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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 ㅣ 하룻밤의 지식여행 13
폴 코블리 지음, 조성택 외 옮김 / 김영사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기호학 입문서가 아니라 기호학사 입문서이다. 즉 기호학의 ABC가 아닌 기호학사의 ABC가 주로 다루어지는 내용이다(그런데, 움베르토 에코에 의하면, '기호학은 곧 모든 것을 포괄하는 역사 그 자체이다'). 그 ABC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스위스 출신의 20세기 언어학자 페르낭드 드 소쉬르와 미국의 철학자(논리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이다. 저자는 이들로부터 파생되는 20세기 기호학이라는 방대한 지적 모험을 매우 간명하면서도 요령있게 정리하고 있다. 그래서 좀 감질나기는 하지만, 기호학이라는 고급 풀코스 요리의 맛보기로는 제격인 듯싶다.
모든 모험이 그렇듯이 기호학적 모험에도 몇몇 뛰어난 영웅들이 있다. 소쉬르에서 바르트, 방브니스트, 그레마스, 데리다(물론 그의 그라마톨로지는 기호학에 비판적이다)에 이르는 계보, 그리고 퍼스에서 모리스, 시벅, 에코로 이어지는 계보, 거기에 야콥슨과 러시아 형식주의와 체코 구조주의(프라하학파), 소련의 문화기호학으로 이어지는 계보 등. 기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가장 애를 먹이는 것은 이들 계보들의 기호학적 구상과 사용하는 개념들이 각기 다르다는 것인데(가령 소쉬르의 '기호=기표+기호'의 2원적 모델인데 반해서 퍼스의 '기호=표상체+대상+해석체'의 3원적 모델로 되어 있다.), 저자의 쉬운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제법 이해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이 책은 기호학에 대한 어수선한 지식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입문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좀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저자가 제시한 '더 읽기'를 참조하여 앞으로 한참 더 읽어야 하는 여정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 풀코스의, 세미오시스를 통한 기호계(세미오스피어)로의 여정 또한 '읽기의 모험'으로서 손색이 없지 않을까?..
사족으로 한두 가지 오역을 지적하고자 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 '보리스 엑센바움'(135쪽)은 '보리스 에이헨바움'이라고 표기해야 하고, 프라하학파의 '얀 무카로프스키'(146쪽)는 '얀 무카르좁스키'가 맞는 표기이다. 무카르좁스키의 제자 '펠릭스 보딕카'(157쪽)도 (내가 알기엔) '펠릭스 보디치카'로 해야 한다. 그리고, 138쪽의 '1822년 짜르주의에 대항한 10월혁명주의자'는 '1825년 짜르주의에 대항한 12월혁명주의자'의 오역이다(원서가 잘못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