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경제서는 케빈 필립스의 <나쁜 돈>(다산북스, 2009)이다. 비록 책을 구입할 '나쁜 돈'은 없지만 리뷰 정도야 얼마든지 챙겨놓을 수 있다. "저자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드러난 미국의 진짜 모습을 '석유라는 세계 주요 자원의 독점', '금융 부분의 폭발적 팽창', '종교와 정치의 연합' 세 가지로 요약한다.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 순차적으로 세계 경제의 패권을 쥐었던 나라들의 흥망성쇠에서 이끌어낸 공통점을 통해 미국이 앞으로 어떤 행로를 보일지 예측한다." 처음 접하는 저자이긴 하지만, 이력이 만만치 않다. 별로 주목받지 못한 듯한데, '미국의 금권정치와 거대 부호들의 정치사'란 부제의 책 <부와 민주주의>(중심, 2004)로 국내에는 처음 소개됐다. 몇 권 더 소개돼도 좋을 듯싶다.  

한국일보(09. 04. 11) 나쁜 달러, 미국을 버렸고 세계를 버렸다  

"중요한 문제는 2007~2010년 지속될 미국의 주택 및 신용 위기가 세계 위기를 일으키고 결국 경제 패권을 아시아로 넘겨줄 것이냐, 이다."(293쪽)

"악화(이 책 제목 '나쁜 돈')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16세기 금융인 그리샴의 갈파가 새삼스럽다. 미국의 대표적 지성으로 불리는 케빈 필립스가 지적하는 위기의 본질은 결국 그 통찰의 버전업인 셈이다. '나쁜 돈'은 가치가 떨어진 달러뿐 아니라 지나치게 거대해진 금융 부문과 그 불량 상품들, 그리고 위험한 태도를 가리킨다.

저자는 최근 미국의 경제를 '불노믹스(Bullnomics)'라는 말로 특징짓는다. 마구 날뛰는 황소 같다는 이야기다. 그 첫번째 특징은 1980~90년대에 연금 기금, 인터넷 거래. 기업 연금 등이 등장해 조성된 여건을 기반으로 한 금융 시스템이다. 두번째는 정부 주도 하에 벌어지는 거대한 통계 왜곡이다. 1990년대 말의 정치적 흥분 속에서 소비자물가 지수가 은밀하게 사전 조율돼 일반의 관심에서 사라졌던 게 바로 그 때문이다.

세번째가 경제와는 무관할 것 같아 보이는 종교 문제, 즉 기독교 원리주의다. 미국인의 편향, 왜곡된 신앙 문제를 지적하는 대목은 이 책이 경제학 서적인가 싶을 정도로 문화적 측면을 중시한다. "조지 부시 시대 보수대연합이 사용한 마취제는 복음주의, 원리주의, 오순절 기독교였으며 9ㆍ11 이후 고조된 분위기를 이용하여 테러, 악마, 이슬람에 대한 편견도 함께 주입하였다"(139쪽). <시크릿> <야베스의 기도> 등 최근 한국의 독서시장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 복음주의와 부시 행정부의 '오너십 사회'는 결국 연계돼 있다는 것이다. 

실물이 아닌 금융에 대한 과도한 의존 정책은 결국 소득과 부의 양극화, 금전 숭배, 투기의 만연 등 시장의 대혼란으로 치닫고 말았다. 저자는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이 걸었던 길을 미국도 따르고 있다며 우려한다. 농업, 제조업 등 초기 형태의 산업을 희생시키면서 돈 장사(금융)에 올인한 나라들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종교의 보수ㆍ우경화가 가세했다. 



저자는 미국이 세계의 분노를 촉발시키며 21세기를 출발했다고 날을 세운다. "판단 착오로 이라크를 침공하여 유혈 점령한 뒤, 국제적으로 크게 신망을 잃었다"고 지적하면서 "침공 목적은 이라크에서 석유를 대량으로 생산ㆍ판매, 석유수출국기구를 무너뜨리고 유가를 낮추려는 것"이라며 전쟁의 본질을 꿰뚫는다. 이 같은 명쾌한 논리로 저자가 보는 세계 경제의 위기는 대단히 실제적인 이유에서 비롯된다. "세계 석유 공급은 지금 정점에 도달하기 직전이며 수요를 지탱할 수 없"(41쪽)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협량한 세계관도 한몫했다. 저자는 "순진하고 애국심 강한 미국인들은 그토록 많은 외국인들이 미국에 반대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다"(45쪽)며 '선량한' 미국인들에게 경고장을 날린다. 닉슨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출발, 2006년 미국의 기독교 유파를 비판한 <미국의 신정 정치>를 발표하는 등 쓴소리꾼을 자임하는 저자는 타임 등 매체에서 필명을 날리고 있다.(장병욱기자) 

09. 0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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