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와 역사의 종말 이제이북스 아이콘북스 7
스튜어트 심 지음, 조현진 옮김 / 이제이북스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이제이북스의 아이콘 시리즈는 전철이나 버스에서 읽기에 적당하다. 책상머리에서 정좌하고 읽는 건 이 얇은 문고본 시리즈가 의도하는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오며가며 한두 권씩 읽는데, 그렇게 무익하지만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그렇게 유익하지도 않다는 얘기?). 스튜어트 심의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책은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1994)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이다. 데리다가 뒤늦게 마르크스(주의)와의 친연성을 고백하고 있는 그 책은 하나 이상의 마르크스, 즉 마르크스'들'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불편하게 했는데, 데리다 자신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위 자신의 정치철학을 개진한다. 그 정치학은 유령의 정치학이라 불릴 말한데, 데리다가 이 유령들을 불러들여서 '괴롭히고자' 하는 것은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론이다.

후쿠야마에 따르면, 사회주의 몰락 이후 '우리는 '인류의 이데올로기적 진화의 종착점'에 도달했다(21쪽). 자유민주주의가 '인간적인 정부의 최종형태'라는 결론에 우리는 도달했고, 그것은 번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인류사에 더이상의 진보는 없을 것이다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요컨대, 우리는 후(post)-역사시대, 역사-부록의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그에 대해서 데리다는 역사 또한 '차연(차이나며 지연되는)'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때문에 어떠한 단절도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의 사유에 시작이나 끝은 없으며, 역사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47쪽) 이것이 <공산당선언>이나 <햄릿>의 유령(학)을 통해서 데리다가 다시금 일깨우고자 하는 바이다.

'우리는 역사의 유령들을 쫓아버릴 수 없으며, 따라서 이런 역사의 유령들은, 마르크스의 '유령', 그리고 공산주의가 시작될 때부터 항상 있어왔던 유령이라는 주목할 만한 예에서처럼, 우리가 그들과 타협하는 방법을 발견하지 않는 이상 우리를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50쪽)

즉 우리가 역사의 (갚을 수 없는) 부채를 제대로 갚지 못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역사라는 스토커/유령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 부채는 '역사의 종말'이란 말로 쉽게 결산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데리다의 '해체론은 이 점과 관련한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고이다.'(55쪽)

결론 부분에서 저자는 이러한 데리다의 유령론이 단순한 후쿠야마 비판을 넘어서 보다 급진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데리다가 개진한 동일한 논리에 근거해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단지 '끝날' 수 없다는 것 역시 증명할 수 있다는 점'(66쪽). 70년의 사회주의 통치 종말 이후에 다시 급속하게 자본주의화된 러시아를 보라. (모든) 유령은 항상 되돌아오는 것이다!

저자의 결론: '아마도 데리다의 논변이 입증하는 유일한 것은 현재의 정치제도가 무엇이든 유령들이 우리의 삶속에서 항구적인 요인들이라는 점, 따라서 그런 유령들과의 모종의 화해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유령학'이 필요하다는 점이다.'(67쪽) 우리의 대선후보들도 이 유령의 정치학 세례를 좀 받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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