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지식대중화 현장을 찾아서'에서 '블로그' 편을 옮겨놓는다. 캡쳐화면에 '로쟈의 저공비행'도 포함돼 있어서,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블로그를 매개로 한 지식대중화 시대의 명암을 짚어주고 있다. 나도 최근에 비슷한 주제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미리 참조했다면 좋았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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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09. 05. 07) 미래 지식의 노마드 … 학문적 진실 혹은 ‘조회수’의 함정
인류 문명은 지식 전달 방식의 변화로 함께 진보를 했다. 문자의 발명으로 구술 기억력을 넘어선 지식의 확장이 가능해졌고, 종이는 문자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줬다. 특히 인쇄술의 발명은 지식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를 했고, 그것이 결국 정치, 경제 등 역사 전반에 영향을 끼쳤음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문서, 신문, 책의 형태로 저장된 지식은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문자화된 지식은 일방향적 성격이 강해서, 대중은 어렵사리 접한 책들이 주는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십 수 년 사이에 지식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다. 짐작하겠지만 바로 인터넷 덕분이다.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발명품인 인터넷으로 인해 지식 사회는 혁명적 변화를 겪게 됐으며, 대중의 지적 수준은 획기적으로 증대했다. 특히 지식의 소통이 쌍방향, 다방향적이 됐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새로운 지식 교류와 생산의 장
<교수신문>은 지금까지 인문, 사회, 과학 분야에서 지식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단체가 있는 현장을 스케치했다. 좋은 취지와 커리큘럼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몸소 관련 단체를 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가 크다. 또 ‘대중화’를 표방은 하지만, 막상 강사들 앞에서 청중이 왕성한 실시간 논쟁과 토론을 제기하기란 쉽지가 않은 이유도 있다.
그렇다면 지식에 대한 욕망이 어느 때보다 커진 대중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인터넷 블로그와 카페 등이다. 인터넷 초창기의 홈페이지들은 사실 지식의 대중화와 거리가 멀었다. 종이에 있던 지식을 그대로 화면에 옮긴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털 사이트의 카페나 클럽이 인기를 얻고, 블로그가 선풍적인 관심을 끌면서, 양상은 크게 달라졌다.
이른바 웹 2.0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대중과 연구자들이 직접 인터넷을 통해 소통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점에 있다. 학문 성격상 인문 사회 분야의 연구자들이 대중과 접하는 경향이 크다. 그렇다면 웹을 통한 연구자들과 대중의 소통 양상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은 서평과 북리뷰를 들 수 있다. ‘로쟈’는 대표적인 알라딘 블로거인데, 러시아문학을 전공, 강의하고 있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연구와 강의로 바쁜 와중에도 꼬박꼬박 심도 있는 서평과 리뷰를 블로그에 올리고, 각종 일간지, 주간지의 서평을 ‘평’하기도 한다. 로쟈의 서평에 대중은 댓글이나 추천 등으로 화답하는데, 개중에는 전문적 식견을 가진 이들의 코멘트도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질문과 답변의 수준을 넘어 댓글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고, 간혹 새로운 소식이나 지식이 로쟈의 블로그를 방문한 네티즌에 의해 공급되기도 한다. 로쟈의 블로그는 일일 방문객이 천명을 넘어설 정도로 대중 인지도가 높다.
이렇게 어디서 청탁을 받은 것도 아닌 서평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하고, 그것을 주제로 대중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덕분에, 책에 대한 접근성, 배경 지식, 최신 정보가 대중과 공유된다. 이는 다소 점잖은 면이 있는데, 혈기왕성한 젊은 학자들은 단순 리뷰나 서평에 만족하지 않는다. 서양철학을 전공한 연구교수인, 알라딘 블로거 ‘FTA반대Balmas’는 대단히 날카롭게 불어 번역서들의 오역을 잡아낸 경력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데리다 등 주요 프랑스 철학책이 번역돼 나올 때마다, 꼼꼼하게 원문 대조 검토를 하고, 오역을 지적하곤 한다. 간혹 오역 논란이 커져, 대개 또 다른 연구자이기도 한 역자가 항의메일을 보내고, 그 항의메일이 공개되는 웃지 못 할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로쟈 역시 꼼꼼한 원문 대조 번역 검토로 명성이 높다.
물론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지식 소통이 책을 매개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공부를 하고 있는 대학원생이나 학부생들도 활발하게 블로그나 클럽, 홈페이지, 카페 등을 통해 지식의 소통과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일차적으로는 각종 일간지, 주간지 혹은 학술지의 기사를 스크랩하고 거기에 코멘트를 다는 작업에 집중된다. 다소 폐쇄적이고 위화감이 있는 해당 언론사의 사이트와 달리, 지식의 정류장 역할을 하는 이들의 블로그를 통해, 대중은 보다 손쉽고 가벼우며 친숙하게 각종 학술 소식을 접한다.
속류화의 위험성 경계
또 인터넷을 통해 대중이 연구자에게 직접 날카로운 질문이나 논쟁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한 알라딘 블로거 외에 들뢰즈 연구자로 유명한 김재인 서울여대 강사의 홈페이지인 ‘철학과 문화론’에는 항상 많은 네티즌이 들끓는다. 네그리의 다중 개념에 의거해, 지식 생산에서 위계적 관계의 폐지를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다중네트워크센터’는 아예 방문객이 직접 지식을 생산하고, 집적하도록 배려를 하고 있다. 그 외에 문학 평론가 조영일 강사가 운영하는 카페인 ‘비평고원’, 랑시에르 번역으로 유명한 양창렬의 ‘철학사랑’ 등에도 발걸음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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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출판사들 역시 대중에게 문호를 전면 개방하고, 표현의 욕구를 배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해나무는 최근 『지식의 이중주』를 출판하면서 우리 시대의 키워드에 대한 댓글을 설문조사했는데, 이는 향후 책에 대한 아이템만이 아니라, 대중의 지적 동향을 읽을 수는 점도 노린 것이다. 그린비는 소박하지만 깔끔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직원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고민과 출판관을 털어놓고 있으며,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을 하고 있다. 도서출판 난장의 대표 역시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책 홍보 보다는 국내외 인문 사회 학술 쟁점을 알리고, 논평하는 일에 더 열중한다. 이쯤 되면 돈 받고 책 파는 출판사라기보단, 연구 집단과 독자 대중의 지식이 왕래하는 소통의 장으로서 기능을 하는 공간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여러 장점과 대세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한계나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개방적인 외양과 달리, 인터넷 공간에서도 지식인과 대중, 연구자와 일반인 사이의 격차는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이고, 나름대로 공력을 쌓은 일부 네티즌을 제외하면, 사실상 유명 블로거를 운영하는 연구자의 말을 ‘경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 이를 방증한다. 게다가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오고가는 지식이 얼마나 학문적인 검증을 받았는가하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대중의 기호와 조회수에 대한 집착이 학문적 진실을 도외시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연구자들의 경우, 인터넷을 통한 소통에 신경을 쓰느라, 본분인 연구에는 소홀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성스럽게 가꾼 사이트를 운영 중인 김현돈 제주대 철학과 교수는 최근 블로그나 사이트를 연구자들이 애용하는 추세에 대해서 “지식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분명 의의는 있다”면서도 “사실 댓글, 콘텐츠 등등을 관리하자면 시간 및 노력이 많이 요구된다. 연구에 소홀해질 수도 있는 점이 문제다”고 실토했다.(오주훈 기자)
09. 05. 10.
P.S. 흠, "대중의 기호와 조회수에 대한 집착이 학문적 진실을 도외시 할 수 있다"는 점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사실 댓글, 콘텐츠 등등을 관리하자면 시간 및 노력이 많이 요구된다. 연구에 소홀해질 수도 있는 점이 문제다"라는 지적은 남의 얘기 같지 않다. 여기저기서 밀려드는 '독촉'들을 떠올려보니 그렇다. 이러다 사회적으로는 '매장'당하고 블로그만 둥둥 떠다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