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도시에 가다
이득재 지음 / 문화과학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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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M 쿳시의 소설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도 암시된 바 있지만,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무엇보다도 '페테르부르크'란 도시 공간의 작가이다. 그때의 페테르부르크는 근대 러시아의 모순과 운명을 집약하고 있는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안하고 있는 것들도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한다. 요컨대 '페테르부르크를 알아야 도스토예프스키를 이해한다'는 것.(저자가 왜 '레닌그라드'란 명칭을 고집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레닌그라드의 현재 명칭은 페테르부르크이고, 도스토예프스키 시대에도 물론 페테르부르크였는데 말이다.)

책에서 주로 다루어지고 있는 작품은 <죄와 벌>이다. 그리고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저자에 의해서 도시계획가로 변신 혹은 격상된다. 물론 이러한 관점이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기존의 이해에 더 보탬이 된다고 주장한다면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다만, 거기에 한정하여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새로운 이해가 아닌 새로운 축소주의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하다.

그것은 도스토예프스키와 영화를 다룬 4장에서 수많은 영화들을 제쳐놓고, 유독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와 <죄와 벌>을 비교하고,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두 편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두 편만을 대조시키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이왕 브레송 영화를 다룬다면, <백치>에 영감을 받았다는 <당나귀 발타자르>에 대한 분석은 왜 빠졌을까?)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그 주제들에 걸맞는 내용이 부피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데서 느껴지는 아쉬움이다.

아마도 책을 급하게 준비한 탓인 듯한데, 내용들간의 유기적인 연관성이 부족한 한편으로 오타들도 눈에 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온순한 여인>(147쪽)은 <부드러운 여인>(151쪽)과 혼용되고 있고, '니끼타 미할코프'의 형인 영화감독 '안드레이 곤찰롭스끼'(콘찰롭스키가 맞다)는 그 아들로 잘못 소개되어 있다(122쪽). 타르코프스키의 책 <봉인된 시간>도 굳이 <시간 안에 새기기>(143쪽)란 제목으로 바뀔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어쨌든 '위대한'작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국내 저작이 매우 드문 형편에서 도스토예프스키란 이름만으로도 반가움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더구나, 저자는 그 '위대함'이란 꼬리표를 떼어내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가 위기에 처한 인문학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저자는 '책머리에'의 끄트머리에다 이렇게 적어 놓는다: '아무쪼록 본서가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단순한 깐죽거림이거나 냉소주의로 비쳐지질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니 이 서평도 절대로 깐죽거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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