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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포스트모더니즘 ㅣ 이제이북스 아이콘북스 3
데이브 로빈슨 지음, 박미선 옮김 / 이제이북스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의 거의 모든 각종 철학 운동에서 그를 선구자라고 강제징집하듯 끌어들이고 있는데,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아니라고 할 이유가 있겠는가?(70쪽) 사실 여기까지 읽고 책을 덮어도 무방할 듯하다. 저자는 니체가 포스트모더니스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는 식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자의 유유부단한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니체의 저작이 지닌 '매력과 탁월한 적응가능성'에 있다.
니체는 온갖 종류의 창조적 독해와 해석을 가능하게 하므로, 그는 파시스트이기도 하고, 여성혐오론자이기도 하며, 페미니스트에다 해체주의자이기도 하다(아마 그는 성불구이면서 동시에 동성연애자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전제가 그다지 불쾌하지 않다면, 이제 단숨에 책을 읽어보도록 하자.
저자는 80쪽 분량의 절반을 니체의 간략한 전기와 사상에 할애하고, 나머지 절반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니체를 대질하는 데 사용한다. 이 둘을 연결시켜 주는 것은 니체의 관점주의와 은유로서의 언어관이다. 그는 '절대적이고 총체적인 지식'의 가능성을 부인하며 모든 인식은 다만 일시적인 해석일 뿐이라고 말한다.
'니체는 자기 시대의 모든 '거대서사'가 붕괴상태에 있다고 생각했다... 과학은 결코 인류가 살아가면서 의거하는 가치들의 원천이 될 수 없었으며, 이성과 논리에 대한 믿음, 과학과 그 '법칙', '진리'와 '지식'은 모두 그 근거를 잃었다. 니체는 심지어 의미가 안정된 언어를 가지고 사유할 수 있는 의식을 가진 주체가 있다는 것까지도 반박했다.'(46쪽)
이런 그의 생각은 저자의 주장대로 '대단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이다. 저자가 파악하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은 회의주의이며, 그 기반은 언어란 항상 은유적이라는 바로 니체적인 언어관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데리다나 리오타르, 푸코, 로티 등의 포스트모던 철학자들과 니체는 친화적이다.
한편으로 저자는 니체가 관점주의를 시종일관 견지하고 있지는 않으며 니체식 관점주의가 그다지 급진적이지 않다고 지적하는데, 그러한 지적은 이 얇은 책에서 건질 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데리다식의 해체가 새로운 윤리학과 정치철학을 낳지는 못한다고 비판하는 부분(54쪽) 등 다소 성급한 주장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도 여전히 매력적인 니체를 위해서는 <말과 사물>에서 니체에 대한 푸코의 언급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니체는 현대철학이 다시 사유를 시작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을 표시한다. 그리고 그가 현대철학의 향방을 오랫동안 계속 주도할 것임은 분명하다.'(62쪽) 우리는 그 문턱을 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