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학 - 문학 형식 일반론 입문 동문선 현대신서 74
다비드 퐁텐 지음, 이용주 옮김 / 동문선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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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형식 일반론 입문'이란 부제를 달고서 번역된 이 책은 시학의 갈래와 역사에 대한 '콤팩트'한 안내서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처음 20쪽을 읽고서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번역에 대해서 전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시학>이란 제목과 함께 떠올려지는 저작은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다. 그리고 이 <시학>만큼은 우리말로도 몇 종의 번역서가 나와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지적하고 있는 주석서도 번역돼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시학>의 대강을 읽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여건은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퐁텐의 <시학>을 옮긴이는 그러한 여건을 전혀 활용하고 있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더 나은 이해를 선보이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그가 우리말 <시학>을 읽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다! 더불어 그가 불어로 읽었더라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 근거는 아주 간단하다. <시학>의 핵심을 잘못 옮기고 있는 것. 알다시피, <시학>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와는 다소 무관한 일종의 비극론이고 극작법이다(물론 이때의 '비극'도 우리의 이해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구상에는 들어있는 희극론은 전해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나 잠시 등장할 뿐) 사실 <시학>은 미완성적인 저작이다. 그런데 이 '비극론'에서 저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정수이자 영혼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로 '플롯'(뮈토스)이다. 이 플롯을 번역자는 시종 '스토리'로 옮기고 있다(18쪽 등). 스토리가 '줄거리'로 번역될 수 있다면, 플롯은 '줄거리 구성'에 해당한다. 즉 전혀 동의어로 쓰여서는 안되는 개념쌍인 것이다.

거기에다 비극의 여섯 가지 요소 중 아마도 '노래'(멜로디)에 해당할 것은 '시편'으로 옮기고 있고, 천병희 역(문예출판사)에서 '장경'(스펙터클)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을 여기선 '공연'(opsis)이라 옮기고 있다. 장경은 배우들의 분장이나 무대장치를 포괄하는 말로서 요즘의 무대미술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런 무심한 오역들을 대하고 나면, 이후에 잘 이해되는 않는 번역문들에 대해서는 혹시나 오역이 아닐까 무조건 의심하게 된다.(이론서인 탓도 있지만, 사실 이 책은 잘 읽히지 않는다.)

사실 모든 번역이 태생적으로 오역의 위험을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오역이 정당화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조금만 성의가 있다면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부분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동문선에서 나온 번역서들 가운데는 훌륭한 번역도 여러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 수준이 고르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데, 불행히도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나쁜 번역의 가장 큰 폐해는 책읽기의 괴로움이 아무런 보상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것이 또 책읽은 후의 괴로움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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