸었을 뿐입니다.”

두번째 책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겨냥한 것인데, 필리핀의 사회학자이자 반세계화 운동가 월든 벨로의 <그 많던 쌀과 옥수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더숲, 2010). 원제는 '식량전쟁(The Food Wars)'.  

저자는 전세계 식량 위기와 식량전쟁의 원인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세계은행·IMF·WTO의 '삼각편대'를 그 원흉으로 지목한다. 경향신문의 리뷰(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1003121709525&code=900308)를 간추리면 이렇다.    

필리핀 사람들의 주식은 쌀이다. 필리핀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쌀을 자급했다. 그러나 지금은 매년 100만~200만t의 쌀을 수입하는 처지이며, 가난한 지역에 쌀이 안전하게 배급되도록 군대까지 파견하는 실정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필리핀 국립대학 교수이자 저명한 반세계화 운동가인 월든 벨로는 ‘식량전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계화와 자유주의의 본질’을 파헤친다. 멀쩡했던 나라가 사람들의 주식조차 마련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게 된 배경에는 ‘녹색 혁명’이나 ‘농업 연료’에 대한 잘못된 믿음,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세계무역기구(WTO)의 오판, 거대 곡물회사의 농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추동하는 신자유주의가 있었다. 세계은행·IMF·WTO의 삼각편대는 자유무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구조조정을 각 나라에 강요했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생산성과 이윤이 적은 것으로 보이던 전통적 농업이었다. 케냐, 터키, 볼리비아, 필리핀, 멕시코 등은 초기에 구조조정의 시험대에 오른 국가였다. 정부는 농업에 대한 지원을 줄였고, 전통적 자영농들은 몰락했고, 해외의 값싼 농산물이 시장을 잠식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바랐던 경쟁력 있고 빈곤 없는 세상이 왔을까. 2007~2008년 식량 위기 때문에 폭력 사태가 일어난 나라만도 30개국이 넘었다. 이는 해당 국가의 정치 위기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세번째 책은 일본의 반핵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히로세 다카시의 <제1권력>(프로메테우스, 2010). 부제는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왔는가'이다. 아직 리뷰기사는 뜨지 않았는데, 간단한 소개로는 "금융재벌로 대표되는 자본-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20세기를 지배했는지 속속들이 파헤친 책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로 손꼽히는 히로세 다카시는 JP모건과 록펠러로 대표되는 미국의 독점재벌이 어떻게 부를 축적하고 세계 정치경제를 조종해왔는지를 추적한다."  

 

인사회(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의 추천사는 이렇다. "‘1인 대안언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저널리스트이자 반핵평화운동가인 히로세 다카시의, 고유명사를 낱낱이 까발려 자본가계급 인맥을 추적한 그 필생의 작업의 신호탄이 된 문제작. 역사를 자본의 시점에서 냉정하게 응시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필독서요, 시시각각 현실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세계적인 사건이나 뉴스들을 접할 때 그것을 어떻게 읽고 판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또 하나의 시각을 제공하는 책이다." 

'1인 대안언론'이란 말이 눈길을 끄는데, 히로세의 저작 리스트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체르노빌의 아이들>, <위험한 이야기>, <미국경제의 지배자들>, <그들만의 제국>, <붉은 방패>, <하나의 사슬>, <금융제국>, <무기제국>, <석유제국>. <지구의 함정>, <클라우제비츠의 암호문>, <연료전지 혁명>, <로마노프 가의 황금>, <역사를 목격한 영화>, <할리우드 대가족> 등. 우리로 치면 '논픽션의 강준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은 "JP모건과 록펠러로 대표되는 미국의 독점재벌이 어떤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행태를 저질렀는가? 또 그들이 세계경제를 어떻게 좌지우지했으며 그들에 의해 미국은 물론 세계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조종"되었는가를 다룬다. JP모건과 록펠러에 대해서는 두툼한 책들이 나와 있기 때문에 참조해볼 수 있겠다.   

 

   

<제1권력>에 대한 일본 독자의 서평 가운데는 "자본의 논리로 근현대사를 관통한 독보적인 저작. 내가 읽은 가운데 최고의 미국사다!"란 평도 있다고. 그러고 보니 이번주에 나온 강준만의 신작도 '미국사 산책'이다.    

 

 

10. 03. 13.  

P.S. 장 지글러의 책에서도 언급되는 나이지리아 내전에 대해서는 나이지리아 출신작가 아디치에의 소설도 참고해볼 수 있겠다. '모던 클래식'으로 나온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민음사, 2010).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10. 03. 13) 쌍둥이 자매의 삶을 뒤흔든 검은대륙의 내전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33)의 2006년 작으로, 그의 두 번째 장편이다. 1980~90년대 나이지리아 군부 독재 치하를 배경으로 억압적 가정에서 자라는 열다섯 살 소녀의 성장을 다룬 첫 소설 <보랏빛 히비스커스>(2003)로 호평을 받았던 아디치에는 이 작품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오렌지상을 받고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 주목할 100대 영문 소설'에 이름을 올리는 등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아프리카 현대문학의 거장인 치누아 아체베의 뒤를 이을 작가로 촉망받는 그는 모국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다가 18세에 미국 유학을 떠나 문예 창작과 아프리카 연구로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미국과 나이지리아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소설은 1967~70년 나이지리아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 1960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친영(親英) 세력인 하우사족과 갈등을 겪던 이보족이 군부 쿠데타를 통해 나이지리아 안에 '비아프라'라는 새 국가를 세우면서 나이지리아와 비아프라 사이엔 전쟁이 벌어졌다. 어릴 적 부모로부터 이 전쟁의 참상을 전해 들은 작가 아디치에는 식민 통치의 잔인한 유산, 무수한 희생자를 낳은 소수 지배자의 무책임한 행위를 알리겠다는 열망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작품의 중심 인물은 이보족 출신의 엘리트 여성이자 쌍둥이 자매인 올란나와 카이네네. 서로에게 경쟁 의식을 가진 이 자매는 각각 대조적 성격의 남성들과 교제한다. 카이네네는 아프리카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나이지리아를 찾은 영국인 작가 리처드와, 올란나는 나이지리아 독립을 주장하는 개혁파 지식인 오데니그보와 사귄다. 하지만 애인이 다른 여성과 동침한 것에 좌절한 올란나가 리처드와 충동적으로 하룻밤을 보낸 탓에 자매는 반목하게 된다. 하지만 내전은 두 사람의 안온한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이런 고난 속에서 두 자매는 다시금 가족애를 회복한다.

작가는 힘있는 필체로 비극적 역사 속에서 요동치는 사랑과 배신, 질투 등 인간적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한편, 아수라 같은 상황에서도 기어이 희망을 찾아내는 생의 의지를 통해 울림이 큰 드라마를 완성했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미국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는 "열정적 지성으로 한 시대의 초상을 그려낸, 20세기 고전들의 훌륭한 후계자"로 아디치에를 평가했다.(이훈성기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0-03-14 15:53   좋아요 0 | URL
비아프라 내전을 소재로 한 소설이 나왔군요.국제스릴러물의 대가인 프레드릭 포사이트가 문명을 알린 게 비아프라 내전 르포였어요.요즘 나이지리아는 기독교인과 이슬람교도가 내전을 하고 있더군요.

로쟈 2010-03-14 16:17   좋아요 0 | URL
잘 아시는군요. 저도 기회가 되면 언젠가 아프리카문학 공부도 좀 해봐야겠어요. 5년쯤 뒤면 시간이 있으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