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의 문학은 '잭 런던 걸작선'이다. <강철군화>의 작가가 새로운 번역으로 소개되는 듯한데, 아무려나 반갑다. 어릴 때 읽은 <야성의 부름>도 곧 다시 나올 거라고 한다(내가 읽은 번역본의 제목은 <야성의 절규>였다). 자세한 리뷰기사가 있어 옮겨놓는다.

  

한겨레(09. 03. 14) '잭 런던 걸작선’ 미국 사회주의 싣고 오다 

잭 런던(1876~1916)은 우리에게는 <야성의 부름> <하얀 엄니> 같은 어린이·청소년용 동물 소설의 작가로 주로 알려져 왔다. 사회주의 혁명운동을 다룬 그의 또다른 대표작 <강철군화>(1908)가 1980년대 말에 번역 소개된 일은 그를 이념소설의 작가로서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은 러시아혁명의 전령사로 일컬어지는 막심 고리키(1868~1936)의 <어머니>(1907)에 견줄 만한데, 미국과 러시아에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두 작가는 어린 나이서부터 갖은 직업을 전전하며 고학을 거쳐 작가로 입신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길지 않은 생애 동안 19편의 장편소설과 200여 편의 단편, 500여 편의 논픽션을 남긴 잭 런던의 문학세계를 갈무리한 선집이 나왔다. 출판사 궁리가 기획한 ‘잭 런던 걸작선’이 그것으로, <강철군화>와 <비포 아담> <버닝 데이라이트> 등 세 권의 장편을 1차분으로 선보였다. 선집은 올가을 <야성이 부르는 소리>로 이어지며, 2011년 초에 전체 일곱 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1차분 세 권 가운데 <비포 아담>과 <버닝 데이라이트>는 이번이 국내 초역이다. 1907년작인 <비포 아담>은 ‘아담 이전’이라는 제목에서 짐작되듯이 원시 인류의 삶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되살린 작품이다. 소설은 20세기 초 현대 미국의 한 젊은이가 꿈에서 경험하는 원시인의 흥미진진한 삶을 들려주는 형식을 취한다. 주인공인 ‘큰 이빨’은 원래 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생활하는 나무부족의 일원이었으나 의붓아비에 의해 쫓겨난다. 이웃 동굴부족의 주위를 조심스럽게 맴돌던 그는 가까스로 동굴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며 거기서 평생의 동무가 될 ‘늘어진 귀’를 만난다. 큰 이빨과 늘어진 귀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나 허클베리 핀처럼 소년다운 모험을 즐기며 성장한다. 호랑이 ‘칼송곳니’를 놀려먹는가 하면 들개 새끼를 데려와 애완동물처럼 키우다가 잡아먹기도 하며, 통나무 둥치를 뗏목 삼아 강을 건너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기도 한다.

성장한 큰 이빨은 눈이 크고 코가 오뚝하며 온순한 암컷 ‘재빠른 것’을 만나 결혼한다. 그러나 동굴부족의 우두머리인 ‘붉은 눈’이 재빠른 것에 눈독을 들이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그 일이 조금 잠잠해지는 듯하자 더 큰 위험이 닥친다. 활과 화살로 무장한 ‘불부족’이 동굴부족을 공격한 것이다. 부족원들 대부분이 몰살당한 가운데, 큰 이빨과 재빠른 것은 몇몇 부족원들과 함께 살아남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멀고 험한 여행을 떠난다….  

<버닝 데이라이트>(1910)는 ‘해가 불타고 있어!’(Daylight is burning!)라는 말로 동료들을 깨운다고 해서 ‘버닝 데이라이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사내, 일럼 하니시의 이야기다. 소설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는 알래스카 클론다이크에서 그가 금 채굴과 밀가루 매점매석 등으로 한몫을 잡아 도시로 떠나기까지를 그린다. 2부의 무대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 1부에서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를 연상시키는 야성미와 남성성의 소유자로 그려졌던 데이라이트는 “규모가 큰 포커판”(205쪽)인 캘리포니아의 재계에서 성공을 향해 내달리는 동안 냉혹한 자본가로 면모를 일신한다. “난 버닝 데이라이트야. 신도 악마도 죽음도 파멸도 두려워하지 않아”(193쪽)라는 말은 황금신 마몬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적 인물 데이라이트의 자기 선언이라 할 법하다.

2부의 후반부는 신데렐라적 주인공이 등장하는 멜로드라마처럼 전개된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속기사로 일하는 디디 메이슨에게 매혹된 데이라이트가 끈질긴 청혼 끝에 디디의 승낙을 얻어 내는데, 그 대신 사업을 모두 포기하고 전원으로 들어가 단순 소박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결말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글렌 엘런 농장에서 농업공동체를 꿈꾸던 잭 런던의 낭만적 이상주의가 반영된 것으로도 보인다.  

<강철군화>는 전세계가 사회주의로 통합된 27세기에 와서 발굴된 20세기 사회주의 혁명가의 일대기 형식을 취한 소설이다. 주인공은 1912년에서 1932년까지 미국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어니스트 에버하드. 그 기간은 소설 속 현재인 27세기에서 보자면 까마득한 과거이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1908년보다는 미래에 해당한다. 런던이 가상한 이 근미래 시점에 미국은 일곱 개의 트러스트(독점재벌)가 전체 산업과 국가권력을 장악하게 되면서 소자본가와 중산층이 몰락하는 등 사회 양극화가 심해진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부당한 대우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집회와 파업에 나서고 대중들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이 확산되면서 사회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지만, ‘강철군화’로 표현되는 과두지배체제는 군대와 민병대, 비밀경찰, 폭력단 등을 동원해 탄압한다. 지배권력의 무기가 폭력만은 아니어서, 체제와 기득권에 봉사하는 언론과 종교, 학계와 사법계의 폐해 역시 심각하다.

“미국의 언론은 자본가계급에 기대어 살을 찌우는 기생충들이에요. 언론의 기능은 여론을 조작해 기존 체제에 봉사하는 것이고, 그 봉사를 썩 잘해내고 있죠.”(131쪽)

어니스트의 신랄한 어조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비판 언론에 대해 운송을 중단시키고 폭도들을 동원해 인쇄시설을 불태우는 장면은 섬뜩하기조차 하다.(182~3쪽) <강철군화>에서 잭 런던이 ‘예언’한 사태 가운데 한층 불길한 것은 “거대 노동조합들의 변절과 노동귀족의 생성”(231~2쪽)이다. 1937년 이 소설의 러시아어판이 나왔을 때, 트로츠키가 찬사를 보낸 것이 바로 이 대목이거니와, 대기업 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의 이원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우리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이 ‘기록’에서 어니스트 등이 주도한 봉기는 강철군화의 발 아래 처참하게 짓밟히고 혁명은 일단 좌절한다. 그러나 고리키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강철군화> 역시 패배의 현실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낙관을 놓치지 않는 가운데 마무리된다.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영원히는 아니에요. 우린 배웠어요. 내일 우리의 대의는 다시 일어날 것이고, 지혜와 훈련으로 더 강해질 거예요.”(362쪽)   

■ 잭 런던의 문학은
잭 런던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신문배달, 얼음배달, 통조림공장 직공을 거쳐 굴 양식장을 터는 해적질을 하다가는 거꾸로 해적을 감시하는 해안 순찰대에 가담하기도 했으며, 바다표범 잡이 원양어선의 선원을 거쳐 부랑아로 떠돌다가 교도소에서 중노동을 하기도 했다. 열아홉 살 늦은 나이에 고등학교에 들어가 18개월 만에 속성으로 공부를 마치고 버클리(캘리포니아주립대)에 입학했으나 역시 집안 사정으로 한 학기 만에 그만두어야 했다.

이십대 초반 알래스카 골드러시 합류를 포함해 다양하고 생생한 경험은 그의 문학의 속살을 찌워 주었다. 그러나 몸으로 직접 세상과 부대끼는 동안 마르크스와 니체, 다윈 같은 당대의 첨단 사상은 순전히 독학으로 습득해야 했다. 그의 사상에 때로 일관성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비체계적이고 즉흥적인 독서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가령 <강철군화> 중 ‘꿈의 수학’ 장이 마르크스 잉여가치설의 빼어난 문학화라 할 수 있다면,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아닌 위로부터의 혁명을 밀고나가는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모습에서는 니체적 초인의 모습이 만져진다.

올해로 탄생 200돌을 맞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 역시 런던의 소설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특히 원시 인류를 등장시킨 <비포 아담>에서 진화론의 영향은 뚜렷하게 보인다. 주인공인 현대 미국의 젊은이는 자신의 꿈에 나타나는 원시 인류의 이야기를 ‘생물학적 기억’이라고 표현한다. 유전자를 통해 뇌에서 뇌로 전달된 종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본능은 단지 우리의 유전적 형질에 찍힌 습관에 불과하”(23쪽)다. “진화가 바로 열쇠였다.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29쪽)는 문장은 진화론에 대한 런던의 경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나무부족과 동굴부족, 불부족이 동일한 시간대에 존재한다는 설정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세 부족의 운명은 적자생존의 법칙과 인류의 단계별 진화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강철군화>에서는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사회 상황에 응용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과 사적 유물론의 결합이라 할 만한 형태가 나타난다. 어니스트가 사회주의의 필연성을 역설하는 대목을 보자. “기억하십시오, 진화의 물결은 결코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진화의 물결은 계속 흘러, 경쟁에서 연합으로, 작은 연합에서 큰 연합으로, 큰 연합에서 거대 연합으로, 마침내는 모든 연합들 중 가장 거대한 연합인 사회주의로 흐르게 됩니다.”(157쪽)  

1896년 사회노동당에 가입했던 잭 런던은 1901년 사회당으로 당적을 옮겼다가 세상을 뜨던 해인 1916년 사회당을 탈당한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사회주의적 대의와 계급투쟁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혁명에 대한 그의 열정은 거의 사그라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야성이 부르는 소리>(1903)의 성공 이후 그에게는 돈과 명예가 함께 굴러들어왔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는 호화 농장과 최고급 요트, 포도주 양조장의 소유주로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다. <강철군화>의 과격한 혁명론과 <버닝 데이라이트>의 낭만적 이상주의 사이의 괴리는 그의 굴곡진 삶과 비체계적인 독서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최재봉 기자) 

09. 0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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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9-03-14 08:58   좋아요 0 | URL
잭 런던 멋있어요^^
강철군화는 읽을 책이고, 어머니는 보고싶은 영환데, 물론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구입해 보면 되겠지만.. 요즘은 그런 영화를 상영하는 소극장들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아쉽네요.. 대학가에선 종종 상영이 되는지 몰라도.

로쟈 2009-03-14 23:32   좋아요 0 | URL
<어머니>가 출시됐었나요? 볼 기회가 좀 드물죠...

노이에자이트 2009-03-14 15:50   좋아요 0 | URL
마틴 에덴은 연애소설이라고 하길래 구했어요.강철군화와 함께 헌 책방에 꽤 많이 나오던 시절이 있었지요.강철군화는 정말 재미있더군요.

로쟈 2009-03-14 23:32   좋아요 0 | URL
네, 한때 자주 눈에 띄는 책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