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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5 ㅣ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5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장정일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작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읽은 책을 가장 지속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작가임을 분명하다. 2-3년 터울로 묶어내는 독서일기가 벌써 5권째니까, 그는 온전히 책읽기를 통해서 30대를 건너왔다고 할 수 있을까? 재즈와 독서, 그리고 소설쓰기를 제외한다면 그의 일상생활은 자투리 시간들로 채워져 있을 듯하다.
200여 권에 대한 독후감을 담고 있는 이 책을 나는 전철에서 읽거나 걸어다니면서 읽었다. 그가 감상을 적어놓고 있는 책들의 대부분은 나는 읽지 않았고 또 몇몇을 빼면 읽을 계획도 없지만, 그의 책을 읽는 일은 재미없거나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일부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제외하면 그가 읽은 책들은 대부분 번역소설들이거나 재즈와 관련서들이고, 나는 관광지의 여행객처럼 이들에 대한 소개와 감상을 맛나게 읽은 것. 더불어 사모은 책들을 처분하는 요령도 암시받을 수 있다(그에 따르면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는 책들을 제일 먼저 버려야 한다. 가령 쿤데라의 소설 같은 명작들.). 베르꼬르의 <바다의 침묵>과 파스칼 레네의 <레이스 뜨는 여자>에 대한 감상과 함께 특별히 인상에 남는 대목들을 여기에 기록해 두고 싶다.
이청준의 <서편제>에 대해: '당신을 4·19세대라고도 하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작가라고도 하던데, 잠든 어린 딸의 눈에 청강수를 찍어 넣는 애비를 마땅히 그 좆대가리를 잘라 씹어버려야 하지 않나?'(60쪽) 소위 '한(恨)의 예술적 승화'라는 그 소설/영화의 내용은 조금만 제정신으로 (읽어)본다면 얼마나 엽기적인가!(이른바 남도엽기전?) 문제는 이 소설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는 사실.
박정희의 창씨개명에 대하여: '그러니 박정희를 박정희라고 부르는 결례를 더 이상 저지르지 말고 다카키 마사오나 오카모토 미노루라고 부르자. 그가 얼마나 일본이 되고 싶어했는지를 그의 생애가 너무도 생생히 증언하기 때문이다... 하여 긴급제안한다. 박정희기념관을 지어야 한다는 정신나간 무리들이 있는데 그들이 박정희기념관을 짓자고 시도하든 말든,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도 온전히 정신을 차려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라는 이름을 당장 다카키 마사오기념관반대국민연대로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248-9쪽) 진작에 DJ가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면 나는 그를 대통령으로 뽑지 않았다.
소설의 잠언에 밑줄 긋는 독자들에 대하여: '잠언에 밑줄을 긋는 한, 우리 나라의 소설 독자들은 아직 소설을 취급할 줄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 확실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잠언에 밑줄을 치는 소설 독자는 소설 속에서 교훈을 발견하도록 편향된 질낮은 문학 교육의 희생자들일지도 모른다. 나아가 잠언에 밑줄을 치는 독자는 소설나부랭이를 읽는 일에 긍지를 느끼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소설 가운데서 잠언을 발견하고자 하는 안쓰러운 노력은 소설나부랭이를 읽는 소모적인 일을 뜻있게 만들자는 보상심리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161쪽)
내가 두 주전에 읽은 책에 대해서 이렇듯 뒤늦게 감상을 덧붙이는 것은 어떤 보상심리에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