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학수첩>(가을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조영일의 <한국문학과 그 적들>(도서출판b, 2009)에 대한 서평을 청탁 받고 쓴 것이다. 10매 분량의 짧은 서평이다.  

  

문학수첩(09년 가을호) 한국 문단문학의 종언

<한국문학과 그 적들>은 가라타니 고진 전문 번역자로 이름을 알린 평론가 조영일의 두 번째 평론집이다. 첫 평론집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과는 불과 몇 개월의 시차밖에 두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알 수 있지만 원래는 거의 같은 시기에 쓰였고 함께 출간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곧 작품론 위주로 구성된 세 번째 평론집을 냄으로써 ‘한국문학비판 3부작’을 완결지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제안이기도 한 ‘장편비평의 활성화’를 시범적으로 보여주려는 듯싶다.   

‘한국문학비판’이라는 전체 기획과 제목에서 이미 시사되고 있지만, 그의 평론집을 주로 채우고 있는 것은 현재의 한국문학 시스템에 대한 주저 없는 단언과 비판, 그리고 쓴소리다. 그 비평적 입각점에 해당하는 것이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론이다. 이른바 그의 ‘종언 테제’에 대해서는 일본보다도 오히려 한국에서 더 많은 논란이 벌어졌다고 한다. 주로 가라타니의 주장이 성급하고 일면적이며, 적어도 한국문학의 현실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반론이 대세였지만, <근대문학의 종언>의 번역자이기도 한 조영일은 그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대변한 축에 속한다.  

하지만 그의 ‘종언 테제’ 수용은 좀 특이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지겨운 오해를 위해 확실히 말하지만, 나는 한국문학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끝났다고 보는 것은 ‘한국의 문단문학’이다.”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한국문단문학’은 창비, 문사, 문동이 장악하고 또 관리하고 있는 하나의 ‘생산관리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토대는 문예지를 출간하는 출판사와 편집동인들의 ‘아름다운 협력’ 체제이다. “작품이 상품이라면 비평은 화폐”인바, 편집동인 비평가들은 “4․19세대의 위대한 문학적 발명품”인 ‘작품해설’을 통해서 개별 작품에 ‘보편적 교환가능성’을 부여한다. 즉, 문학시장에서 작품이 팔리게 하는(인정받게 하는) 것이 비평의 몫이다. 문제는 문학시장도 시장인 만큼 속성상 ‘과장된 호명(비평적 베팅)’이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이것이 “신용의 붕괴 즉 공황(근대문학의 종언)”을 가져온다는 것이 조영일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문학의 위기는 문학시스템이 불가피하게 봉착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현상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로 인해서 빚어지는 것이 문학에 대한 불신과 비평 그 자체(이론)에 대한 몰두이며, 한국문학시장에서 일본문학의 부흥은 그러한 문학적 공황의 산물이다. 이러한 ‘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당연히 현재의 문학시스템을 해체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문학편집과 문학비평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조영일의 주장이 그런 맥락에서 나온다. “비평권력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잡지편집권을 회수하여 출판사의 전문편집자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독자의 외면으로 한국문학시스템에서 시장이 위축되자 국가가 문학판에 끼어들었고 이것이 사태를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는 것이 조영일의 판단이다.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작가들에게 주는 창작지원금이 문화예술을 보호/육성하기보다는 창작자 개개인의 우울증치료에나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일의 경우에도 문예창작 지원시스템이 잘 갖춰진 이후에는 쓸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는 가라타니 고진의 말을 덧붙인다. 가난 속에서 단련될 작가의 패기에 더 기대를 거는 것이다. 이후에 그의 관심이 이 문학시스템과 국가지원의 ‘바깥’으로 향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로일 것이다.   

‘한국문학과 그 적들’에 대한 조영일의 분석과 비판은 분명 논쟁적이며 유익하다. 하지만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론과는 초점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가라타니의 ‘종언 테제’에서 요점은 이 시대의 문학이 더 이상 ‘영구혁명’이라는 사회적 의무와 도덕적 과제를 떠맡지 않게 됐다는 데 있다. 그러한 역할이 근대문학을 한갓 오락이나 상품과는 구별되도록 만들었지만, 이젠 그런 시대가 지나간 듯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문학의 종언’과 ‘한국문단문학의 종언’은 바로 등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영일은 자신만의 ‘종언 테제’를 새롭게 제시한 것이라고 해야겠다.   

09. 0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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