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는 건져야 할 책이 좀 많다. 두 주쯤 돈이 굳는가 싶더니 다시 새나갈 판이다. 일단 철학 분야의 책으로 악셀 호네트의 <정의의 타자>(나남, 2009)를 골라둔다. 부제가 '실천철학 논문집'이라고 돼 있고, 국내 소개된 책으로는 <인정투쟁>(동녘, 1996)과 <물화>(나남, 2006)에 이어 세번째이다. 분량으론 제일 묵직하고. 리뷰를 길잡이 삼아 관심있는 주제의 논문을 한두 편은 읽어봄 직하다.
한겨레(08. 03. 14) 인정욕구에 눈감는 정의는 폭력을 낳을 뿐
<정의의 타자>는 독일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60·프랑크푸르트대학 교수)가 자신의 ‘인정 이론’을 ‘정의’의 문제와 관련지어 숙고한 책이다. 주로 1990년대에 쓴 논문들이 묶였다. 호네트는 사회철학의 거두 위르겐 하버마스의 적통을 이어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다. 하버마스의 직계이긴 하지만 프랑스 철학과 긴밀하게 대화함으로써 이 학파의 비판이론에 역동성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미셸 푸코의 ‘투쟁 이론’을 하버마스의 ‘소통 이론’과 결합함으로써 자신만의 독자적 사유 영역을 확보했다. 그의 대표작은 1992년에 출간한 <인정 투쟁>인데, 이 책에서 그는 인정 개념을 사회철학의 중심 문제로 끌어들였다. <정의의 타자>는 <인정 투쟁>에서 펼친 논의를 좀더 확장해 인정과 정의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려는 이론적 시도를 담고 있다.
인정 문제를 철학의 영역 한가운데로 불러들인 사람은 게오르크 헤겔이다. <정신현상학>을 쓰기 전 예나대학 재임 시기의 청년 헤겔은 인정 투쟁을 전체 사회의 도덕적 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해석했다. 청년 헤겔의 논의에 기대어 호네트는 <인정 투쟁>에서 인정의 사회적 함의를 탐구했다. 그가 보기에 ‘인정’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자 개인들이 긍정적인 자기 의식을 얻게 되는 심리적 조건이다. 그의 인정 투쟁 테제의 핵심은 사회적 투쟁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상호 인정 상태를 목표로 한다는 명제에 있다.
<정의의 타자>는 <인정 투쟁>의 이 논의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의 고민은 사회적 정의가 원리상 개인들의 삶의 특수한 국면들을 다 포괄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정의의 원칙은 불편부당성을 핵심으로 한다. 모든 사람을 동질성을 공유한 보편적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들의 고유한 차이나 특수한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정의의 원칙이다. 여기서 개인적 특수성은 정의 원칙의 바깥에 존재하는 타자, 곧 ‘정의의 타자’로 등장하게 된다. 이 정의의 타자를 어떻게 하면 윤리적 차원에서 포용하고 보호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호네트의 관심이다.
정의의 원칙을 보완하는 대안적 원칙으로 호네트가 제시하는 것이 ‘배려의 원칙’이다. 개인의 특수한 처지를 배려하는 것은 불편부당성이라는 정의의 원칙에 비추어보면 위반 행위가 된다. 그러나 정의의 원칙이 무차별적으로 관철될 경우 여성·이주자·장애인·동성애자 같은 범주의 존재들은 배제와 억압의 상태에 놓일 수도 있다. 이것은 분명히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상황이다. 정의의 그런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특수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배려의 원칙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호네트는 정의와 배려를 넘어 제3의 원칙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인정의 원칙이다.
이때 호네트가 핵심 개념으로 삼는 것이 ‘좋은 삶’ 또는 ‘행복한 삶’이다. 다시 말해, 호네트는 정의로운 행위나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라 개개인의 좋은 삶,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사회적 조건에 주목하면서 ‘인정’을 그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개인은 사랑받고 인격을 존중받고 능력대로 대우받는 정서적·사회적 인정을 경험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의식을 형성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실현할 힘을 얻는다. 인정의 경험이야말로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자기 긍정의 필수 조건인 셈이다. 인정이 이렇게 ‘좋은 삶’의 조건이라면, 인정을 개인들 사이의 의무로 규정하는 윤리적 원칙이 성립하게 되며, 개인의 성공적 삶을 떠받치는 사회적 인정 질서도 상정해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인정의 원칙은 인간의 보편적 권리에 상응하는 정의의 원칙을 배제하지도 않고 또 개인의 특수한 처지를 고려하는 배려의 원칙도 배제하지 않는다.
호네트는 인정 원칙이 사회적 관계 또는 개인적 관계에서 특히 모욕이나 무시와 같은 정서적 경험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모욕이나 무시를 당하는 것은 인정에 대한 욕구가 근본적으로 훼손되는 경험인 것이다. 이것은 도덕적 문제가 된다. 이런 문제는 개인적인 경우를 넘어서 사회적·정치적 차원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호네트는 독일에서 나타난 ‘신나치 운동’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그 안에 인정 욕구가 자리잡고 있음을 지적한다. 개인적·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좌절을 겪은 청소년들이 그들의 자존감을 충족시켜주는 신나치 운동에서 출구를 찾는 것은 “사회적 무시의 경험이 정치적으로 어디를 향해 치달을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회적 인정의 연결망으로부터 소외되었다는 느낌이 사회적 저항과 반항을 낳을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호네트는 인정을 사회적 원칙으로 세울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무시당한 사람들과 배제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폭력적 저항문화 속에서 발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민주적 공론장 안에서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도덕문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그것이 관건이라고 호네트는 말한다.(고명섭 기자)
09. 03. 14.
P.S. 그러고보니 '인정'의 짝개념은 '무시'다. 호네트의 저작 목록에 <무시>가 들어 있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 이 책도 소개되면 구색이 맞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