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란 성은 아직도 '아키라'란 이름을 떠올리게 하지만 젊은 세대 영화광이라면 '기요시'란 이름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호러 영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구로사와 기요시 말이다(나는 <큐어>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의 신작 <도쿄 소나타>가 이번주에 개봉했다. 영화를 보는 일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지만, 이번주에 한 편을 볼 수 있다면, 혹은 봐야 한다면 나의 선택은 <도쿄 소나타>다. 선택에 도움을 준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21(09. 03. 20) 도쿄의 먹구름이 서울을 뒤덮다 

가족의 위기는 뺑소니 사고처럼 찾아온다. 도쿄의 그 가족은 누구도 특별히 잘못한 일은 없지만 저마다 심각한 위기에 빠진다. 단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사고를 당하는 속수무책의 피해자처럼, 더구나 피해 보상은 물론 원망할 구체적 대상도 찾지 못하는 뺑소니 사고처럼 위기는 찾아온다. 가족을 위기로 몰아넣은 원인은 강간범도, 사기꾼도, 살인범도 아니고 단지 ‘사회’(의 변화)다. 그리고 그 문화에 순응하며 살아온 무감한 기성세대, 자신이다.

엄마는 외롭고 아들은 답답했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도쿄 소나타>는 평생 고용의 신화가 깨진 일본에서 시작한다. 실직한 아버지, 외로운 전업주부인 엄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큰아들, 아버지의 권위에 눌린 작은아들. 그들도 우리처럼, 저마다 가족이라 더욱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가졌다. 아버지는 아침이면 꼬박꼬박 만원버스를 타고 회사에 가서 야근도 했을 것이고,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정성껏 따뜻한 저녁을 준비했을 것이며, 아들들은 특별한 말썽을 부리지 않고 학교에 다녔을 것이다. 누구도 심각한 잘못을 범하지 않았고 누구도 이들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이들은 출구 없는 절망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치 속수무책으로 치고 지나가는 뺑소니 사고처럼 이들은 현실이란 괴물에 치였을 뿐이다. 또 다른 실직자인 아버지 친구의 말처럼 “서서히 가라앉는 배에서 구명보트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신세”, 그것은 오늘날 다수가 공감할 만한 현실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도쿄 소나타>에 대해 “나는 현재 도쿄의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거의 과장 없이 그려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평범한 가족의 오늘은 <밝은 미래> <큐어> <절규> 등을 만든 호러영화의 거장이 지나온 영화 세계만큼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절망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암울한 <도쿄 소나타>의 세계가 설득력 넘치는 일본의, 또한 우리의 얘기로 들리는 것이다.

일본인 1명을 고용할 돈으로 중국인 3명을 쓴다, 너무나 자명한 논리라 이제는 한 인간에 대한 예의나 한 가족의 생계 따위를 들이대고 맞서기조차 어렵게 돼버렸다. 그렇게 비용 절감을 좇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아버지(가가와 데루유키)는 오랫동안 근무했던 일자리를 잃는다. 그리고 예정된 추락. 구직은 번번이 실패하고, 무료 급식으로 점심을 때우는 일상이 이어진다. 하지만 전통적인 가부장인 그는 차마 가족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다. 아내(고이즈미 교코)는 우연히 무료 급식을 받는 남편을 목격하고, 오랫동안 삭여온 그녀의 외로움은 강도의 침입을 계기로 터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큰아들(고야나기 유)은 세계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운운하며 미군에 입대한다. 구로사와 감독은 일본 시민도 미군에 입대가 가능한 세계로 현실을 비틀어, 일본 청년세대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이에 대해 감독은 “나는 진심으로 우리의 상황이 걱정스럽다”며 “하지만 영화 속 아버지처럼 나에겐 청년들이 전쟁에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설득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기껏해야 프리터(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남는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사람들)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본의 ‘88만원 세대’에게 미군 입대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출구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막내인 켄지(가이 이노와키)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지만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결코 꿈을 꺾지 않는 소년은 급식비를 레슨비로 유용해 피아노를 배운다.  

<도쿄 소나타>는 사회 기사처럼 전형적인 4인의 핵가족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서술한다. 그들 하나하나엔 극단적 면모가 없지만, 그들의 일상을 퍼즐처럼 맞춘 그림은 해결이 어려운(혹은 불가능한) 악몽이다. 인물은 담담한데, 영화는 쓸쓸하고, 관객은 서글프다. 도대체 이들을 위한 대안이란 존재하기 어려운 탓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사실감 넘치는 연기는 영화를 살아 있는 현실로 만든다. 아버지 역의 가가와는 <유레루>에서 오다기리 조와 함께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고, 한국의 봉준호(<도쿄!>), 중국의 장원(<귀신이 온다>)이 선택하는 아시아의 배우다. 엄마 역의 고이즈미는 <구구는 고양이다>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로 <도쿄 소나타>로 일본의 영화지 <키네마준보>가 주는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켄지를 연기한 1995년생 가이는 야무진 얼굴로 놀라운 연기를 펼친다. 마치 <아무도 모른다>의 야기라 유야를 보았을 때처럼 아역이라 믿기 어려운 연기다. 

실직한 가장, 기성세대 권위주의
구로사와 감독이 가리키는 어둠의 원천은 단지 어쩌지 못하는 현실만이 아니다. 가장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가족의 숨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기성세대의 권위주의도 불행의 근원이다. 왜 큰아들이 전쟁의 위협을 감수하고 미군에 입대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막내에게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허공에 뻗은 아내의 손에서 떨어지는 외로움이 어디서 오는지, 가장인 그는 살피지 못한다. 그도 대부분의 아버지처럼 ‘무신경의 평범성’을 넘어서지 못한 인물이다. 그렇게 그는 일본이고, 아버지다. 그러나 <도쿄 소나타>가 절망의 침묵으로 끝나진 않는다. 가족들 모두가 집 밖에서 보내는 하룻밤 동안에 격렬한 사건을 겪는다. 그리고 울리는 아름다움 피아노 연주곡. 이렇게 끝나는 <도쿄 소나타>는 ‘서울 소나타’처럼 들린다. 지금 여기도 도쿄의 하늘처럼 불황의 먹구름이 가득하고, 가부장의 무신경도 일본의 그것 못지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켄지가 사는 도쿄의 어느 동네는 마치 서울의 성북구나 구로구 어디쯤 같기도 하다. 2008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도쿄 소나타>는 3월19일 개봉한다.(신윤동욱기자) 

09. 03. 21.  

P.S. '평생 고용의 신화가 깨진 일본'이란 구절에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 책은 리처드 세넷의 <뉴캐피털리즘>(위즈덤하우스, 2009)이다(요즘 가방에 넣고 다니는 탓도 있다). 덧붙여 일본의 반빈곤 네트워크에 관한 소개기사 '자르지 말라, 빈곤에 반대한다'(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4555.html)도 떠올려본다.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ir 2009-03-2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루는 이야기도 그렇고, 카가와 테루유키와 코이즈미 교코 주연이라는 얘기에 봐야겠구나 했어요. 가능한 빨리 보지 않으면 금방 내려갈 듯 하니 서둘러야겠지요;

로쟈 2009-03-24 00:25   좋아요 0 | URL
네, 아무래도 그러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