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4.29 재선 지역 가운데 울산 북구에서 진보 진영 후보들간의 단일화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단일화가 필수적이라는 데 모두가 동감하지만 정작 단일화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인 듯싶다(서로의 명분을 앞세우다가 필패의 국면으로 가는 것일까?). 어제오늘 일간지의 두 관련 시론을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9. 04. 21) '좌파 분열’이란 신화  

볼셰비키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서 분열돼 나온 다수파를 뜻한다. 사회민주당은 1903년 영국 런던 2차 당대회에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소수파)로 분열됐다. 분열의 직접적 원인은 당원의 자격문제였다. 레닌은 당원은 당 기관에 속하고 언제나 당의 지휘 명령에 복종하며 노동계급의 전위(前衛)인 자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멘셰비키는 당원 자격을 직업혁명가들로 국한시켜야 한다는 볼셰비키에 반대하고 서유럽의 사회민주당들처럼 대중정당이 돼야 한다고 맞섰다. 이 사소해 보이는 이견에는 혁명에 대한 근본적 입장 차이가 담겨 있었다. 볼셰비키는 폭력적 정권 탈취를, 멘셰비키는 부르주아 혁명을 당면과제로 삼았다. 1917년 10월 마침내 정권을 잡은 것은 볼셰비키였다.

“좌파는 분열로 망하고 우파는 부패로 망한다”는, 꽤 널리 퍼진 속설이 있다. 이 말이 어디에서 유래한 건지는 알 길이 없지만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러시아 혁명사만 봐도 그렇다. 혁명을 성공시킨 볼셰비키는 이념지형상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좌파였다. 멘셰비키는 상대적으로 우파였다. 현대에도 좌파가 반드시 분열하란 법은 없고, 우파가 반드시 부패로 망하란 법도 없다. 유럽을 들여다보면 우파도 분열로 망한 경우가 많고 좌파가 부패 때문에 몰락하기도 한다. 또 부패했으나 망하지 않고 건재한 우파도 있다. 끝없는 부패 추문 속에서도 50년 이상 장기 집권해 온 일본 자민당이 그 사례다. 분열이건 부패건 좌파·진보, 우파·보수 어느 한 편의 전유물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생각컨대 좌파=분열이란 등식엔 검증되지 않은 신화적 요소가 개입돼 있다.

4·29 재선이 치러지는 울산 북구에서 좌파 진영 후보 2명의 단일화가 관심거리다.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와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는 “여론조사 결과 우리 중 한 명만 나가면 한나라당 후보를 이긴다”며 단일화를 다짐해왔다. 문제는 21일로 단일화 2차 시한이 다가왔는데도 단일화 협상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굳이 양김 단일화에 실패한 1987년 대선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진보정당은 거대 여당의 독주 속에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울산 북구에 좌파 회생의 시금석이란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없다. 진보는 소탐대실(小貪大失)로 좌파=분열이란 신화를 입증하려는가.(김철웅 논설위원)    

한겨레(09. 04. 22) 두 진보정당은 시험대에 올랐다

필자는 지난 2월4일치 〈한겨레〉 ‘시론’을 통하여 현재 진행되는 국회의원 보궐선거 및 다가오는 지방자치 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간의 선거 연대를 촉구하였다. 이후 양당 사이에 울산 북구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위한 후보 단일화 논의가 계속되어 선거 연대가 가시화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후보 등록 마감 전 단일화는 무산되었고, 현재 민주노동당의 김창현, 진보신당의 조승수 두 후보는 각각 후보 등록을 하고 별도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일차적 이유는 울산 북구 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 단일화를 위한 민주노총의 투표를 불법으로 유권해석했기 때문이다. 2002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노동조합이 선거운동 기간 전에 예비후보에 대해 조합원들을 상대로 선전 행위를 하지 않고 투표를 하는 것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바 있지만, 이번 울산 북구 선관위는 이러한 중앙선관위의 해석도 무시한 것이었다. 이후 민주노총 울산본부도 내부 이견이 발생하여 후보 단일화를 위한 총투표를 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선거운동 기간 중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일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쉬워 보이지 않는다. 두 정당 및 후보 사이에 분당으로 인한 구감(舊感), 진보 정치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경쟁, 여론조사의 방식과 절차에 대한 이견 등이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 소속 인사들은 과거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 사이의 단일화 실패와 그로 인한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맹비난하였지만, 이제 두 진보정당이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

두 정당 바깥에 있는 사람으로 “감 놔라, 배 놔라” 할 자격은 없다. 그렇지만 두 정당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단일화 실패 이후 어떠한 일이 닥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식적인 차원에서 예상이 되기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당장 양 정당과 후보는 단일화 실패를 상대 당과 후보 탓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낼 것이다. 선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상대에 대한 비난은 더 가중될 것이다. 입으로는 ‘진보 대연합’을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역시 쟤네들은 안돼”라고 되뇌며 서로를 적대시할 것이다. 보수정당보다 경쟁 진보정당을 더 미워하고 경원시하는 일도 생길 것이다. 다가올 지방자치 선거에서도 겉으로는 후보 단일화를 거론하겠지만 속으로는 각개약진의 길을 추구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대중의 냉소와 실망은 커질 것이다. 이 경우 진보정당의 미래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노동자 정치 1번지’라는 상징성을 갖는 울산 북구의 국회의원 한 석에 대한 양당의 열망은 치열하다. 게다가 단일화가 되면 당선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일방의 자발적 양보나 살신성인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경우 후보 단일화는 양 후보와 정당에 대하여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외부적 세력이 있거나, 또는 양 후보와 정당이 정치력을 발휘하여 서로의 이해(利害)를 합리적으로 분배·조절할 수 있는 경우에 가능하다. 현재 시점에서 첫 번째 경우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도덕적 힘을 가진 세력은 없으므로, 두 번째 경우만이 유일한 선택지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지도부와 두 후보는 즉각 만나야 한다. 그 자리에서 그동안 그리도 외쳐왔던 진보의 대의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누구를 내세워 진보의 원내 교두보를 추가할 것인지, 그리고 양보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혜택을 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두 정당 지도부와 두 후보의 그릇과 정치력을 지켜보고 있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두 진보정당의 정치적 선택은 적어도 향후 10년간 진보 정치의 명운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09. 0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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