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의 사회학 책은 리처드 세넷의 <뉴캐피털리즘>(위즈덤하우스, 2009)이다(국역본은 '신자본주의' 대신에 '새로운 자본주의'라고 옮겼다). 원제는 '새로운 자본주의 문화(The Culture of the New Capitalism)'. 며칠전 서점에서 우연히 보고 손에 들었는데,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계발적인 책으로 보인다(아직 역자 후기만을 읽은 상태지만). 게다가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다. 일단은 아래 리뷰기사가 좋은 참고가 될 듯싶다.  

경향신문(09. 03. 14) 천박한 자본주의 ‘삶의 서사’가 흔들린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관료제를 ‘쇠창살’에 비유했다. 자신의 삶을 다른 누군가가 설계한 틀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에서였다. 1960년대 신좌파(New Left)는 관료제를 개인을 억압하는 ‘감옥’이라고까지 비판했다. 하지만 관료제의 쇠창살은 ‘안식처’이기도 했다. 관료제의 최대 유산인 ‘조직화된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서사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를 연속적으로 설명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또 다른 자아를 느낄 수도 있었고 사회관계를 맺는 것도 가능했다.

오늘날 삶을 서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하는 제도는 녹아 사라지고 있다. 종신고용제는 막을 내렸고 복지정책과 사회안전망은 단기화되고 변덕스러워졌다. 고용은 불안정해지고 퇴출의 공포는 심화됐다. ‘새로운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삶의 서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뉴캐피탈리즘>(원제 The Culture of the New Capitalism)은 새로운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흔들어 놓고 있는지 풀어내면서 퇴출 공포로 대변되는 불안정한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짚은 책이다. 노동 및 도시화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저자(런던정경대 사회학과 교수)는 새로운 자본주의 제도·문화가 노동 윤리나 능력에 대한 태도, 소비와 정치에까지 어떻게 작용하는지 파헤쳤다.

책에 따르면 새로운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가치는 다음과 같다. ‘항상 변화하라’ ‘불확실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 ‘장기보다 단기가 중요하다’ ‘지난 업적보다 미래 잠재력이 중요하다’. 이 같은 가치는 개인이 자기 삶의 연속적인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이해 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되풀이하고 필요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을 선택적으로 고용하며 효용성이 사라졌을 경우 해고해버리는 고용 문화는 개인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저자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속성을 MP3 플레이어를 빗대 설명한다. MP3가 듣고 싶은 노래의 순서를 그때 그때 바꿔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새로운 조직은 주력 업무에 따라 고용을 늘리거나 줄이면서 신축적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있다. 신경제는 또한 끊임없는 변화를 재촉할 뿐 무엇을 위한 변화인지를 설명하지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도 않는 ‘컨설턴트식 경제’다. 이로 인해 조직에 대한 충성도 저하, 노동자들 사이의 비공식적 신뢰 붕괴, 구성원들의 조직 생리에 대한 무지 등 세 가지 ‘사회적 적자’가 발생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새로운 조직과 제도가 관료제에 비해 더 작아진 것도 민주적이 된 것도 아니다. 권력의 중앙 집중화가 심화되고 권력에서 권위는 떨어져 나갔다. “자본주의만 살아남고 사회적인 것은 죽은 셈”이라는 평가다.

게다가 단기간에 일을 처리하고 다시 다른 일로 옮겨가야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는 잠재력 같은 재능만을 강조한다. 오랫동안 쌓은 업적과 숙련의 가치는 소멸하고 그에 깃든 지식의 맥락과 내용도 소진된다. 어떤 일을 깊이 파고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보니 장인정신은 사라진다. 잠재력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들에겐 과거의 업적에 상관없이 더 이상 쓸모 없고 경쟁력 없는 인물이란 낙인이 찍힌다.

저자는 나아가 새로운 자본주의 문화가 소비를 넘어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월마트식 정치’를 통해 보여준다. 소비자가 상표만 다를 뿐 내용물은 비슷한 상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월마트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듯 시민들은 정치를 단지 소비할 뿐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자기 삶을 연속적으로 설명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없도록 만든다. 사진은 2007년 3월 ‘퇴출 후보’ 공무원 선정을 앞두고 뒤숭숭한 서울시청 모습.

책은 소비자이자 구경꾼이기도 한 시민들이 진보 정치에 점점 등을 돌리고 스스로 수동적이 되어가는 이유를 설명한다. 자동차 회사가 공동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디자인과 옵션을 약간 달리한 자동차들을 내놓듯 현대 정치는 ‘신자유주의’와 같은 공동의 정치적 플랫폼을 제공한다. 이로 인해 정치 제품에는 ‘금박을 입힌 정도의 차이’만 존재하고 서로의 차이를 부각시킬 수 있는 ‘수사법’만 난무하게 된다. 또 시민이 더 이상 장인이 아니라 소비자처럼 행동하면서 난해하거나 첨예하게 찬반이 갈리는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눈길을 돌려버린다. 저자는 “ ‘사용자 중심’이라는 것이 민주주의를 망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개개인이 표류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문화적 닻’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가치로 사건과 경험의 축적을 통한 서사적 삶의 회복, 스스로를 쓸모 있는 존재로 느끼도록 해주는 개인 유용성의 발휘, 장인정신 등 세 가지를 든다. 일자리를 알선하거나 연금 관리 및 의료보험 가입을 대행하는 등 노동자들의 경험이 서사적으로 단절되지 않게 하는 ‘병렬 조직’의 설립, 일자리 나누기, 인생 설계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초자본의 제공 등이 제시된다.

물론 책은 새로운 자본주의 문화가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를 부인하지 않는다. 제도가 사람들의 삶을 덜 구속하게 되면서 자유로운 개인의 영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현재 새로운 권력 구조를 탄생시킨 자본주의 문화의 천박함을 삶과 노동의 관점에서 비판한다. 그리고 현재 일터나 학교, 정치의 세계를 뒤덮고 있는 문화의 천박함은 “유리그릇처럼 작은 충격에도 쉬 깨질 것”이라면서 새로운 문화에 대한 ‘반란’을 전망한다.(김진우기자) 

09. 03. 14.  

P.S. <제3의 길>의 저자 앤서니 기든스가 "그는 무척 활달하고, 교제의 폭이 넓으며, 사람들과 막힘없이 대화를 나눈다. 하도 사통팔달해서 어떤 모임에서든 다른 참석자 모두를 합쳐도 그의 박식함을 따라가기 힘들다."라고 평한 세넷의 책은 그간에 <살과 돌>(문화과학사, 1999),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문예출판사, 2002), <불평등 사회의 인간존중>(문예출판사, 2004) 등이 소개되었다. 가장 먼저 소개되었던 책은 <공인의 몰락(The fall of public man)>(1974)을 옮긴 <현대의 침몰: 현대 자본주의의 해부>(일월서각, 1982)였다. 언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저자였는데, <뉴캐피털리즘>이 좋은 출발점이 될 듯싶다.  

 

한편, 노동 및 도시화 연구의 권위자로 소개된 세넷만큼이나 노동 문제에 관해서라면 일가견이 있는 독일의 사회학자 홀거 하이데 교수가 제자 강수돌 교수와 함께 펴낸 <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이후, 2009)도 이번주에 나온 책이다. 하이데 교수의 책으론 강교수가 번역한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박종철출판사, 2000)가 소개된 바 있는데, 제목으로 봐선 그 연장선상에 놓이는 듯싶다. 강수돌 교수의 <일 중독 벗어나기>(메이데이, 2007)도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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