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는 무거운 책이 드물다. <열렬한 책읽기>(청어람미디어, 2008)의 저자 한샤오궁의 <산남수북>(이레, 2009)도 두꺼운 책이긴 하나 에세이집인 만큼 무거운 책은 아니다. 도시에 살다가 오지의 산골마을로 낙향한 저자의 경험담을 묶었다고 한다. 그런 경험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독자로선 책으로나마 '산남수북'의 경지를 따라가볼 따름이다.


한국일보(09. 07. 18) 중국 전통정신 잃어가는 '문화 고아들'이여…
"우리집 창문을 열면 맑고 환한 산수가 순식간에 나를 덮쳐오고, 그 찰나 나는 현기증을 일으키며 경치에 도취되어 오장육부가 녹아드는 느낌을 갖게 된다. 청묵은 가장 멀리 있는 산이다. 옅은 먹색은 그 다음으로 멀리 떨어진 산을 그리고, 가벼운 먹색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산이다. 먹물의 농담과 초점으로 멀고 가까운 산이 표현된다. 산은 층층이 겹쳐 있기도 하고 굽이굽이 구부러져 있기도 한다."(99쪽)
개혁개방 이후 30년 동안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중요 국가로 편입된 중국에서는 요즘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하고 전통의 뿌리를 찾아가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중국의 황순원'으로 불리는 선총원(1902~1988)의 문학정신을 계승, 향토색 짙은 고향 이야기, 전래의 옛이야기 등을 재현하는 소설양식을 가리키는 '심근(尋根)문학'은 중국문학의 당대적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하방 경험이 있는 지식청년 출신으로 농촌에서 중국문화의 원천을 흡수, 창작의 영감으로 삼고 있는 한샤오궁(56)은 심근문학의 대표주자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작가다.
<산남수북(山南水北)>은 중국 벽지의 전통적 삶을 통해 자본주의화돼 가고 있는 중국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한샤오궁의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 모음이다. 30년 간의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1999년 중국 남부 후난성의 작은 산골마을 바시로 낙향한 그의 농촌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99편의 에세이를 묶었다.
농촌의 삶 속으로 섞여 들어간 그는 전통과 문명의 관계를 정관(靜觀)하고, 노동을 예찬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통찰한다. '문화고아'는 경제광풍에 밀려 전통정신을 상실해가는 중국인들의 삶을 아쉬워하며, 전통마저도 모두 상품화ㆍ소비화시켜 버리는 시장주의를 비판하는 에세이.
그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동경과 지향은 한이 없지만 추억이 너무 적기 때문에 모두가 어머니를 잃어버린 문화고아들이 되어버렸다"며 "시장경제에서 실패한 낙오자들은 오직 가격의 차폐선 밖에 서 있어야만 할 뿐, 가격이 폭등한 어머니에게 가까이 접근조차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개탄한다.
자연과 인간의 어울림을 유머러스하게 소묘한 글들도 슬그머니 웃음을 짓게 한다. 닭장 속의 유일한 수컷이 고양이를 만나면 가장 앞장서서 맞서고 벌레를 보면 얼른 잡아 암탉들에게 양보하는 '이타적' 행동을 지켜보면서, 금수에게도 언어가 있다면 사람들에게 '인면수심(人面獸心)'이 아니라 '수면인심(獸面人心)'이라고 떠들어댈 것 같다는 풍자를 날리기도 한다.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에세이들도 잔잔한 울림을 준다. 마지막 수록작 '도살되기를 기다리는 말 때문에 나는 눈물을 흘리다'는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4분33초'처럼 제목 말고는 공백으로 남겨뒀다. 2007년 루쉰문학상(에세이 부문)을 수상했다.(이왕구기자)

세계일보(09. 07. 18) [편집장과 한권의 책]도시에서, 행복하신가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 도시로 온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 1902년 여름, 북부 독일의 한적한 마을 보릅스베데를 떠나 파리로 향했던 릴케는 심약한 영혼을 압도하는 ‘대도시’의 위용 앞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스물여덟 살의 덴마크 시인을 페르소나 삼아 써내려간 ‘말테의 수기’에 그려진 파리는 ‘죽음’과 ‘불안’,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대치된다.
‘10년 뒤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막연한 기대와 궁금증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던 대학 동기들은 어느새 펀드 손실과 영어유치원비와 부장의 인사고과에 안테나를 세우고 하루하루를 근근이 ‘견디는’ 가련한 생활인들이 되었다. 아직은 차마 버리지 못한 ‘바닷가 민박집의 꿈’이 그나마 가끔씩 미소를 떠오르게도 하지만, 그 역시 ‘꿈’이라는 것이 의당 그래야 할 의무방어의 위로에 그칠 뿐, 과연 도시의 규격을 떠나기만 하면 행복을 만나게 될까라는 물음 앞에서는 그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이 도시든 전원이든, 삶의 공간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입체적(ambivalent)’인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시골 사람들은 익명을 사용하여 숨거나 도피하거나 탈출할 방법이 없다. 각자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짊어져야 한다. 홀로 밭을 갈거나 아무도 없는 들판에 앉아 있을지라도 공공장소에 놓여 있는 조각상이라는 느낌이 든다. 언제나 대중의 시선을 받고 있어 좀 피곤하다.”
“도시 생활이 매혹적으로 비쳐지는 까닭은 은자(隱者)처럼 지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중국 ‘심근문학(尋根文學)’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한샤오궁(韓少功)의 말이다. 30년 가까이 도시생활자로 살았던 한샤오궁은 어느 날 홀연히 산골 마을로 떠난다. 고즈넉한 산수화 속에나 있을 법한, 자연에 녹아드는 삶을 살겠다며, 후난성 북부 동정호 부근의 마을 ‘팔계’로 용감하게 가족들을 이끌고 들어간 것이다. ‘산남수북’은 그렇게 시작된 산골에서의 7년여 생활을 특유의 기개와 해학이 묻어나는 문체로 그려낸 이야기 모음으로, 2007년 루쉰문학상 에세이 부문을 수상한 빼어난 산문이다.
무봉산 자락에 앉아 도시와 시골을 함께 아우르는 한샤오궁의 시선은 한순간에 ‘도시’와 ‘시골’의 경계 자체를 무력화시키며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그는 시골에서 ‘대중의 시선’을 느끼고 도시를 오히려 ‘은자의 성’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경계를 허무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은 왜 도시로 가는 걸까?”라는 물음은 다시 “사람들은 왜 시골로 가는 걸까?”로 뒤집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도시로 가는 것은, 또는 사람들이 시골로 가는 것은, “도대체 이웃을 갈구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이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일까? 무리에 섞이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무리로부터 도피하기 위함일까?” 납작코 한의사, 미소 걸인, 낭만 고양이 미미, 청풍언월도 이발사 허씨 등 산골 마을의 다이내믹한 인간 군상과 오감을 자극하는 이야기보따리를 따라가노라면, 21세기의 도연명을 자처한 한샤오궁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결국 데일 듯한 소란스러움에 물든 도시인들의 ‘시선 교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이현정 도서출판 이레 편집장)
09. 07. 18.

P.S. '낙향한 작가의 에세이집'이라고 하니까 연상되는 책은 소설가이면서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최성각의 산문집 두 권이다. <날아라 새들아>(산책자, 2009)와 <달려라 냇물아>(녹색평론, 2007). '운동가'의 시각이 많이 녹아들어간 만큼 한샤오궁의 에세이와는 초점이 좀 다를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