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진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39
김선욱 지음 / 책세상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정치와 진리'란 제목으로 미루어 매력적이면서도 광범위한 주제들이 다루어질 거란 예측을 하게 되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부제를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이라고 했으면 보다 분명했을 듯하다. 하이데거와의 스캔들(?)로도 유명한 금세기의 손꼽히는 유태계 여성 철학자가 한나 아렌트이다.

아렌트의 주저인 <인간의 조건>이 이미 번역돼 있지만(저자가 이 번역을 인용하지 않는 걸로 봐서 그다지 신뢰할 만한 번역은 아닌가 보다.), 또 <폭력의 세기>와 <아렌트와 하이데거> 같은 책들도 이미 소개돼 있지만, 이 중요한 정치철학자가 지명도만큼의 호응은 얻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왜 아렌트가 중요한가, 그녀가 얘기하고 있는, 혹은 복권시키고자 하는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요긴한 안내서가 되고 있다.

아렌트에게 있어서 '철학은 확실한 진리의 준거를 가지고 정치 영역으로 들어오지만, 정치는 그러한 준거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79쪽) 만약에 진리의 준거와 기준이 존재하는 한 인간의 복수성(plurality)는 존중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정치의 실종이라는 말로 지적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 복수성의 실종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철인왕(=진리의 인간!)의 통치를 주장했던 플라톤이나 그의 계보를 따르는 정치가/정치철학자들이 실제로 한 것은 '정치의 목조르기'였던 셈이다. 정치란 진리의 영역이 아니기에, 그것은 언제나 떠들썩한 난장이어야 합당하다. 저마다의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되고, 공감할 만한 합의점들이 모색되는 장이 바로 정치이기 때문이다.

이 떠들썩한 난장으로서의 정치는 그래서 두 얼굴을 갖는 듯하다. 그것은 '축복'이면서도 동시에 '저주'일 수 있기에. 그러나 정치의 축복이란 건 정치의 저주를 통과해가면서 얻어지는 지혜의 산물은 아닐까? 여기서 지난 60년대초 4.19에 의해 촉발된 정치의 장이 바로 군부(=확신의 인간들!)에 의해 짓밟혔던 사례를 떠올려보게 된다. 그리고 이어진 30여년 간의 정치의 공백을 회고해 보게 된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정치의 두 가지 조건이다. 무엇이 정치를 살아있게 하는가? 첫째는 생활의 여유, 즉 경제력이다.(그리스 민주주의는 노예제를 기반으로 했다.) 그리고 둘째는 정치를 책임지는 시민들의 활발한 '활동'이다. '정치가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시민의 대표이기 때문이다.'(101쪽)

아렌트는 분명 기존과는 다른 시각에서 정치 현상을 해명하고 또 복원하고자 한다. 다가오는 선거의 계절에 우리가 축복의 공간으로서의 정치를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시각은 한번쯤 되새겨 봄직하다. 그녀의 또다른 책 <칸트의 정치철학 강의>도 빠른 시일내에 우리말 번역본을 얻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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