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운 자의 꿈 러시아 고전산책 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고일 옮김 / 작가정신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초기작인 <백야>(1848)와 함께 묶인 <우스운 자의 꿈>(1877)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복잡한 종교 철학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여기에 그의 전체적인 세계관이 집대성되어 있다.'(모출스키) 이러한 주장에 다소 과장이 섞여 있다 하더라도 <우스운 자의 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유토피아관을 이해하는 데 필독 작품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 분량에 비하면 영양가 만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우스운 인간이다. 사람들은 이제 나를 미친 사람이라고 부른다'(109쪽)는 서두는 <지하생활자의 수기>(1864)를 연상케 한다('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유토피아를 화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 작품은 공통적이지만, 지하생활자가 당대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합리적 유토피아를 공박하는데 열을 내고 있다면, 우스운 자는 그에 대한 작가 자신의 대안적 유토피아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그 유토피아를 말하는 화자가 '우스운 자'인 것은 작가의 겸양일 것이다.

자, 그렇다면 우스운 자가 꾸는 꿈(=유토피아)은 무엇인가? 그가 꿈속에서 자살한 이후 어떤 힘에 이끌려 가보게 되는 세계는 또다른 지구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고갈되지 않는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며 자연과 대지, 바다와 숲을 에찬하면서 지상의 천국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이미 <악령>과 <미성년>에서 작가가 그려내었던 황홀경의 세계이다. 하지만, 우스운 자는 자신이 그 세계를 (꿈속에서지만) 타락시켰다고 고백한다. 아마도 그는 그 낙원의 '바이러스'였던 것이리라. 그는 견딜 수 없는 슬픔 속에서 잠이 깨지만, 그가 본 진리의 세상은 이미 가슴속에 각인돼 있고, 그는 세상에 나가 자신이 발견한 진리를 전도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 진리란 아주 단순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이 남들도 사랑하는 것.'(146쪽) 그러나 단순하다고 해서 그 실천까지 손쉬운 것은 아니다. 이반 카라마조프의 고백대로, 우리는 '먼 데 있는 사람들'은 사랑할 수 있지만 이웃은 사랑할 수 없는 족속들이니까...

꿈을 꾸기 전 우스운 자는 더이상 우스워지지 않기 위해서 자살을 결심하고 자신에게 온 불쌍한 어린 소녀를 무시하지만, 꿈에서 깨어난 그는 제일 먼저 그 소녀를 찾아나선다. 모출스키에 의하면, 그 어린아이가 곧 대지(=지구)이며 천국이다. 즉 천국-어린아이-대지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성스러운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삼위일체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결말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어떤 신비로운 것이 있다!' 내일이 어린이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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