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그 겨울의 끝'이라고 할 만한 날씨였다. 연체된 책들을 잔뜩 양손에 들고 가 도서관에 반납한 후에 다시 강의와 관련한 책들을 가득 담아 나르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는데, 돌아오는 좌석버스 안에서 잠시 에어컨이 틀어질 정도였다(만원 버스이긴 했다). 겨우내 마무리짓지 못한 일들 때문에 마음이 무겁지만 만시지탄이다. 남은 10개월을 위해 구두끈을 조일 따름(일에 관한 한 아마도 가장 바쁘고 중요한 해가 될 듯싶다). 주말엔 연체된 일들 외에도 나쓰메 소세키와 셰익스피어와 소비사회에 관한 강의준비를 해야 한다. 소비사회와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책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윤리적 소비'에 관한 책 두 권의 리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전/현직 기자들이 쓴 <윤리적 소비>(메디치, 2010)와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의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실천문학사, 2010)가 그 두 권의 책이다. 윤리에 대한 의견차가 눈길을 끈다.   

서울신문(10. 02. 27) 쇼핑몰은 중산층의 새로운 ‘성당’

대형마트들이 가격 경쟁을 벌인다. 이른바 마트 전쟁이다. 소비자라면 당연히 보다 싼 가격에 눈길이 가기 마련. 그런데 소비자에게 이로울 것 같은 마트 전쟁이 납품업체의 큰 피해를 부른다면? 축구공 한번 야무지다. 세계적인 브랜드치곤 싸다. 어린이들이 형편 없는 일당을 받고 하루종일 손이 부르트도록 바느질을 해서 만든 것이라면? 겨울철에 먹는 칠레산 포도. 맛도 나쁘지 않다. 한국까지 오는 동안 냉장 보관을 위해 수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다면?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 내 피부에 딱 맞는 것 같다. 사람 눈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수많은 토끼를 상대로 실험을 했다면?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우리의 선택은 달라졌을까.  

우리는 배웠다. 가격과 품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소의 비용으로 가장 만족도가 큰 제품을 선택하라고. 그게 합리적인 소비다. 그런데 이제 합리적인 소비를 뛰어넘어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를 논하는 시대가 왔다. 생산에서부터 유통, 소비는 물론 이후 처리와 재생에 이르기까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지갑을 열라는 것이다.  

도대체 왜? 합리적인 소비는 동물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환경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착한 소비는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드는 것처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윤리적인 소비는 단순하게 개개인의 착한 소비 생활에 그치는 게 아니라 기업에 윤리적인 변화와 행동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사회 참여이기 때문이다. 제3세계 아동 노동력을 쓰던 나이키도 전세계 소비자들의 압박에 무릎을 꿇고 노동자 연령을 18세 이상으로 제한하고 하청 업체에 대한 감독권을 강화하지 않았던가.  

전·현직 기자들이 함께 쓴 ‘윤리적 소비’(박지희·김유진 지음, 메디치 펴냄)는 새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윤리적 소비에 대한 개념과 역사, 현재와 미래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공정 무역에서부터 공정 여행까지 우리 삶에 폭넓게 파고든 윤리적 소비를 접해볼 수 있다.

저자들은 세계적인 흐름에 견줘 국내 상황도 짚어보며 소비가 더이상 개인의 행복을 지키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의 안녕을 지키는 도구로 바뀌어가고 있고, 더이상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들이 인용한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쇼핑에 도덕성이 개입되고 있다. 쇼핑몰은 중산층의 새로운 ‘성당’이다. 쇼핑객들의 새로운 종교는 윤리로 무장한 소비자 보호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홍지민기자)   

시사IN(10. 02. 25) 공정무역 실체는 역겨운 장삿속

<녹색평론> 같은 매체를 통해서 천규석 선생의 글을 간간이 읽어온 터이지만, 눈썹에 힘을 주고 저서를 정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는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자의 강단 있는 언어와 추상같은 비판, 현실과 미래의 문명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책이다.

이 책에서 제기되는 불편한 진실 가운데 역시 논란이 되는 것은 공정무역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생산자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기 위해 소비자와의 국제적인 직거래를 통해 커피나 초콜릿 같은 기호식품을 소비하는 공정무역 운동이 우리 사회에도 퍽 낯익은 것이 되었다. 언뜻 생각해보면, 오로지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제3세계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다국적 기업의 커피나 설탕산업에 비해, 공정무역의 형태로 생산자의 소득을 더 많이 보전해주는 것이 윤리적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여러 형태의 시민단체나 생협을 중심으로 공정무역 상품이란 것이 출시되고, 윤리적 소비를 의식하는 소비자에게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천규석 선생은 그런 공정무역의 확산이 전혀 윤리적인 소비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공정무역이란 결과적으로 보면 히말라야 오지의 산악국가까지 (자급 대신) 세계시장에 예속시키는 데 일조하는데 그런 장삿속을 인도적 지원으로 위장하고 있기 때문에 더 역겹다는 것이다. 천규석 선생은 다른 제조업도 그러하지만, 커피나 사탕수수 같은 대규모 단작농업에 의존하는 기호식품 생산이 유럽의 식민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고, 그것이 결국 토착 지역의 자급 구조를 붕괴해 오늘과 같은 수탈적인 경제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일단 토착 지역의 자급자족구조를 복원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동시에 국내의 시민단체나 생협이 공정무역에 앞장서기보다는 도농 간의 농산물 직거래라는 원래 취지를 상기함으로써, 농업의 자급구조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때의 도농 직거래가 원거리 거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선생은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지역의 마을공동체 또는 농촌공동체와 노동조합들이 노·농연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령 최근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에서 시작한 노동자 생협이 그러한 모델에 해당될 것이다.  



자급자족은 ‘민중의 자치’ 가능케 하는 토대
선생은 최선의 윤리적 소비는 자급자족을 촉진하는 소비이며, 자급자족 구조의 내실화만이 생태적 지속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자급자족이 단지 먹을거리 문제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자급자족은 민중의 자치를 가능케 하는 근원적 토대라는 것이 선생의 주장이다. 거꾸로 오늘날의 세계분업적 무역체제나 그것을 뒷받침하는 국가라는 존재는 이 토대를 붕괴시킴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는 반인간적 체제라는 것이다.

천규석 선생이 책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다만 윤리적 소비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국가와 자본의 가공할 압력을 거슬러 민중이 스스로의 삶과 민주주의를 보존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이 책에는 거듭 제기된다. 혹자는 이 책에서 제기되는 주장들을 현실성 없는 ‘근본생태주의’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곰곰 읽어보면 백척간두에 선 문명의 임박한 파국에 대한 이유 있는 경고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이명원_문학 평론가)  

10. 02. 27.  

 

P.S. 공정무역과 윤리적 소비(착한 소비)에 관한 책들이 부쩍 늘어났는데, 이 또한 하나의 '트렌드'일까?    

도화선이 된 건 작년초 한겨레21의 기사가 아니었을까 혼자 짐작해본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카카오 농사를 짓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초콜릿은 천국의 맛이겠죠'란 표지기사였다(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4258.html). 공정무역이 어떤 것인가를 압축적으로 설명해주는 기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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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e 2010-02-27 01:32   좋아요 0 | URL
공정무역 좋아요, 라는 댓글을 달려고 생각했는데 두번째 기사를 보니 전혀 다른 견해가 새롭습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 두가지 모두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국내 문제도 많은데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는 뭐하러 돕나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사실 국내 농산물 직거래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보는데 제대로 된 채널을 마련하는게 급선문 같습니다. 얼마전 도서관에서 '처음 십 년'이라는 생태신문 창간호를 보았습니다. 거기서도 생협 얘기가 나왔는데 소비자가 쉽게 찾을 수 있는 매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창간호 특집 1면 기사는 성미산 마을극장 대표에 대한 인터뷰 기사였는데 읽으면서 아무래도 성미산 마을을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을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체 가이드도 있다고 하네요.

로쟈 2010-02-28 12:52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신문도 있군요.^^;

sophie 2010-03-01 01:39   좋아요 0 | URL
아.. 네.. 댓글이 좀 길었죠? ^^;;

노이에자이트 2010-02-27 21:09   좋아요 0 | URL
녹색평론에 실린 글이나 <유목주의~><소농버리고~>를 읽어봤는데 천규석 씨 글은 좋은 주장이구나 하다가도 너무 내치고 까는 글이라서 좀 읽기가...반대진영을 설득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막 찌르는 느낌...특히 명망있는 시민운동가들을 너무 심하게 다루더라구요.물론 그것도 글쓰는 개성이라면 할말이 없겠습니다만...

로쟈 2010-02-28 12:52   좋아요 0 | URL
꼬장꼬장한 성격이신가 봅니다...

사량 2010-02-28 15:26   좋아요 0 | URL
천규덕 선생의 새 책에 대해선 몇 주 전 <한겨레>에 실린 서평도 한번 보세요. 더 자세하고 인터뷰까지 있어서 유용하답니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045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