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둘러싼 과학전쟁

다윈 탄생 200주년, 진화론(<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는 기획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얼마전에 마무리된 한국일보의 '다윈은 미래다'이다. 지난주 출간된 화제작 <종교전쟁>(사이언스북스, 2009)과도 관련하여 참고가 될 듯싶어서 3부 '해외 석한 인터뷰' 가운데 '진화론 논쟁의 核 리처드 도키스' 편을 스크랩해놓는다. 이 걸출한 다윈주의자는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등의 저작으로 이미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대담은 역시나 한국에선 가장 열정적인 다윈주의 전도사 최재천 교수가 맡았다.    



한국일보(09. 05. 20) "우주의 시작·생명의 의미 답할 수 있는 건 종교아닌 과학"

도킨스를 만난 곳은 옥스퍼드 외곽에 있는 그의 자택이었다. 널찍한 거실 벽을 책으로 가득 채웠는데, 수십 가지 언어로 번역된 그의 저서만으로도 서가가 촘촘했다. 물철쭉 빛이 도는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도킨스는 예상보다 작은 체구에 차분한 목소리였다. 생명의 근원과 종교의 본질을 얘기하는 도킨스의 가랑이 사이를, 하얀색 말티즈종 강아지 두 마리가 헤집고 돌아다녔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1976년 <이기적 유전자>를 낼 때 겨우 35세였습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 그리고 당신의 삶을 바꿨습니다.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 그때는 반(反)집단선택론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콘래드 로렌스, 로버트 아드리 등의 책들이 아주 인기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면서 인류를 위한 행동을 한다는 거죠

▲최= 몇 해 전 한국의 어떤 미술공모전에서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의 조각작품이 우승을 차지했어요. 호기심에 가봤는데 제목과 작품을 연결시키기 힘든 기묘한 것이었습니다.(웃음) 당신 저서 제목을 딴 '눈먼 시계공'이라는 SF소설도 한국의 한 신문에 연재 중입니다. 당신은 대중을 사로잡는 표현력을 지닌 것 같습니다. 혹시 작가가 되려고 했던 적은 없었나요. 



▲도킨스= 그런 야망을 가진 적은 없어요. 옥스퍼드대 학부생은 쓰기 훈련을 받습니다. 일주일에 에세이 하나씩 써야 하는데, 난 그걸 즐겼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은 편이고요. 그런 경험이 날 도운 것 같네요.  

가벼운 질문을 이어 던졌는데 돌아온 도킨스의 대답은 짧고 신중했다. 책 속에서 거침없이 기존의 통념을 무너뜨리는 그의 이미지와 거리가 있었다. 최 교수가 "사람들은 당신을 '다윈의 불독'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날더러 '도킨스의 푸들'이라고 한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도킨스는 웃음을 보였다. 한참 웃고 난 뒤 그는 "다윈의 불독은 내가 아니라 허버트 헉슬리의 별명"이라고 말했다.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만들어진 신>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자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최= 흥미롭게도 에드워드 윌슨, 다니엘 데넷, 당신이 2006년 모두 종교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윌슨이 제게 말하기를, 당신은 윌슨의 책을 읽고 "당신은 (기독교를 대하는 태도가) 외교관 같다"고 말했더니, 윌슨이 당신에게 "넌 기독교에 맞서는 전사 같다"고 답했다고 하더군요. <만들어진 신>을 보면 당신은 거의 기독교에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도킨스= 나는 과학자로서 우주와 생명과 진리를 이해하려면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세계관이 있을 수 있더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 잘못된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나는 맹렬한 적대감을 느낍니다. 표면상 설득력이 있고 매혹적이지만 수백만 인구를 오도하고 있는 겁니다. 기독교뿐 아니라 이슬람교, 힌두교 다 마찬가집니다. 아무 증거도 없이 그저 수천 년 전에 씌여져 있다는 이유로 곧이곧대로 믿는 겁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토록 쉽게 꾐에 넘어간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패착입니다. 나는 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가 종교를 갖게 된 것도 일종의 진화적 적응의 산물 아닙니까?

▲도킨스= 아, 물론 그럴 겁니다. 심리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연구주제입니다. 당신이나 나나 다윈주의자니까 그 관점에서 얘기해 봅시다. 종교는 그 자체로서 생존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기질의 부산물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겁니다. 나방과 비슷한 겁니다. 촛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의 성향은 당연히 아무런 생존가치가 없죠. 불빛의 원천이 오직 태양이나 달, 별이었던 시절에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한 곤충 신경계의 부수적 산물일 뿐입니다. 나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종교 딱지'를 붙이는 것을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면, 부모들을 앉혀두고 "그런 걸 시키면 안 돼"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행동은 어린이들에게 공산주의를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최 = 사실 아내를 따라서 수년 간 교회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제 아들은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이 됐죠. 제가 잘못한 걸까요?

▲도킨스= (웃으며)아내 말을 들은 건 잘했죠. 다만 아들이 안 됐네요.

▲최= 저는 사실 스티븐 J 굴드(도킨스와 대척점에 서있었던 고(故) 하버드대 고생물학자로 종교와 과학이 충돌하지 않을 수 있다는 NOMA(Non-overlapping Magiseria)라는 관점을 견지했다)의 생각에 가깝습니다.

▲도킨스= 궁극적으로 NOMA가 가능할까요? 종교는 예수가 물 위를 걷는 것 같은 기적을 말하는데 이는 결국 종교와 과학 사이의 선을 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은근슬쩍 기적을 믿으면서 한편으로 굴드가 말한 궁극의 질문이나 윤리는 종교의 몫이라고 하는 거죠. 하지만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윤리적 판단을 하기 위해 꼭 종교가 필요합니까?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우리는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와 같은 궁극의 질문도 종교의 전문분야는 아닙니다. 아직 답은 나오지 않았을지 모르나 그 대답을 할 수 있는 건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바마는 외교적 협상을 하면서 중간지대에서 타협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과학자에겐 그런 '중간지대'가 불가능합니다. 그런 말로 스스로를 속여서 굴드의 편에 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잠시 인터뷰의 주객이 바뀐 듯한 분위기가 흐른 뒤, 진화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도킨스는 33년 전 쓴 <이기적 유전자>가 한국에서 여전히 교재로 사용되며 많은 학생들의 세계관을 흔들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받아들였다.

▲최= 인류는 어떻게 진화할 것이라고 보십니까. 인류는 놀라운 기술들, 예컨대 인공지능이나 로봇 기술을 갖게 됐습니다. 스티븐 J 굴드는 "인류는 진화를 멈췄다"고 얘기한 적도 있는데요.

▲도킨스= 기간을 나눠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300만년쯤 오래 지나면 인류의 뇌가 두 배쯤 커져 월등해지지 않을까 궁금해 합니다. 그러려면 뇌가 큰 사람들이 가장 자식을 많이 낳아야겠죠?(웃음) 하지만 이런 전망에는 회의적입니다. 보다 짧은 기간을 두고 이야기해보면 에이즈에 대한 면역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보츠와나처럼 전체 인구의 상당수가 에이즈에 감염된 나라에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면역이 있는 여성들이 있어요. 그것은 강력한 자연선택의 한 예일 수 있습니다. 신장 변화를 볼까요. 20세기 들어 사람들의 키는 극적으로 커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영양 공급의 개선 덕으로 생각하지만, 거기에 어떤 복잡한 선택 작용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여성이 성적으로 성숙하는 연령도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문화적 진화는 훨씬 빠르고 드라마틱하겠죠. 지금까지의 진화와는 아주 다른 중요한 진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 '이기적(selfish)'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이 단어는 당신을 엄청나게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오랜 세월 엄청난 두통을 줬을 것 같은데요.

▲도킨스=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죠. <이기적 유전자>를 쓴 동기가 뭐냐는 질문 말이에요. 다시 말하지만 그건 '반 집단선택론' 움직임의 일환이었습니다. 나는 집단이 아닌 자연선택의 단위, 그리고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단을 찾았어요. 그 답은 각각 '유전자'와 '이기적'이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그것을 조합해 놓고 나니,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인류의 오랜 관념을 통째로 뒤집는 것이 되고 말았죠. 



▲최= 다시 그 책을 쓴 시점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을 쓸 건가요.

이 질문에, 도킨스는 잠시 창 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그리고 확신에 찬 "Yes"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도킨스= 글쎄요. '이기적 유전자-이타적 개체' 정도는 어떨까요. 그때 '불멸의 유전자'로 하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그때 그걸 왜 안 받아들였을까요. '불멸의'라는 표현이 더 사람을 고양시키고, 시적인 표현인데….

▲최= 마지막 질문입니다. 두 세기 전의 인간인 다윈이 현대에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다윈을 기억해야 하는 것일까요. 



▲도킨스= 다윈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했습니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죠. 이 행성(지구)에서도 우주 다른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물리학의 법칙이 지배합니다. 하지만, 이 행성에서는 어쩌면 우주에서 유일할지도 모를 특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죠. 생명체가 날개를 펄럭이고, 헤엄을 치고, 점프를 하고, 죽이고, 지배합니다. 그 신비로운 현상은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에 의해 이뤄집니다. 그 과정은 마침내 그것을 이해하는 신경계, 곧 뇌의 진화에까지 이르렀어요. 그것에 대한 앎이 다윈이 우리에게 준 것입니다

09. 06. 21.  





P.S. 2006년에 <만들어진 신>과 나란히 출간된 걸로 소개된 에드워드 윌슨의 <창조>와 다니엘 데넷의 <주문 깨기>도 마저 번역되면 좋겠다. '해외 석학 인터뷰'에 연재된 데넷과 윌슨의 인터뷰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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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09-06-23 00:40 
    리차드 도킨스 인터뷰 — via 로쟈
 
 
델러웨이부인 2009-06-25 13:19   좋아요 0 | URL
이기적 유전자가 그런 뜻이었군요. <이타적 인간의 출현>도 같은 맥락인가 보아요.

로쟈 2009-06-26 12:28   좋아요 0 | URL
네, '이기적'이란 건 '의인화'한 표현이죠. 인간의 이타적 행동의 진화에 대한 설명은 <이기적 유전자>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