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함의 유혹 동문선 현대신서 24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김웅권 옮김 / 동문선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순진함의 유혹>은 알렝 핑켈크로트의 <사랑의 지혜>(동문선)과 함께 아주 감명 깊은 에세이이다(나는 이 두 저자의 책은 무조건 사고 본다). 95년에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상을 수상했다고도 하는 이 에세이는 다분히 '프랑스적'이면서 그 특장이 여실하다. 그 화려한 문체와 독창적이고 집요한 문제의식...

그가 걸고 넘어지고자 하는 문제는 현대인의 유년기적인 행동성향(infantilism)과 희생화 경향(victimisation)이다. 그리고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둘 다 빚을 거부한다는 동일한 관념, 의무에 대한 동일한 부정, 자신의 동시대인들에게 무한한 채권을 가지고 있다는 동일한 확신에 근거한다. 그것들은 어떠한 책임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세상의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두 방식으로 하나는 우스꽝스럽고 다른 하나는 준엄하다. 그것들은 생존의 투쟁으로부터 피신하는 두 가지 방식이다. 희생화 경향은 유년기 행동 경향을 극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122쪽)

이 두 성향을 묶어주는 키워드가 바로 '순진함'(혹은 무죄성)이다. 즉 '자신은 어떠한 불편도 감수하려 하지 않고 자유의 혜택만을 누리고자 하는 기도'이며, 이것은 '자기 행위의 결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개인주의의 병'(13쪽)이다. 읽어가면서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러한 지적에 따끔함을 느낀다.

이 책은 어른이 된다는 것, 성숙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나에겐 매우 유익한 책이다. 더불어 고종석이 개인주의의 시대가 될 것으로 예상한 바(혹은 희망한 바) 있는 21세기의 문턱에서 '바람직한'/'좋은' 개인주의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역시 저자의 따끔한 지적:

"개인을 다루는 몇몇 현대 철학자들에게 우리가 비난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을 지나치게 찬양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충분히 찬양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개인에 대한 소극적 해석을 제시한다는 것이며, 퇴화를 건강의 증거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그것은 주체라는 관념이 건설적인 긴장이나 도달해야 할 이상을 전제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며, 기만은 개인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데도 기득된 것으로 제시할 때 시작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다."(120-1쪽)

요는 개인, 혹은 개인주의 또한 우리가 고투를 통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이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두 가지 니힐리즘에 대응하여 기억해 둘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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