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내일까지 원고의 강행군이다. 중간에 학회 발표도 하고, 학회지 편집도 거들고 하면서도 5편의 글 120매를 써야 하고 마지막 책 교정도 보아야 한다. 정신이 없어서 토요일자 신문들도 미처 챙겨읽지 못했다. 뒤늦게 둘러보니 다행스럽게도 주머니를 털 만한 '시급한' 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니콜라스 미르조예프의 <비주얼 컬처의 모든 것>(홍시, 2009)은 지난주인가 이번 주초에 봐둔 책인데, 이미 <바디스케이프>(시각과언어, 1999)란 책이 오랜전에 소개된 바 있는 저자다. 이번에 나온 책은 원제대로 '비주얼 컬처'(시각문화) 입문서로 꽂아둘 만한 책인 듯싶다.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9. 05. 09) 보는 행위, 그 속에 숨겨진 ‘시각의 권력’  

우리는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물리적으로는 각자의 눈과 거기에 연결된 시신경이다. 그러나 보는 방식에는 권력이 스며있다. 자신도 모르게 백인의 눈으로, 남성의 눈으로, 제국주의자의 눈으로 사물과 사건을 인식한다. 뉴욕대 교수인 저자는 근대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각문화를 대상으로, 보는 행위에 얽힌 정치적 함의를 풀어놓는다. 과거 존 버거는 미술작품에서, 로라 멀비는 영화에서 보는 자의 권력을 비판적으로 읽어낸 적이 있는데 저자의 분석은 더욱 광범위하고 체계적이다. 그는 미술의 혁명이자 근대적 보기의 시작인 원근법의 발명에서 시작해 회화·조각·사진·텔레비전·가상현실·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시각문화가 발전해온 역사를 서술한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도 있듯이 시각은 흔히 다른 감각에 비해 정확성과 객관성을 갖는다고 믿어진다. 그러나 여러가지 반증이 있다. 원근법은 사물을 가장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식이었으나 실제로는 빈번한 왜곡이 이뤄졌다. 예를 들어 프랑스 절대주의 시대의 화가들은 원근법을 엄격히 적용하면 왕이 신하들보다 작아보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배경은 원근법으로 하되 인물은 고전적인 비례크기에 따라 묘사했다.

시각의 권력은 현대사회로 오면서 점점 커진다. 미국 가정의 99%에서 하루 평균 7시간48분동안 켜져 있는 텔레비전은 파편화된 세계에서 집단경험을 제공하는 초강력 매체다. 텔레비전의 이데올로기 문제는 수많은 미디어학자들이 지적해왔다. 인터넷 역시 발명초기의 급진적 평등성을 둘러싼 허풍스러운 주장보다는 역사적·문화적으로 결정된 공간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오늘날 가상세계는 인터넷 사용자·호스트·네트워크의 60%를 차지하는 중산층 미국인을 위한 보호막이라는 것이다.

시각이 갖는 권력은 제국주의 역사를 관통해 왔다. 콩고사회에 대한 인류학자들의 표피적 서술은 그들에게 식인종이란 낙인을 찍었고, ‘미개인’에 대한 이미지는 제국주의자는 물론, 피식민지인 스스로에 의해 실천에 옮겨진다. 현대의 신제국주의와 인종차별주의는 더욱 교묘하다. 저자는 외계인과 싸우는 미국 정보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맨 인 블랙>을 남미와의 국경을 통제하는 일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것으로 읽어냄으로써 일상에 스며든 이미지의 권력을 고발한다.

그는 1996년 가을 미국의 크루즈미사일이 이틀간 두차례 이라크의 대공방위시설물을 공격했음에도 며칠 뒤 이라크군이 미군 전투기를 격추시켰던 일화를 들면서 “보는 것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면 우리가 믿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상문화학, 비판적 문화연구의 바이블에 해당되는 책으로, 원서는 10년전 나왔다.(한윤정기자) 

09. 05. 09.  

  

 

P.S. 기사 중에 존 버거와 로라 멀비의 책이 언급되는데, 짐작에 <이미지, 시각과 미디어>(동문선, 1990)과 <1초에 24번의 죽음>(현실문화연구, 2007)을 가리키는 듯싶다. 예전에 '시각문화'와 '스펙터클'을 주제로 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느라 나름으로는 이 주제의 책들을 몇 권 뒤적여본 적이 있다. 기회가 되면 묶어서 다뤄봐도 좋겠다. 미로조예프의 책을 기준점 삼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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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0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0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onakim 2009-05-10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라 멀비의 Visual Pleasure and narrative cinima라는 기념비적 논문을 언급하는 듯합니다. 그녀의 최근작인 <1초에 24번의 죽음>은 영화매체의 존재론을 다루는 이론서로 1초의 24번이라는 것은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의 기계적 촬영과 영사의 과정에서 사라지는 혹은 드러나지 않는 시공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죽음이라 본 것이죠. 영화의 유령성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영화의 존재론적 특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이론서라고 생각합니다.^^

로쟈 2009-05-10 22:32   좋아요 0 | URL
멀비의 Visual Pleasure and narrative cinima가 번역돼 있던가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관련논문은 읽은 적이 있지만...

yoonakim 2009-05-12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번역은 되어 있는데 원문으로 보는 것이 훨씬 이해가 잘되죠. 원문은 movies & methods나 film theory & criticism 같은 엔솔로지 형태의 영화이론서들에는 거의 수록되어 있습니다. 로라 멀비는 <1초에 24번의 죽음>에 와서는 페미니스트적 색체보다는 영화의 존재론이나 형식미학 등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론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굳히는 듯합니다.

로쟈 2009-05-12 12:18   좋아요 0 | URL
네, 원문은 갖고 있어요. 번역됐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