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을 묻는 질문에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지라, 한데, '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란 이문재 시인의 말을 적용하면 더 없이 게으르게 지내는 것이 요즘인지라 좀 우울하다. 게다가 시국도 우울하고 날은 무덥고. 그런 형편에 또 읽을 만한 책들을 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지만, 그런 회의는 '상투적'이란 이유로 일소해버리고 다시금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본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꼽은 문학분야의 책은 전성태의 <늑대>(창비, 2009)다. 지난달에 꼽아두었기 때문에 두 달 연속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이다. 사실 나도 표제작만 읽었다뿐 아직 소설집을 읽은 건 아니므로 '계속' 읽을 만한 책으로 놔두어도 억지는 아니다. 추천의 변은 이렇다. "전성태는 이야기를 무궁무진하게 품고 있는 인상을 주는 작가다. 대체로 이야기에 치중하는 작가들이 디테일에 소홀한 듯싶으나 전성태는 거기서도 비켜나 있다. 특히 이 <늑대>에 수록된 작품들을 이끌어나가는 문장들은 정직하고, 구성은 치밀하며, 시선은 경계에 서 있고, 비판은 성찰과 함께 적확하며 자유롭고, 옹호는 인간의 불가해성과 함께 모범적이며 아름답다." 적확하며 자유롭고 모범적이며 아름다운 소설들을 읽을 일이 어디 흔하겠는가.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론 최근 20주년을 맞은 중국 '천안문 사태'를 배경으로 작품들을 떠올려보았다. 샨 사의 <천안문의 여자>(현대문학, 2006)과 양이의 <시간이 스며드는 아침>(재인, 2009). 중국계 프랑스 작가 샨 사에 대해서는 예전에 쓴 페이퍼(http://blog.aladin.co.kr/mramor/907667)를, 그리고 <시간이 스며드는 아침>에 대해서는 얼마전에 옮겨놓은 기사(http://blog.aladin.co.kr/mramor/2866313)를 참고할 수 있다.


2. 역사
역사저술가 이덕일씨가 꼽은 역사분야의 책은 조너선 스펜스의 <근대중국의 서양인 고문들>(이산, 2009). "<강희제> 등의 저서를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저자 조너선 스펜스가 중국에 인생을 바친 서양인 16명의 족적과 의미를 추적한 책이다." 스페스의 저작이야 워낙에 유명하기에 따로 군말은 필요하지 않겠다. 개인적으론 이 참에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푸른숲, 2003)과 <천안문>(이산, 1999)을 읽어보고 싶다.


중국 문화 및 문화연구 관련서로 조금 전문적인 책으론 문화학자이자 중국영화 전문가인 다이진화의 <무중풍경>(산지니, 2007), <거울 속에 있는 듯>(그린비, 2009)과 왕샤오밍 등이 쓴 <21세기 중국의 문화지도>(현실문화연구, 2009)도 기억해둘 만하다. 당장 손에 들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이런 책이 있다는 정보 정도는 챙겨두어도 좋겠다.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고른 철학분야의 책은 루이지 조야의 <아버지란 무엇인가>(르네상스, 2009). “아버지 혹은 부성(父性)이 오랜 진화의 산물이자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 부성이 탄생, 진화, 몰락해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했다”는 것이 추천의 변이다. 책은 500쪽 분량으로 두툼한 편이다. '엄마(마더)' 신드롬에 가려져 있는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하다. 개인적으론 예전에 필리프 쥘리앵의 <노아의 외투>(한길사, 2000)의 내용을 '아버지란 무엇인가'란 페이퍼로 정리해둔 적이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1527987). 덧붙여 '아버지'란 말은 항상 주자청의 수필 <아버지의 뒷모습>(태학사, 2000)도 떠올리게 한다. 중학교인가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글이다. 아, 위화의 <영혼의 식사>(휴머니스트, 2008)에도 아버지 노릇하는 작가의 모습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다.


4. 정치
손호철 교수가 꼽은 정치분야의 책은 김욱의 <법을 보는 법: 법치주의의 겉과 속>(개마고원, 2009)이다. "헌법학과 법철학을 공부한 소장 법학자가 쓴 <법을 보는 법 : 법치주의의 겉과 속>은 책의 제목대로 우리가 매일 부딪치는 다양한 ‘법을 보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의미 있는 책"이라는 게 간단한 소개. 한데, 법치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한국사회에 사법불신이 만연해 있는 것은 '법치주의의 겉과 속'뿐만 아니라 '법조계의 겉과 속'까지도 들여다보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김두식 교수의 <헌법의 풍경>(교양인, 2004)과 <불멸의 신성가족>(창비, 2009)은 그런 의미에서 같이 챙겨둘 만한 책이다. 비록 속살까지 다 보여주진 않지만 속사정은 헤아려볼 수 있도록 해준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한 경제/경영서는 <김원장 기자의 도시락 경제학>(해냄출판사, 2009). 물론 김원장 기자가 저자인 책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대중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격의 책인 듯하다. 평은 이렇다. "소설 읽듯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경제학 해설서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읽는 사람을 고문이라도 하려는 듯 어렵게 쓸 필요는 없다.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경제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을 써야 마땅한 일이다. 문제는 그 동안 나온 대부분의 경제학 해설서들이 독자의 눈높이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좌절감만 더 크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친근한 현실의 사례를 통해 독자에게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자 특유의 센스가 발휘되어 독자에게 가까이 가려는 노력은 한결 더 큰 탄력을 받는다. 요즈음 한창 뜨고 있는 유재석과 박명수의 예를 통해 대체재와 보완재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도시락 경제학'에서 더 나아간 설명을 원한다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경제학 강의를 들어볼 수도 있겠다.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황금사자, 2009). 더불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동향에 대해선 도미니크 레비와 제라르 뒤메닐 공저의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그린비, 2009)도 눈길이 갈 만한 책(뒤메닐 교수와의 대담 기사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58529.html 참조).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은 박경태의 <인종주의>(책세상, 2009). "오랜 동안 소수자 문제를 연구해 온 저자가 그간 온축한 자료나 역량에 기초해 우리와 같은 단일민족 국민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민족문제를 알기 쉽게 풀이한 <인종주의>는 세계화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계시민의식을 깨우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입문서로 적격이라고 판단되어 적극 추천한다"는 것이 추천의 변이다. "오랜 동안 소수자 문제를 연구해온" 저자의 다른 책으론 <소수자와 한국사회>(후마니타스, 2008)도 눈에 띈다.
인종주의에 관해서라면, 에티엔 발리바르의 책들이 먼저 떠오르는데, 아직 단행본은 소개된 게 없고 <대중들의 공포>(도서출판b,2007)에 '유럽적 인종주의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인종주의: 여전히 보편주의인가?' 두 편이 번역돼 있다. 읽기는 만만찮겠지만 <인종주의>로 개념사를 학습한 이후라면 참조해볼 만하다.



7. 과학
장경애 편집장이 고른 과학분야의 책은 차윤정, 전승훈 공저의 <신갈나무 투쟁기>(지성사, 2009)이다. 10년전 나왔던 책의 개정판인데, "우리나라 숲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신갈나무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나무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식물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쓴 책". 일종의 스테디셀러다. 두 저자의 <숲 생태학 강의>(지성사, 2009)와 차윤정의 <숲에 빠져 미국을 누비다>(웅진지식하우스, 2009)도 올해 나온 책들. 뭔가에 빠져 지내는 이들 덕분에 '숲 생태학' 관련서들이 점점 울창해지고 있다.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고른 예술분야의 책은 <정해광, 아프리카를 외치다>(심포지움, 2009). 물론 저자는 정해광씨다. 저자는 생소한데,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마드리드 대학에서는 정치철학 박사까지 받았지만 아프리카 미술에 빠진 지 20년째이고 아프리카 미술관도 열었다고 한다. 국내에 아주 드문 아프리카 미술 전문가인 것이다. "케냐의 키부티, 카툰과 음부티아, 탄자니아의 릴랑가, 이디오피아의 타데세와 아세파, 수단의 아마르, 세네갈의 두츠와 케베, 우간다의 아느와르, 콩고의 물람바. 이 열한 명의 유명한 아프리카 현대 미술가들 중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오는 이름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아프리카 예술은 멀다. 그런데 마침 이 열한 명의 작가와 그들의 그림을 소개하는 재미있는 책이 나와 반가웠다."는 것이 추천의 변이다. 이런 책도 있었구나 싶다.


거기에 보태 이번에 <고뇌의 원근법>(돌베개, 2009)이 출간된 김에 서경식 교수의 미술 에세이 세 권도 이달에 읽을 만한 책으로 꼽아보고 싶다. <청춘의 사신>(창비, 2002),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2002/1992)까지가 그 세 권의 책이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분야의 책은 <러셀, 북경에 가다>(천지인, 2009). 저자는 물론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다. 소개에 따르면, "1920년 북경대 철학과 초빙교수로 초청돼 수많은 중국인들과 만나며 그 결실을 책으로 낸 것이 이 책이다. 그는 여기서 중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치밀하게 탐색한다. 공자까지 거슬러 올라가 중국 문화의 특징을 읽어 내고 서구 문명이 당시 낙후된 중국 사회에 갖는 의미를 놀라울 정도로 예리하게 읽어낸다." 러셀의 대표작은 물론 <서양철학사>(집문당, 2006)이지만, 그리고 그의 <자서전>(사회평론, 2003)도 번역돼 있지만, 여기서는 최근에 나온 에세이집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푸른숲, 2008)와 <나는 이렇게 철학을 하였다>(서광사, 2008)를 같이 읽을 만한 책으로 골라본다.



10. 창비담론
내 맘대로 고르는 책으론 두달 전에 1차분 세 권이 출간된 '창비담론'을 골랐다. <87년 체제론>이 일차적인 관심도서였지만, 여유가 된다면 <이중과제론>과 <신자유주의 대안론>도 읽어두려고 한다. 한국 지식사회에서 지난 수십 년간 '주장' 노릇을 해온 창비의 어젠다가 무엇이며 어떤 대안들을 내놓고 있는지, 그리고 그 대안의 대안은 가능한지 궁리해봄 직하다. 올 6월은 유난히 뜨거울지도 모른다는 예감도 들고. 87년 여름이나 작년 여름처럼 말이다...
09. 06. 06.



P.S. 이달의 고전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골랐다. 내달이면 1주기가 되는데, 한달 앞당겨 읽어보려는 것은(고전이니까 '다시' 읽어보려는 것은) '천국'에 대해서, '당신들의 천국'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려는 뜻에서다. 그런 건 7월보다는 6월에 더 잘 맞는 일처럼 보인다. 오늘이 현충일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