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잔인한 손
프란시스 베이컨 지음 / 강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프란시스 베이컨이 죽음이 저자인 아솅보에게 알려진 것은 1992년 4월의 마지막 화요일 오후였다. 그는 '나쁜 소식'을 듣자 마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오! 저런, 그럴 수가.... 그렇게 착한 사람이!'였다. 그리고 이 미완의 대담집이 출간됐다. 원제는 <프란시스 베이컨: 미셀 아솅보와의 대담>.(베이컨은 데이빗 실베스터와의 대담도 남기고 있다.)

책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솅보와의 세 차례에 걸친 대담이다. 그 속에서 베이컨은 회화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주관을 거침없이 토로하며, 문학과 음악, 그리고 사진, 영화 등 주변 예술 장르와 자신의 관계, 교우관계, 삶의 이력과 예술관 등을 털어놓는다.

모든 뛰어난 예술가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는 비교적 뛰어난 언변을 자랑한다. 가령 서문격으로 옮겨진 글에서 밀란 쿤데라도 인용하고 있는 그의 말들: '분명히 우리는 육신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시체인 셈이죠. 나는 푸줏간에 갈 때마다, 짐승 대신에 내가 걸려 있지 않음을 알고는 늘 놀라곤 하지요.' 그의 그런 말들이 '급진적 유물론자'라는 평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말들을 좋아하는 나 또한 굳이 분류하자면 급진적 유물론자에 가까울 모양이다.

다른 책에 들어 있는 거지만, 베이컨은 '우리의 삶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삶에 의미를 부여할 따름이다'라는 투의 말을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대상이 아닌 사물을 그리고자 했던 세잔의 계보에 속하는 듯하다. 사과를 그려놓고, '사과가 되라!'는 주문을 외쳤다던 세잔이 들뢰즈의 말대로 사과-신체를 그렸다고 하면 베이컨은 고기로서의 인간-신체를 그린 것. 그건 다르게 말하면 인간의 종언이 아닐까? 인간의 종언을 예시하는 예술들. 그런 의미에서 쿤데라는 베케트와 베이컨을 나란히 놓는다.

'두 사람은 예술사에서 무엇인지 모를 동일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두 사람은 아마도 드라마 예술의 최후의 단계, 혹은 회화사에서 최후의 단계에 위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베이컨은 유화 물감과 붓을 표현의 언어로 사용한 마지막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24쪽)

이 마지막 화가에게 있어서 그림은 우연성의 도박이었다. 지저분하기로 악명 놓은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는 자신의 작업이 뭔가를 성취하기로 기대했는데, 그 성취란 것은 언제나 우발적인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대부분 실패했다고 자인하는 그이지만 아주 불운했던 것은 아니다. 왜 그런가하는 점은 대담을 직접 읽어 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